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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Apr 17. 2024

3.D-1 꽈배기는 과연 달다



나의 하루 생활에서 요리에 필요한 재료, 또한 세면을 하기 위한 도구, 쓰기를 위한 도구, 등 의식주에 해당하는 필요한 것들을 줄이고 또 줄여 보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정말이지 한 사람이 생활을 하는 데 있어 필요한 도구들은 엄청나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또는 잊고 산다.

물론 나도.


당최 나는 미니멀 라이프가 될 수 없는 사람인 모양이다. 

차 탁송을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고 줄인 도구들을 적어가며 지워가며 하나씩 채워 보았다. 


아, 나의 차가 작은 것일까, 이미 뒷좌석은 나의 도구들로 꽉 찬 상태가 돼 버렸다. 그리고 확실한 건 내 개의 짐도 한 박스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개의 짐과 인간의 짐

도구들로 꽉 찬 나의 차를 탁송 업체가 싣고 간 3시간 후, 나와 내 옆사람은 여유를 부리며 두 손 가볍게 여정에 오를 생각에 조금씩 현실감을 느끼며 제주도,라는 세 글자를 검색하며 벅차기 시작했다.


그때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나의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나의 차는 목포로 출발하지도 못한 채, 머물러 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속에는 개가 먹을 냉동 고기와 내가 먹을 냉장 음식 재료들이 아이스 팩과 함께 고스란히 들어있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은 아이스박스의 수명은 딱 1박 2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영하의 날씨도 아니라는 점, 나는 소름이 돋았고 그것을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렇게 뛰었다. 


보기 좋게 나의 작은 차는 다시 나의 집 주차장으로 돌아왔고 거대한 아이스 박스의 내용물은 다시 냉동실로 직행했다. 당연히 비행시간도 늦춰야 했다. 


아뿔싸, 반려견 동반 비행이 유선상 예약 완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들의 미간에 진심 어린 화가 뻗치고 있었다. 분명 유선상 예약을 했고, 녹음까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항공사의 부주의로 하마터면 내 개는 이틀을 쫄쫄 굶어가며 남자 보호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뻔했다. 이건 신이 내려 주신 도움의 손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배가 결항되어 계획에 차질이 생겨버렸지만 결론적으로 보니 아주 다행한 일이지 않은가.


나의 본가 가족들은 말한다. 

내 개는 선택받은 개라고, 물론 이 세상의 모든 반려견은 선택을 받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함과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식의 뜻을 긍정적으로 표현한 뜻이라고 말한다.


그때를 떠올렸다.

제주도에 개와 동반하는 첫 여행이었다. 

항공사의 규칙의 따라 나는 한치의 어긋남 없이 개를 작은 네모 가방에 넣었고 짖을지도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마치 내 개가 독극물이라도 되는 냥, 행동했다.


나는 지독히도 폐를 끼친다,라는 말을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인간형이다. 

개를 싫어하거나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 잘 안다. 

나 또한 어릴 적 개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던 사람 중 하나다. 그것을 이겨내는 데 나의 형제들의 옴팡진 장난이 힘을 실어주긴 했지만 나도 참 개를 무서워했다.


그들을 이해하기에 독하게 나는 내 개를 외부와 차단하려 노력했다. 

가방을 메고 비행기 좌석까지 앉는 데 성공했고 그제야 나는 긴장이 조금씩 풀리며 긴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그때였다. 내 개가 들어있는 가방을 앞 좌석 밑으로 끼워 넣기 위해 나는 좌석에서 일어서며 가방을 어깨 위로 들었다. 앞 좌석에 있는 낯선 여자는 그때 막 좌석에 앉으려던 찰나였고 악, 소리 낑, 소리, 왈, 소리 하나 나지 않는, 그런 개의 모습도 보이지 않은 까만 네모 가방을 보며 갑자기 자지러지듯 소리쳤다.


“아씨 강아지, 저것 좀 치우면 안돼요?”


나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선택받은 나의 개, 팔자가 상팔자인 그 귀한 내 개를 보고 저것, 이라고 말했다. 

심장 속에서 분노가 불타오르고 여자의 입술을 집게손가락으로 합치고 싶은 마음에 이글거렸지만 나는 꾹 참고 고운 테로 말했다.


“갇혀 있는 거 보이세요?
 나오지 못합니다”


이 대화로 나는 끝을 맺고 싶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그 태도가 연장이 된다면 나도 상대방의 태도처럼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낯선 여자의 당당했던 태도는 갑자기 사라지고 마치 다른 여자를 마주한 것처럼 극한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기 너무 무섭다고요 아아아
 다른 데 앉으면 안돼요?”


개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은 분명 정해져 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제 발 밑에 놓인 채 절대 나올 수 없어요
 그리고 제가 잡고 있어요”


여자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자기의 생각을 꼭 관철시키고 말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다.


“아씨 진짜 너무 싫어”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여자에게 어떤 피해를 줬을 까? 에 대해서 말이다. 

난 이 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단 한 가지도 없다. 


오히려 나는 내 개를 독극물이에요,라고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의 감정과 체력과 돈을 소비하지 않았는가. 억울했고 곱지 못한 언행에 또 한 번 억울했다.


보다 못한 여자의 지인이 내게 말했다.


“강아지를 무서워해서 그래요, 미안해요”


내 옆사람이 나의 손을 토닥거리며 조용히 말했다.


“됐어 됐어 괜찮아”


첫 여행의 단추를 분노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 앉았고 네모 가방을 의자 밑에 밀어 넣었고 다시 한번 잠금을 확인했다. 


여자가 좌석의 벌어진 빈틈으로 고개를 내밀며 다시 한번 내 화를 돋았다.


“진짜 짜증 나, 배를 타지”


나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속사포로 뱉었다. 


“저기요, 다음에 타실 때는 반려견 좌석을 먼저 확인하고 타세요
 규칙 잘 지키는 내 개한테 민폐 끼치지 마시고요”


내가 만약 이때 가마니가 되어 가만히 있었다면 여자의 예의 없는 행동과 말에 수많은 보호자들이 감정소비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골라서 하는 말을 들어 보면 고쳐질 성격이 아닐 수도 있겠다. 


큰 소란이 날 뻔한 일은 다행히 내 옆사람으로 인해 조용히 마무리가 되었다. 


그 후, 이번의 제주도행, 나는 당당히 비즈니스 석을 끊었다. 

좀 더 넓은 좌석에서 내 개를 가방에 넣어 두고 싶었고 분란의 씨앗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넓은 공간에서 남과 세밀하게 눈을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뱃길 결항으로 비행시간 변경 완료를 하면서 내가 미처 확인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비즈니스 석은 이륙과 착륙 시 위 선반에 네모 가방을 넣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거리를 이륙과 착륙 시 캄캄하고 막힌 곳에 15분씩이나 내 개를 넣어 둔다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만약, 유럽을 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고 좌석을 변경해야만 했다. 


모든 계획들이 꽈배기처럼 꼬였다. 


항공사 측에서 말했다.


“변경 횟수를 다 쓰셨습니다”


다시 한번 체크했다. 다시 꼬일 일이 있을까?


차가 떠난 후, 반나절이 지났고 다행히 목포에서 제주까지 가는 배는 안전하게 뜰 예정이라고 한다. 

이제 난 내일 내 개만 단출하게 들고 여정에 나서면 된다. 


역시 꽈배기가 달지 왜, 달지 않겠느냐, 훗


진짜 D-1이 다가왔다.

이른 아침 나의 차가 다시 아이스박스와 많은 도구들을 싣고 완벽한 탁송을 위해 떠났다. 나의 작고 앙증맞은 차는 오늘따라 웅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제주에서 만나자, 나의 덴젤!


참고로 나의 8년 된 웅장한 옵티머스 같은 내 차의 이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덴젤 워싱턴이다.


왜?라는 말로 간혹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오해의 내용은 독자들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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