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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May 01. 2024

5.바람이비를때리면 비는창문을때리고 창문은 내귀를때린다

이틀째, 그는 갔다.


이틀째 (그는 갔다)



와인과 맥주는 상극이다. 그 점을 알면서 나는 와인의 모자람을 맥주로 달랬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머리가 깨지는 고통을 겪은 후 다짐한다.

“술 먹지 말아야지”

오후 두 시 정도가 되면 두통은 싹 사라지고 울렁거렸던 위는 먹을 것을 찾는다. 그렇게 에너지를 받고 난 후 어두워진 밖을 보았다.

“비가 오잖아
 이런 날은 한 잔 해야지…”

아침부터 개님이 지어 댄다. 머리가 깨질 듯, 웅웅 울렸고 조용히 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비와 바람은 미친 듯이 문의 빈틈을 밀어내느라 바쁘다.

비 내리는 아침

이렇게 습도가 낮은 날은 개 짖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아, 정신없다.

험난하고 가파른 계단을 짖고 있는 개님을 안고 내려갔다.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숙취는 위로, 위로 올라오기 위해 작당을 한다.


아, 고통스럽다. 


배꼽시계와 기상시간이 정확한 그 사람은 벌써 어제 먹고 남은 김치찌개와 밥을 해치웠다. 설거지도 말끔히, 샤워까지 마친 상태다. 역시 그의 부지런함은 나의 부지런함이 따라갈 수가 없다.


그가 비와 바람을 뚫고 얼마 남지 않은 비행시간을 확인하며 내게 커피와 김밥을 배달해 주었다. 

숙취로 위가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고마움에 천천히 음미하는 척, 떨며 마시고 씹었다. 


택시가 왔다.

우린 서로를 마주하고 걱정의 눈빛을 서로 외면하며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것들을 씹어 삼켰다. 


그가 말했다.


“진짜 간다? 가서 연락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활짝 웃어주었다.


“응, 조심해요 가서 좀 쉬고”


그가 손을 흔들었고 작은 나무 울타리를 잠그며 다시 한번 나의 안전을 확인하는 듯했다. 

개가 눈치도 없이 뒤돌아서 가는 그를 보고 짖어 댔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15년 만에 우린 각자의 이 시간을 충실하게 겪어내 보기로 했다.  1

오랜만에 그가 가는 뒷모습을 다른 느낌으로 보았다. 씁쓸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통쾌해 보이기도 하고 쓸쓸해 보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아주 깊은 곳이 조금 아팠다.


그와 난 연애도 참 오래 했고 그 만큼 무지막지하게 싸웠다. 

내가 그를 버리고 그가 나를 버리고 우리가 우리라는 관계를 버리기 일쑤였다. 그 모든 시간 안에는 서로의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었고 쌓은 모든 것들은 하나의 신뢰로 세월을 버티고 걸어왔다. 


세월은 서로를 스며들게 했고 관계에 대한 이질감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아마도 웃음, 이라는 것으로 지배적인 삶을 살게 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와 나는 그랬다.


어젯밤 우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가 말했다.


“사실, 당신도 알다시피
 올해 이 두 달 동안 정말 힘들었어
 내 인생에서 가장…
 물론 당신이 힘들어했으니까”


내가 말했다.


“알아, 알면서도 모른 척했지 
 왜 모르겠어 나도 자기도 같지”


그가 한참 침묵했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나 때문에 참 많이 힘들었지?
 모든 걸 다 해주려 했으니까
 이제 그만해도 돼, 오늘 까지만
 나 해 볼 게
 참… 고생했어”

버거워 보이는 와인 잔

그의 피부색이 붉어지고 있었다. 들고 있던 술잔이 잠시 바들거렸다.


“그걸 알고 있었어?
 그렇게 까지 생각하고 있는 줄, 정말 몰랐어”


갑자기 눈물을 토해내는 그다. 


마치 꾸역꾸역 억지로 참고 또 참았던 것을 토해내듯 그가 붉고 또 붉게 울었다. 

나의 것까지 함께 토해내며 그가 붉게 울었다.

                                                                                        



나는 아팠다.

절대 그 앞에서 울지 않으려

이를 물었다.

왜냐면 이제 난 괜찮아야 했다.



바람이 비를 때리면 비는 창문을 때리고 창문은 내 귀를 때린다



비와 바람이 계속된다. 

잔디가 집 앞에 있어서 좋은 건 내 개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태풍이 닥치든 빠르게 나가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 청결이 첫 번째인 내 성격은 겨울이 조금 지난 잔디는 약간의 지저분함이 허용된다. 


내 개는 이제 수시로 나갔다 들어왔다, 를 반복하는 중이다. 

그럴 때마다 따라다니며 엉덩이를 확인하긴 하지만 발바닥을 꼼꼼히 닦지는 않는다. 


아파트 생활에서는 내 손길이 예의 없이 몸에 닿아야 하는 수치심을 내 개는 이곳에서 완벽하게 잊은 듯하다.

뭐, 그 덕에 나도 좀 편하다.

밤에 자지 못한 잠을 좀 자려한다. 도저히 눈을 뜨고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깔끔히 깨어나지 못한 숙취 탓인가. 나는 날씨만큼 축 늘어진 몸으로 개를 안고 절벽을 올라갔다. 

개의 얼굴을 보니 이 녀석의 눈도 나만큼 피곤해 보였다. 

짖는 개와의 낮잠

잠이 들었던 것 같다가 본능적으로 뜬 눈으로 내 개를 찾아 고개를 돌리면 내 개도 본능적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렇게 서로 눈이 마주치고 우린 비슷한 몸짓으로 다시 고개를 떨구며 눈을 감는다. 


창문이 화를 내듯, 덜컹 후아 아앙, 샤샤샤샤삭, 아, 귀마개가 어디 있더라. 


자다 깨다를 수십 번 하다가, 결국 챙, 하며 뭔가 날카롭게 부딪히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개는 또 미친 듯이 짖어댄다. 워낙 개들이 많은 곳이고 짖어도 동선이 겹치지 않는 곳이라서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난 개에게 하지 마, 란 소리를 하지 않는다. 

이곳에선 그게 가능하다. 신기한 건 도시에서의 하지 마,라는 소리는 개 귀에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 소리지만 이곳에서 하지 마, 란 소리는 하지 않음에도 내 개는 알아서 멈춘다는 것이다. 

개님을 안고 가파른 계단 이용 중

정말 신기하다. 


이제 비워진 위를 위해 먹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다시 개를 안고 내려가 보자.


어제 남은 채소가 생각났다. 상추, 향이 강한 당귀 잎, 어디 마트를 가든 보유하고 있는 중국산 마늘종(마늘의 꽃줄기), 당근, 오이고추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최대한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곳은 음식물을 분리해서 버리는 지침을 거의 따르지 않는 모양이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함께 버리는 게 일상이다,라고 한다. 


일본에 머물 때가 떠올랐다. 

일본도 섬이다. 요리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버리기 위해 관리인에게 물었다.

하지만 일본은 음식물 쓰레기를 타는 쓰레기로 분리한다고 한다. 

나는 너무 놀랐고 그 뒤의 답변에 더 놀랐다.


“음식물을 재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나는 약간 치욕스럽기도 했다. 

현재도 대한민국에서 음식물 쓰레기로 동물의 먹이를 만드는 곳이 있을까? 

아, 혼란스럽다. 

어쨌든 제주도에 왔으니 그들이 말하는 것을 경청은 하되, 규정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남은 채소

육지에서 가져온 다진 마늘과 특급 올리브 오일을 팬에 넉넉히 둘렀다. 약불에서 마늘을 볶은 후, 대패 삼겹살을 가위로 잘라 볶는다. 


썰어 놓은 채소를 넣고 후추를 뿌려 볶는다. 채소의 숨이 죽고 오일을 입어 반짝이기 시작한다. 맛을 보지 않아도 그 맛은 눈으로 감미 할 수 있다.


아무리 재료가 부족해도 꼭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소금 같은 경우가 그렇다. 

마트에서 분명 장바구니에 넣었던 소금이 발이 달려 사라졌다. 생각을 해야 한다. 


채소는 점점 죽 같이 변해가고 있었고, 나는 좁은 탁자 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래, 이거다.

펜네 파스타

빠르게 참치액을 팬에 둘렀다. 말랑하게 익은 펜네를 면수와 함께 팬에 넣고 볶는 소리처럼 기분 좋게 손을 놀려 준다. 그리고 빵에 발라 먹기 위해 산 크림치즈를 떨어뜨려 주었다.


사실, 이 방법은 단 한 번도 써먹어 보지 못한 방법이다. 참치액과 당귀, 크림치즈가 들어간 파스타라니, 만약 나의 큰 조카가 이 레시피를 보았다면 눈빛이 먼저 버릇없음을 보여 줬을 것이다.


체력도 마이너스, 위도 마이너스, 지금은 무엇이라도 먹어야 할 때다. 

마지막으로 다진 상추를 마치 싱싱한 바질인 것처럼 뿌렸다. 


아, 등 뒤에서 나의 큰 조카가 흘겨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귀 냄새가 모든 채소와 크림치즈의 향을 없애 버렸다. 

한 입 먹어 보니, 쫄깃한 펜네가 당귀와 어우러진다. 크림치즈의 맛은 뒤늦게 훅, 올라온다. 대패 오겹살은 음, 역시 씹히지가 않는다.

어쨌든 꽤 영양가 높은 음식이라고 나름 생각해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채소 펜네 파스타

자, 보기에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고 한다. 


나는 결국, 소화제 한 알을 먹고 다시 개를 들어 올렸다. 홀로 밤을 지새울 첫날이 이렇게 화끈하게 힘들 수가 있을까? 

오늘 밤은 꼭 잘 자야 했다. 

그리고 커플이었던 귀마개 한쪽을 찾았다. 


강렬한 핑크색의 이것이 발이 달린 소금과 작당을 한 모양이다. 이불속을 뒤져 보았다. 역시 범인은 개다. 얼마나 잘근잘근 씹었는지, 이빨 자국이 참 꼼꼼하게 도드라지기도 했다. 

녀석은 아직도 돌아다니며 바람 소리에 짖는다. 

귀마개를 꼼꼼하게 귀에 꽂고 드러누웠다. 귀마개의 빈 틈으로 개의 발자국 소리가 아장장장, 하고 들렸다. 


한 TV프로그램에서 배우 유해진이 반려견이 보이지 않을 때도 꼭 해야만 하는 말이 있다고 했다.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무조건 이름을 부르며 하지 마 스읍, 안돼,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 너무 피곤했지만 그 생각에 혼자 키득거리고 세모눈을 뜨고 바람 소리 보다 더 크게 말했다.


“야, 개 안돼
 스읍, 그만 안됏”



일요일 아침



한 시간마다 눈이 떠진 상태로 개와 마주치고 다시 눕기를 반복했다. 

해는 떴지만 계속 비가 내렸고 바람은 이제 좀 당연한 게 돼 버린 것 같다. 그리고 또 당연한 루틴, 가장 먼저 개를 안고 절벽을 내려가서 현관문을 열어야 한다.


“개야 나가”


녀석이 강한 바람과 비에 머뭇거렸다. 

내가 또 행동을 먼저 취해 줘야 할 듯하다. 카디건을 어깨에 두르고 우다다다다다다, 개도 따라온다. 

역시 강한 비바람에도 개는 해야 할 것은 꼭 한다.


날씨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쭈글쭈글해진 어깨로 밖을 보았다. 

아직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고 다행히 비는 그친 상태다. 수평선 멀리 보이는 하늘에 해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해 마저 사라지기 전에 나는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가 바람처럼 씻었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고 육지에서 공수해 온 샐러드 채소와 달걀을 꺼냈다. 

육지에서 날아온 샐러드 재료

이탈리안 파슬리는 토핑으로 쓰기 위해 잘게 썰어 준다. 올리브 오일을 두른 프라이팬에 반숙 프라이를 만들고 아스파라거스도 넣어 주었다.

소금이 도망쳤으니 어제처럼 참치액의 도움을 받아 보았다. 

달걀 프라이를 요리할 땐 꼭 상온에 먼저 달걀을 꺼내 놓고 사용해야 맛도 좋고 모양이 예쁜 반숙 달걀 요리가 된다.

또한 신선함을 정확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가 있어서 기분도 좋아진다. 


손질해 놓은 샐러드 채소에 올리브 오일, 후추, 화이트 발사믹 식초를 뿌려 주었다. 


나는 원래 샐러드에 소스를 얹어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맛있는 소금과 향이 진한 올리브 오일 두 가지만 있으면 훌륭한 샐러드가 되기 때문이다.

단, 간수가 적당히 빠져나간 달달한 맛을 지니고 있는 소금이어야 완벽하다. 

감칠맛이라면 뭐, 맛소금도 나쁘지는 않다. 

완성된 달걀과 샐러드

래디시는 맛도 좋지만 색을 맞추기에 능력이 뛰어나다. 

원래 씹어서 쓴맛이 나오는 채소를 좋아하는 나는 래디시의 초록 이파리를 더 좋아한다. 그리고 래디시는 달걀 프라이를 먹을 때 손으로 이파리를 잡고 붉은 무를 깨물어 먹어야 제 맛이다. 


아삭.

다시 한번 깨닫는다. 

소금은 삶에 있어서 없으면 안 되는 것 중 하나라는 것을. 또한 참치액은 만능 요리꾼이라는 것을. 

달걀 프라이와 아스파라거스는 참치액과 정말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개들은 항상 보호자가 외출을 하려는 것을 빠르게 눈치챈다. 

옷을 갈아입거나 거울을 보거나 뭔가 바쁘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외출 준비의 계획을 세우기만 해도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내 개는 좀 심각할 정도로 눈치가 빠르다. 


준비부터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내 개는 눈이 정말 커지고 혀는 바닥까지 내려올 듯 헥헥거리고 점프를 내 허리까지 뛴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지만 절대 달라지지 않는 모습이다 


비는 그쳤지만 길은 비가 고여 있었고 흠뻑 젖었다. 

나는 개를 다시 안고 나의 덴젤이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내 개는 밖에서 안아 올릴 때마다 네 다리를 모두 허공에서 뛰는 시늉을 한다. 

단 한 번도 내가 놓치지 않았다는 게 행운이다. 

아, 오늘의 시작은 좀 험난할 듯하다. 


시동을 거는 일과 동시에 말 많은 나의 개도 짖기 시작했다.

왈왈왈왈.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공항에서도 멀지 않고 해안도로도 가깝다. 멀지 않은 거리를 운전해서 갈 곳들이 꽤 많다. 하늘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비가 내리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만나고 싶다. 

요즘 내가 즐겨 먹는 원두를 당연히 챙겨 왔지만 그라인더를 잊고 말았다. 

그 흔한 깨갈이도 없고 마늘 절구통도 없다. 그 좋아하는 원두를 생으로 씹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러 후기를 찾아보았을 때 커피 맛도 좋고 반려견을 동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지점이 일분도 채 남지 않았을 때 밭이 쭉 펼쳐져 있는 가운데 덩그러니 작은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귀신같은 내 개도 목적지가 다가왔다는 것을 눈치채며 짖는 방법을 바꾼다.


낑낑 끄으응


참,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녀석이다.

반려견 동반 카페를 방문할 때는 꼭 숙지해야 한다. 내 개가 안전하다고 생각해도 다른 개나 사람에게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 생각이 옳다,라는 것을 버려야 하며 또한 다른 개도 마찬가지다. 

내 개가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카페의 들어서기 전 꼭 반려견을 안거나 몸 집이 큰 아이들은 꼭 리드줄을 한 후 보호자가 먼저 앞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보호자들이 꼭 지켜야 할 예의 섞인 규칙이다.


이른 시간이라 중형견 한 마리 아기 한 명, 어른 두 명이 한가함을 즐기고 있었다. 내 개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허공에서 달리기를 시작했고, 빠르게 의자를 찾았다.

반려견 동반 커피 집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는 이 카페의 매력은 동화책에서나 볼 법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큰 통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회색 구름 밑으로 펼쳐진 이 그림이 볕을 받지 않아도 예쁠 수가 있다니, 기분이 좋았다. 

초콜릿 맛 커피

굉장히 달콤한 초콜릿 색의 커피의 거품이 이색적이다. 약간의 밝은 갈색을 띠는 대부분의 커피와는 전혀 다른 색이었다. 커피 한 모금으로 우중충한 날씨의 기분 따위는 사라졌다.

이곳은 내가 육지로 돌아가기 전 꼭 다시 재방문할 생각이다. 

나를 위해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이제야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딱 적당한 시간을 할애한 오전 시간에 감사했다. 



숙소에 돌아온 후, 내 개는 피곤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나의 움직임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숙면을 취했다. 제주에 와서 처음 보는 모습이다.

이제 개도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가는 듯하다. 

나처럼.


오전부터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아니, 뜬 눈으로 지새운 어젯밤부터가 불안한 생각에 머리가 썩는 기분이라고 솔직히 말하겠다. 사실 내 옆사람과 내가 내내 감정 소비가 되었던 그 큰일은 큰 축복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내게도 그 사람에게도 그렇다. 

오늘 하루가 빠르게 지난다면 그날은 과거가 된다. 그렇게 나의 머릿속에서도 과거로써 역할은 하겠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부딪히진 않지 않은가.


어서 빨리 나 없이 축복받는 그 많은 사람들과 나의 가족들의 시간이 마무리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마침 휴대전화가 울렸고, 반가움과 서운함과 약간의 절망도 섞어가며 나는 그것을 노려보았다. 소리 없는 눈물이 다시 또 흘렀고 마무리,라고 꺼냈던 나의 방정맞은 입을 두드리며 아프게 휴지로 눈 밑을 쓸었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말이라는 것은 너무 많은 상처를 남긴다. 

축복받아야 하는 이 날에 그 사람에게 징징거리고 싶지 않았다. 마치 네가 그럴 테니 내가 연락하는 거야,라고 휴대전화 벨소리가 말하는 듯, 다시 또 다른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이번에도 받지 않았다.


속이 비좁은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입을 걸어 잠그는 일이다.


서운함이 거세지는 바람과 같은 저녁, 하지만 축복하는 또 다른 감정과 같은 우울하게 내리는 비, 어떤 것이 더 힘이 셀까? 

어떤 것이 더 강력할까?


오늘 저녁은 황제처럼 시작해 볼 생각이다.


한우 살치살, 순두부, 육지에서 데리고 온 만만한 이탈리아 와인,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소금을 준비했다. 


개가 기지개를 켰다. 

눈이 동글, 입은 웃고 있는 듯한 녀석은 참 잘도 잘 모양이다. 이곳에 와서 녀석의 패턴이 생겼다. 

현관을 바라보고 나를 한번 바라본다. 

이 행동은 집사야 나갈 때가 됐으니 문을 열어라, 하는 무언의 말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현관문을 열었다. 


“으악”


기절할 뻔했지만 기절하지 못했다. 

세상에 키가 나의 허리만큼 오는 하얀 개가 문을 열자마자 바로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놀랄 수도 없이 내 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빠르게 문을 닫고 내 개를 확인했다.


당연히 짖고 난리가 난 녀석.

그때 단어만 눈에 띄어도 따뜻함에 눈물이 날 것 같은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후 또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홀로 제주에 있다는 것을 안다면 엄마의 걱정은 하늘을 찌를 테고 거짓말을 할 수 없는 나는 그렇게 또 엄마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래, 정말이지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무소식은 희소식이다.


나는 통 창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제치고 보았다. 

정말 큰 개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때 맞은편 숙소에서 창문을 두고 내게 흰 개를 가리키며 다시 나를 지목했다.


나는 어떨 결에 고개를 저었고 나 또한 맞은편 사람에게 똑같이 행동했고 당연히 고개를 저었다. 

서로 놀라 아주 잠깐 배시시 웃음을 보였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펜션 지기 개였다.


사전에 공지를 해주지 않아서 미안하다,라는 말을 듣고 개는 순하다,라는 말을 또 들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내 개가 순하다,라는 건 내게만 순하다,라고 인식해야 바른 반려견 문화가 성립될 수 있다. 언제든지 경각심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시간이 지난 후 흰 개가 집 안으로 들어간 후, 방광을 쥐어짜며 참았을 내 개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거센 바람과 비 따위는 내 개에게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균형 잡힌 개의 본능적 배설

또 하나의 좋은 점, 도시를 벗어나 정말 개로서 개답게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개가 과연, 이 점을 부러워하고 지향할까, 잘 모르겠다.


자, 이제 저녁 준비를 슬슬 해보자, 미리 사온 파 채를 물에 담가 놓은 후 이상한 맛 김치도 썰어 본다.

고기를 맛볼 땐 얼큰한 국물이 있다면 한몫한다. 

순두부도 끓여 낼 생각이다. 


한우 고기를 냉장고에서 꺼내 놓자마자 개가 나의 발 밑으로 와서 고개를 들고 콧구멍을 벌렁거린다. 참을 수 없는 냄새라는 것을 잘 안다.


순두부를 끓일 때 가장 중요한 건 고추기름이다. 

돼지고기가 있다면 고추기름을 만들 때 참 쉽고 감칠맛을 더해 준다. 하지만 난 한우를 구워 먹을 작정이기 때문에 돼지고기의 기름을 먹고 싶지 않다. 


우선 포도씨유를 냄비에 넣고 파를 송송 썰어서 질퍽하고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준다.

흐음, 냄새를 맡아본다. 


아주 달큼한 향이 난다. 고춧가루를 넣어 물과 함께 아주 조금씩 볶아 준다. 순두부를 끓일 때는 두부에서 생기는 물을 감안한 후 아주 적은 양의 물을 부어준다. 직접 멸치 육수를 끓여 만들면 더 맛있지만 고체 육수의 찬스를 쓴다. 이때 고체 육수를 한번 두드려주면 가루가 되고 훨씬 더 빨리 물과 만나 시간을 줄일 수 있으며 두부에 간이 더 진하게 밴다. 

이곳에서는 최소한의 재료를 쓴다. 


간장을 넣고 순두부도 함께 넣는다. 그리고 한소끔 끓어내며 마지막 참치액으로 간을 한 후,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대파를 썰어 넣고 다시 한번 끓여준다. 참 쉽지 않은가?

점성이 없는 군침은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흘러나온다. 아주 빠르게 삼켜야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한다.


아 꿀꺽.

대충 끓인 순두부찌개


나는 간단하고 맛있게 먹고 싶을 때 김치찌개 보다 순두부찌개를 선호하는 편이다.

정말 호로록, 씹을 것도 없이 쏙, 들어간다. 

집을 떠나 간단하게 음식을 해야 한다면 순두부찌개를 강력 추천한다. 


와인에 빠질 수 없는 건 역시 얇게 썰어 놓은 구운 고기다. 고기는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붉은색 술을 접할 땐 꼭 접하는 편이다. 소고기를 구울 땐 기름 없이 구운 후, 어떤 간도 하지 않고 신선한 고추냉이를 조금 얹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패스다. 

대신 보유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어떤 요리에도 장점 많은 재료로 쓰이는 채 썬 파를 함께 곁들인다. 

맛을 보니 나쁘지 않다. (꼭, 물에 담근 후 요리한다)


자, 이제 험난한 시간이다.

직접 한 요리를 하나씩 들고 저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 흔한 쟁반도 하나 없다. 

최소한의 계단 오르기를 하기 위해 머리를 써야 했다. 수저는 주머니에 넣고 큰 접시에 음식을 옮겨 담은 후, 천천히 계단을 올라 보았다.

개를 잊게 한 맥주
구운 살치살과 파무침

시원한 맥주로 첫 입맛을 돋우기 위해 지퍼 팩에 맥주를 담았다. 아주 괜찮은 방법이다.


닥, 네 번의 오름을 한 후, 완벽히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런, 맙소사


일 층에서 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손 많이 가는 너를 잊다니, 알다 가도 모를 일이다.


개의 간식도 챙겼다. 

다시 한번 주방을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잊은 게 있다면 즐기는 와중에 하산해야 한다.


나의 계획은 최소 한 시간 동안은 엉덩이를 떼지 않고 앉아 즐기는 것이다. 

드디어 험난한 여정에서 끝을 맺고 엉덩이가 편안하고 눈은 즐겁고 입은 호사를 부릴 시간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됐다. 


나는 오늘 우울함을 극복해 냈고, 다시 또 찾아오는 우울함을 받아들이지 않을 작정이다.

내게 칭찬을 한다.

오늘 참, 잘 견뎠다.

건배!


그리고 오늘은 좀 자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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