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참 신비스럽다. 또는 경악스럽다.
이틀 전부터 쓸데없는 짜증을 슬슬 내기 시작했고 피로감과 근육의 뭉친 느낌이 두 다리를 쇠붙이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상한 건 나의 호르몬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이야기가 스친다.
갱년기가 다가올수록 불규칙한 호르몬이 장난질을 한다는 것이다. 노예가 되지 않도록 애를 쓰긴 했지만 역시 떠나가는 님 보다, 떠나가는 세월이 아쉬운 법이다.
그것에 맞게 내 몸을 맡기고 호르몬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세상은 진통제가 널브러진 좋은 세상이지 아니한가.
나는 서둘러 1인용 냄비에 생수를 붓고 인덕션 전원을 켰다.
진통제를 빠르게 넣기 위해서는 가장 빠른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편리한 육지의 삶은 늘 대기 상태에 있는 가지각색의 라면을 호화롭게 즐길 수 있다.
내심 뿌듯하여 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앗, 이것도 나를 위한 음식으로써 영양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끓는 물에 깨끗이 씻은 달걀을 퐁당, 넣어준다. 끓는 물에 단 9분, 더 지체하면 푸석푸석한 나의 피부 같은 노른자를 맞보게 될 것이다.
나는 짜장 라면에 오일을 듬뿍 넣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넣다, 라기보다 면이 담겨 있다,라고 표현해야 맞다. 올리브 오일을 사정없이 뿌리고 잘 익은 달걀을 잘라 얹고, 초록도 더해 보았다.
와, 근사한 한 끼가 또 완성이 된다.
대충 국그릇에 국과 밥을 담아 반찬통을 꺼내어 서서 먹기가 일쑤였던 바로 며칠 전이 떠올랐다.
가족을 위한 밥상과 나의 밥상은 당연히 달랐음에 나 자신에게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인스턴트 음식에 불과하지만 잘 차려진 내 밥상은 나의 자존감을 높이 만들어 준다는 점을 잊지 말고 살아야겠다.
나를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의 크기가 생겨난다.
아랫배의 통증과 허리의 통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딱 기다려라 호르몬아, 진통제가 들어간다.
그나저나 이상하다. 요즘 짜장 라면의 양이 줄어든 건가?
이럴 수가, 양이 모자라다.
맙소사.
제주에서는 더 많은 양의 저장 능력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