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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Apr 24. 2024

4. 잡고, 쏘옥 빨아 꿀꺽

비와 바람의 시작


밤 사이 눈이 펑펑, 정말 펑펑 내렸다. 

물을 머금고 있는 습설이라 엄청난 양의 눈은 마치 내가 설악산이나 한라산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장관이다.

꽃망울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모습을 어제도 발견했는데 눈이라니, 꽃망울도 참 이들이 반갑지 않을 듯싶다. 

제주의 날씨를 검색했다. 

한주 내내 회색 빛이라 예상은 했지만 가끔 반짝여 주는 해님이 잠시 나를 맞아주지는 않을까, 하고 상상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일어나 이틀 전부터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반찬들과 1인분씩 얼려 놓은 찌개와 국을 확인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또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말이 지나고 홀로 남을 내 옆사람의 배꼽시계를 슬프게 하고 싶지는 않다.



반려견과 동행하는 보호자들은 의식과도 같은 지침이 있다. 

꼭 공항 출국장에 들어서기 전 배변을 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내 개의 보호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는 정말이지 혼비백산, 영혼을 팔린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어디서 어떻게 그 중요한 의식을 치러야 할지 공항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개의 상태는 배변을 하기 전 허리를 구부리거나 뱅뱅 돌거나 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 시간의 시간 동안 갇혀 있는다,라는 생각이 내 머리를 뒤흔들었기 때문에 나의 불안은 더 커져만 갔다. 

그 많은 경험으로 나는 이제 베테랑이 되었다. 내 개가 배변을 하기 전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 기미가 아예 없어도 난 그냥 출국장을 향한다. 


초보 보호자들이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것, 중 하나, 내가 불안하면 내 개도 불안하다. 그리고 우린 개들의 미용을 위해 오랜 시간을 허비한다. 그 시간 동안 개는 배변하지 않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거다. 

의식에 너무 지체하거나 체력과 정신을 소비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려견 기내용 가방

시간을 여유 있게 쓴다면 공항 라운지에서 조용히 쉴 수가 있다. 내 개가 안착하고 있는 가방을 씩씩하게 둘러맸다. 

나는 지금 7킬로그램을 내 한쪽 어깨로 의지하고 있는 중이다. 조금 더 힘을 내 보자.


복잡하고 시끄러운 공항에서 내 개가 혀를 내밀고 할딱거리는 소리는 지금 내게 가장 크고 섬세한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나는 베테랑이다. 

이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나는 긴장하지 않았다,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라운지에 도착하자마자 헐떡이는 혀와 내 개의 얼굴을 들이밀며 지퍼를 닫았다. 

헥헥, 거리는 개

                                                                  모두가 알다시피 실내에서는 강아지의 터래기 한올 보여서는 안된다.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굳이 그렇게 해서 거길 들어가야 해요?
안 가면 되지”


나는 답한다.


“내가 편해야 개도 편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양해를 구하고 아주 빠르게 개에게 물을 권했다.


“할짝할짝할짝할짝”


참 맛있게도 먹는다. 


그리고 재빨리 입구를 봉쇄했다. 

짖음이 심한 내 개는 고맙게도 공항에서는 꽤 잘 따라주는 편이다.


휴, 애써 태연하려 노력했던 나의 등줄기 땀이 조금씩 식기 시작했다. 

이제 여유 있게 커피도 한잔, 콩알만 한 빵도 한 입 베어물 수 있었다. 

열린 지퍼 사이로 코를 내밀고 있는 개

그때 이 똑똑한 개는 조금 헐거워진 지퍼 사이로 코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지퍼가 열렸고 나는 그 순간을 포착했다. 다행히 맞은편 사람과 눈인사로 양해가 가능했고, 내밀어진 콧구멍을 재빨리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고 그 순간만큼 내 개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말아 쥐고 애써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고맙게도 내 개는 포기가 빨랐다.


제주에 도착한 후, 나의 웅장한 차 덴젤을 다시 만났다. 

서둘러 가방 안에서 개를 무장해제 시켜 주었다. 


덴젤의 운전자 좌석에 앉아 운전대를 잡았을 때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내 개가 코를 내밀었던 입구 지퍼에 회색 털이 잔뜩 끼어 있었다는 것을, 조금은 거칠었을 나의 손길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입가의 털이 뽑혀도 낑, 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미안했다. 조금은 울컥하기도 했던 것 같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개들은 이제껏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많이 겪는다. 


사람의 의해 짓밟히거나 또는 사람의 의해  따뜻함을 선택받거나.


몇 년 전 제주에서 만난 어미 유기견이 떠올랐다. 목이 말라 물을 허겁지겁 마시던 어미 유기견과 동행하던 새끼는 따뜻한 선택을 과연 받았을까?

드디어 자리 잡은 개

제주의 날씨는 예상대로 잔뜩 찌푸렸다. 

나는 비만 오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역시 하늘의 마음씨는 그리 오늘만은 곱지가 못하다. 


덴젤의 와이퍼가 얼마 전부터 말썽이다. 역방향으로 비를 닦아 낼 때마다 괴상한 소리를 내며 뻗뻗하게 굴었다. 


내가 세월을 먹었으니 하긴 너도 먹었겠구나.

8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튼실한 와이퍼였다.


이젠 바꿔 달라고 내게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하필 이 제주에서 또 하필 지금 말썽인가.


뒷좌석에 가득한 짐들을 내 옆 사람이 요리조리 옮기며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바빴다. 

오랫동안 공항 게이트 앞에서 정차를 하면 아무리 비상등을 켰다 해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다시 또 등줄기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 개는 이제야 자유를 찾은 듯, 조수석 자신의 시트에서 조금은 행동에서 자유로운 목줄이 채워진 체 시동을 걸고 있었다. 우선 앞다리를 유리문 쪽에 기대고 뒷다리를 까치발 들 듯 키 커지게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밖을 보았다. 그리고 시작되었다.


왈왈왈왈 으르렁 켁, 다시 왈왈왈왈왈


그 사이 덴젤의 와이퍼가 빠아아악 빠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낸다. 그리고 뒷좌석에서 자리를 아직 만들지 못한 옆 사람이 씩씩거리는 소리를 낸다.


다시 개 짖는 소리, 다시 와이퍼가 빠아아아아악, 다시 그가 씩씩.


가장 먼저 그의 씩씩거리는 소리가 고요해졌다. 


“가도 돼”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뒤를 확인했다.

온갖 짐들 속에 그의 엉덩이의 삼분의 일 정도가 좌석에 걸쳐져 있었고 그의 무릎은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위로, 더 위로 솟아 있었다. 그의 펌한 머리카락은 덴젤의 천장과 아주 친밀했다.


순간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고 애써 참으며 액셀을 밝았다. 

공항 앞 도로는 방지턱이 참 많다. 일반 도로도 그렇다. 그리고 나의 덴젤은 방지턱을 생으로 마주한다. 아무리 나의 발이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잡는다 해도 덴젤은 꽤 거칠다.


숙소로 가는 내내 나는 그 사람의 엉덩이를 지켜주지 못할 것이다. 방지턱을 넘어갈 때마다 옆사람의 입에서 으엇,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정신이 없다. 

그야말로 내 영혼이 날아가고 있는 중이다.


왈왈왈왈왈

빠아아아아아악

어엇 차앗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해는 늬엇늬엇 저물어 가고 어둠이 깔리기 직전 회색의 구름과 색 없는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 정말이지 첫날, 날씨 한번 못됐기도 하다.


빠르게 짐 정리를 하고 개의 물그릇까지 세팅을 완료했다.

그나저나 큰일이다. 사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것들이 왜 자꾸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참, 오산이다.


3층 짜리 땅콩 주택이라면 당연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우선 눈이 따라가는 것들을 보면 완벽했다. 주인장의 센스와 청결이 돋보이는 곳이다.

 

1층은 샤워실과 주방이라는 개념의 공간이다. 작은 소파 하나 없고 내 엉덩이 근육이 경직될 만한 딱딱한 의자들이 안녕, 하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이 공간을 쓰기 위해서 TV만 한 똑똑한 생활 가전제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2층과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이곳은 침대와 TV가 몸통이다.


이런, 내 개가 높은 폭의 계단 사용을 하지 못한다. 아마도 난 하루에 수십 번을 내 개와 오르락내리락해야 할 것 같다. 몇 번의 왔다 갔다로 인해 난 지금도 다리가 피곤하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눈이 바라는 대로 확정 짓지 말고 편리함을 먼저 찾기를 간절히 부탁한다. 

내가 머무는 계단이 있는 집은 이로써, 여기가 마지막일 듯싶다. 

먹고살기 위한 재료 

내일이면 다시 육지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절약해야 했기 때문에 빠르게 마트를 다녀왔다. 제주의 물가는 역시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참 낯설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상표의 것들이 많다. 

꼭 필요한 것들만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순간 이십만 원이 넘는 가격이 되어버렸다. 


내 옆사람과 나는 무언의 시선을 주고받으며 이십이라는 숫자를 보고 어깨가 동시에 올라갔다. 

이제보니 당연하게도 삼다수 생수가 가장 싼 곳이 제주다.


예쁘기만 한 무 실용적 주방

나는 빠르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터무니 없는 재료와 도구로부터 난 모험을 해야 한다. 


뭐 대단한 각오는 아니지만 웬만하면 스스로 하기,라는 타이틀을 목표로 한 제주 살이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몸이 뒤틀리며 게을러지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앞으로 나는 예쁘기만 한 이 주방을 실용적으로 잘 써야 한다. 역시 감성과 실용적인 것을 한꺼번에 갖추기는 참 어렵다. 




맛 김치찌개 

우선 냉동 삼겹살 몇 장을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냄비에 넣고 식용유를 붓고 볶는다. 

고기가 익어 갈 때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고 다시 볶는다. 고춧가루가 삼겹살에 붙어 떡지고 있는 건 고추기름이 생기는 중이라는 것, 말도 안 되는 조미료 덩어리 맛김치를 넣고 또다시 볶는다.


아, 이 맛김치는 진짜 맛없다. 


맛없는 김치로 찌개를 끓일 때는 식초 찬스를 써도 좋다. 하지만 이곳은 최소한의 재료뿐이다. 


이제 물을 붓고 두부를 대충 잘라 넣는다. 찌개가 팔팔 끓어오를 때 참치액으로 간을 맞춰 주면 끝이다. 


최대한 도구를 쓰지 않은 요리는 티가 난다. 두부의 모양만 봐도 엉망진창이다. 

네모 두부를 반을 잘라 손바닥에 올려놓고 칼로 자르는 법, 이 방법은  나만 쓰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눈에 선하다. 

여기서 나는 조금 웃어본다.


매우 억새 보이는 대파의 초록 부분도 가위로 숭덩, 잘라 넣는다. 

이렇게 도마라는 도구도 쓰지 않았다.

값 비싼 채소들

그래도 이 정도면 내 집이 아닌 곳에서의 첫 요리로 나쁘지는 않다. 다행히 그럴듯해 보일 수 있는 완제품 광어 활어회, 그리고 딱 새우도 함께 곁들였다.


점심때를 놓친 우리는 정말 배가 고팠다.


역시 국물 요리를 좋아하는 옆사람이 가장 먼저 김치찌개에 숟가락을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깊은 맛이 없군”


당연히 맛없지는 않아도 맛있지는 않은 맛, 나도 따라 숟가락을 넣었다.


나도 따라 말했다.


 “김치가 확 버렸네” 


나는 딱새우를 딱 한번 남동생의 찬스로 먹어봤다. 

해산물을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새우를 날 것으로 먹는다는 게 그리 친숙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때도 날 것을 권하는 남동생의 손길을 몇 번이나 거절했다가 딱 한 번만, 이라는 말에 입을 벌리고 남동생을 따라 했다.


“자, 꼬리를 잡고 쏘옥 빨아 당기고 꿀꺽”


“으응?”


남동생은 정말 꼬리를 잡고 벗겨진 흰 살을 쏘옥 빨아 당기더니 꿀꺽,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말했다.


“키야 이 맛이지”

제주 마트 광어회와 딱새우 

그리고 언니와  어린 조카가가 동시에 딱새우를 들더니 쏘옥, 빨아 꿀꺽.


순식간에 딱새우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었다. 


나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들처럼 쏘옥, 빨아 꿀꺽.

와 너무 맛있다.


신선하고 찰지고 쏘옥 빨아먹는 재미가 크다.


그 후 나는 딱새우에 재미를 붙였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쏘옥 빨아 꿀꺽.



내 옆사람은 막걸리를 좋아한다. 

제주를 왔으면 당연히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마셔봐야 한다고 한다. 이건 막걸리를 즐기는 사람들이 또 달리 즐기는 방법이라고 한다. 

상품의 이름은 굉장히 혹했다.


제주 전통 막걸리, 누구나 혹 할 법하다. 

옆 사람이 한 잔을 마시고 난 후 막걸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갑자기 심각해지더니 말했다.


“아 이러면 안 되는 거지
 전통 막걸리가 무슨 다 수입산이야?
 와, 이런 건 먹는 게 아니야”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정말 읽어보니 가장 중요한 쌀까지 수입산이었다. 그런데 전통이라는 단어를 붙이다니, 이건 좀 섭섭한 일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체크해 보길 바란다.


비와 바람이 거센 제주의 밤은 역시 거칠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것처럼 비가 내렸고 바람은 그 비를 이기기라도 하고 싶은 건지 내리는 비를 빗겨 나가게 할 정도로 거센 바람을 만들어 냈다. 

약해 보이는 작은 문 사이로 바람과 비가 마찰음을 냈고 그 억센 소리에 나는 꼬박 밤을 새웠다.


내일 비행기 과연 뜰까, 부터 걱정이 되었다. 

주말의 끄트머리는 옆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남동생의 똑 부러진 말이 생각났다.


“걱정 마 누나, 배는 결항되어도 
 국내선 비행기는 그런 일 거의 없어 지연은 되겠지”


내심 안도하며 기도했다.

그들의 그날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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