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째, 비와의 사투, 그리고 혼자 다 하기
주기적으로 새벽 4시가 되면 옆 집의 그 옆 집 개가 짖는다. 혹시 닭이 우는 법을 잘못 배운 것은 아닐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한 시간의 짖음이다. 그때마다 내 개도 함께 짖는다.
그때마다 나도 함께 신음을 짓는다. 나는 내 개가 잘근잘근 씹은 한쪽 귀마개가 성능을 잃어버린 것을 인정한 후 귀마개를 포기했다.
덕분에 숙면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나의 눈은 굉장히 퀭했고 어두워지고 있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뜬 후, 어렵게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설 친 잠은 나의 피로에 큰 도움을 주지 않고 이른 기상을 할 수밖에 없다.
내 개가 누워있는 내 얼굴에 대고 짖는다.
왈왈, 왈왈왈
“끙차, 일어난다, 그래 일어난다고”
밤새 들이친 비바람은 날 괴롭히는 게 아직도 모자란 지 진행 중이다.
늦잠을 포기한 후, 가장 먼저 개 밥을 챙기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기상 후 첫걸음이라 아주 조심스럽다. 30대에는 생각 못한 행동이다.
내 개는 얼마 안 된 이 생활에서 패턴으로 인식한 행동 중 하나, 밥을 쩝쩝 맛있게 씹은 후, 물을 할짝거리고 문 앞에 서서 시선으로 나를 부른다. 내가 본체만체하면 작은 소리로 왈, 하며 부른다.
아직 비바람이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꿋꿋한 내 개는 나가야만 한다는 거다. 아직 문 앞 나무판에 물이 빠질 겨를 없이 고여 있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만약 발이 흠뻑 젖는다면, 아침부터 난 개털을 드라이하고 빗질을 하고 바르며 으르렁, 거리는 성질 예민한 개와 기싸움을 해야 한다.
다시 개가 짖었다.
“왈왈왈왈”
굳이 해석하자면 문 빨리 안 열면 실내에 오줌을 왕창 싸고 똥까지 쌀 거다,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지체할 겨를 없이 잠옷바람에 퀭한 눈으로 카디건을 걸친 체 비와 바람을 이겨내며 문을 열었다.
아주 활짝.
비와 바람이 들이친다.
나의 한숨은 바람 보다 더 길었다.
하아아아아아아아
제주가 원래 이렇게 추웠었단 말인가.
내 개는 역시 패턴의 동물, 비바람에도 끄덕 없는 일을 치르기 위한 행동은 변함없이 굳건하다.
나의 개처럼 나도 정해진 패턴에서 꽤 오랫동안 하루를 시작했다. 제주에서도 이 패턴은 꼭 지킨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고 숙소 정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반려견과 함께 지내왔던 숙소라 비가 내리는 날에는 냄새에 굉장히 취약하다. 육지에서 가져온 피톤치드 원액을 섬세하게 뿌리고 닦았다.
바닥이 뜨끈뜨끈, 보송거렸다.
어제 오후, 펜션지기 여사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웃는 인상과 꽤 조용한 성격을 내 비치고 있는 여사님을 보니 반가웠다. 며칠 만에 사람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이니 더욱 반가웠던 모양이다.
나도 참, 사람을 좋아했구나. (낯선 사람)
둘째 날 목격했던 개의 이름은 마리였다. 아니, 말이라고 한다. 말이는 오랜만에 보는 아주 순하고 착한 강아지다. 큰 몸으로 작은 개가 말도 안 되는 버르장머리를 보여줘도 점잖게 받아 준다.
단 한 번 짖는 것을 보지 못했다. 놀라울 정도다.
사람의 손길도 마다하지 않는 친절한 개, 역시 펜션 개답다.
나는 오늘 맞은편 숙소를 방문했다. 계단 덕에 허벅지에 근육이 생길지는 몰라도 나의 무릎이 늙어 가는 것 같았고 알코올 섭취에 의한 발의 헛디딤과 같은 위험 때문이다.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 건 활동면적이다. 혼자 지내기에 당연히 적당한 공간이라 대부분 그렇게 말하지만 폐쇄,라는 좁은 공간이 내게 주는 압박감은 좀 병적인 면이 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느끼는 공포와도 같았다.
맞은편 숙소는 4인 기준 숙소였고 가격이 지금 있는 곳과 배로 차이가 났기 때문에 장기 숙박의 경우 게스트에게 미리 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맞은편 숙소를 보자마자 바꾸겠다고 말했고, 이사 날은 내일이다.
적은 짐이지만 그래도 비를 맞으며 이사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제발.
오전 열 한시가 되자 비가 사라지고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었고 구름이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회색 빛 구름이 조금씩 맑아지는 듯했고 볕이 보이지 않아도 좋으니 날씨에 작은 기대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와 나는 마음이 급했다.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운전대를 잡았다.
오늘따라 개는 더욱 힘차게 짖었다.
비가 멈춘 틈을 타 애월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조금씩 비춰주는 볕을 보며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고 개의 짖음 또한 거슬리지 않았고 활기찼다. 또한 낯선 도로를 운전하며 차가 많지 않다는 점이 나를 안정시켰다.
마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구름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나 또한 그곳처럼 구름을 타고 날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바람이 아직 거셌지만 창문을 열고 이 귀한 날씨를 만끽했다.
만약 애월에 숙소를 잡는 다면 꼭 이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추천한다. 또한 걷기를 한다면 아기자기한 집들 주위에 가득한 이름 모를 풀과 추운 날씨를 버티고 피어 있는 꽃도 구경할 수가 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탐색해 본다면 이름난 관광 장소가 아닌 분명 나만 알 수 있는 예쁜 풍경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린 드라이브를 마치고 개와 함께 갈 수 있는 카페를 찾았다.
꽤 추운 날씨에 코끝이 시리고 두 어깨가 오들오들 떨렸다. 그래도 가까이서 바다를 보는 경험은 놓칠 수가 없다. 바람에 의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파도의 너울은 대단했다.
넋을 놓고 개를 안고 함께 보고 있다 보니, 마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심도 생겼다.
어우,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고 난 개를 안고 따뜻한 카페로 달렸다.
개와 나는 따뜻한 커피와 약간의 먹을거리를 주문했다.
2층으로 올라오자마자 텅 비어 있는 공간에 딱 봐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중년의 여자 두 명이 휴대전화의 스피커 통화를 최대치로 올려놓은 듯한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생각 없이 바다를 볼 수 있는 창가 자리를 선택했고 조용히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동을 축소시키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노래까지 불러 댔다.
조금 불편한 마음은 있었지만 난 선택권이 없다.
다른 자리에 앉고 싶었지만 좁은 의자와 높은 의자는 개와 함께 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그 부류의 사람들이다.
내가 양해를 구한다 해도 그들에게 먹히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꾹꾹 참았다. 그래도 오들오들 떨며 바람은 맞는 것보다 개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게 낫지 않은가.
그들의 대화는 참 많이 이상했다. 듣고 싶지 않았으나 그 큰 목소리와 스피커 폰의 최대치 능력의 소리를 어찌 듣지 않을 수가 있을까.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순간 두 명중 한 명의 여자가 갑자기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뭐 하는 짓이냐며 큰 소리를 치려던 순간, 내 개에게 영상통화를 들이밀며 손녀딸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저기 우리 손녀딸이 보고 싶다는데 잠깐만 찍을 게요”
이 여자는 참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달려들었다.
아주 작은 소리, 또는 짧은 말이라도 실례,라는 단어를 썼다면 이 상황은 좀 더 나아지거나 내 기분도 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난 당황했고, 손녀딸이 휴대전화 영상에서 보이는 순간, 이 예의 없는 여자에게 거절의 뜻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 내 개는 초상권을 잃었다.
여자가 전화를 마치더니, 하는 소리는 더 가관이다.
개 털의 색깔을 보며 어떻게 교배를 시키면 이 색깔이 나오는 건지 물었다.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말을 잘도 떠들었다.
나는 답답했고 흔히 말하는 개 농장의 존재도 모르는 인간인가 싶어, 손을 내 젓고 말했다.
“실례지만 제가 지금 중요한 전화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아, 그래예에?”
나의 입에서 분노가 섞인 탄식의 숨이 길게 배어져 나왔다.
나는 너무 속상했다.
세상에 어떻게 교배를 시키면?이라는 말을 떠들 수가 있을까? 대체 어떻게 라니.
인간도 또 다른 상위 괴물 같은 인간이 좋은 유전자를 위해 또는 좋은 색깔의 인간을 갖기 위해 억지로 교배시킨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뭐라고 말할 것인가.
과연 그들은 벌해야 한다고 떠들 수 있을까? 괴물이 하는 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분노는 빠르게 죽어버렸고 너무 슬펐다. 슬픈 감정이 극도로 강해져서 힘이 풀렸다.
그들은 끊임없이 떠들고 끊임없이 노래했다.
자리를 뜨기 위해 먹던 것을 정리하던 중, 그들이 말했다.
“야 이거 개 컵이야?”
“맞네 맞다”
라고 하며 크게 웃어 댔다.
이 카페는 식수 코너에 개를 위한 물컵도 구비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 납작한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신 모양이다. 참 가지가지다.
난 개를 얼른 끌어안고 배낭을 메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멋모르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내게 인사를 했다.
“잘 가요”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의 까칠한 모습에 나를 욕했을 그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쨍한 볕을 올려 보았다.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하늘의 빛을 하늘색이라고 표현되는 이 단어도 지나치게 아름답다.
거센 바람 덕에 하얀 구름은 빠르게 움직이며 내 감정을 달래 주었다.
행동이 멈춘 나를 보며 개가 네 다리를 버둥거렸다.
“역시 넌 멈추면 안 되지? 알았어 알았어”
햇살이 너무 좋아 그냥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나는 개를 덴젤 앞 좌석에 앉혀 놓고 난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 없이 바람과 하늘과 볕을 즐겼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 보며 말했다.
“이런 날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개도 참 행복한 모양이다.
인간의 잔인성과 욕심으로 개 농장이란 곳에서 태어나게 했고 젖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엄마와 헤어지게 된다. 네모 박스 안에서의 생활은 작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적당량이 아닌 절대적으로 모자란 사료를 먹는다.
그래야만 인간이 가장 충족하고 만족할 수 있는 크기의 개의 모양새가 나온다.
잘못된 선택을 받아야만 했던 수많은 개, 나쁜 괴물 손에 들어가 커다란 몸짓을 작은 몸짓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너에게 나는 참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죄스럽다.
항상 웃을 수 있도록 할게, 나의 따뜻한 하트를 가져가렴
내게 와 줘서 고마워 내 개야
(반려견 동반 가능 식당이지만 1인분은 눈치껏, 반려견 동반 금지)
오랫동안 차 안에서 휴대전화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외식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근처 반려견 동반 식당을 찾아야 했다.
마침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장소가 있었고 오픈 시간도 딱 맞아떨어졌다. 개 유모차도 준비하고 있었던 터라 걱정 없이 그곳을 향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다.
내가 첫 손님인 것 같아서 좀 부담스러웠지만 애초부터 난 주문을 한다면 2인분을 주문할 생각이었다.
남은 음식을 당연히 포장해 갈 생각에 아주 당당하게 음식을 먹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다.
“반려견 동반 식당 맞죠?”
여자가 나를 보고 내 뒤를 확인하더니 말했다.
“혹시 몇 분이에요?”
“반려견과 저요”
갑자기 여자는 부정을 가득 담은 얼굴을 하며 대답했다.
“반려견 동반은 안 돼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일주일 전 반려견 동반 손님이 남긴 리뷰를 보고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반려견 동반 식사는 안된다고 한다.
나는 짧은 시간에 생각했다.
그리고 지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1인 식사 되게 싫어해, 정말 눈치 밥이야”
아, 이 상황이 그런 상황이라 확신했다.
1인 식사 손님 거부,라는 것에 대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난 양쪽 다 이해를 하는 편이라 개인적으로 분노한 적은 없다.
그런데 내게 이런 상황이 닥친 것이다.
뒤늦게 나는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여자는 뭔가 꽤 안타까운 표정이다. 여자가 그렇듯 나도 참 안타까웠다.
하지만 여자가 더 안타까워해야 하는 게 맞다.
난 분명 2인분을 시키고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먹으려고 작정을 했었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솔직히 말을 하는 게 나았을 거다.
나는 문을 박차고 나가기 전에 말했다. 뒤통수가 따갑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첫 손님인가요?”
여자의 표정이 꽤 좋지 않다.
그냥 눈 한번 꿈벅, 고개는 까닥, 해 보였다.
이대로 나간다면 내 기분 또한 좋지 않았을 것 같았다.
“저, 1인분 포장은 되나요?”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그럼요 전 메뉴 포장돼요”
나는 메뉴를 훑었다.
“저 오징어 두루치기 포장 부탁합니다”
오징어 두루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여자는 계속 내게 말을 걸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솔직히 첫 손님이 그냥 가면 우리도 불편하고 그렇지 하루 종일 장사가 안되거든”
여자의 입담은 끊임이 없다. 하지만 나는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자, 여기 맛있게 먹어요”
“수고하세요”
그렇게 나는 오징어 두루치기와 여자가 끊임없는 말을 하는 동안 돼지고기 두루치기도 시켰다.
결국 삼만 육천 원으로 마수걸이를 하고 온 셈이다.
뭐, 나름 이 순간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장사 대박 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1인분 식사도 내어 주는 날이 올 테니까요!
개와 나는 추위에 지쳤다.
하도 바람을 세게 맞아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목도 칼칼했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루가 또 지나기 전에 글쓰기를 해야 한다.
마음이 급했다.
개에게 물을 주고 빠르게 식사를 차렸다.
이런, 포장해 온 음식의 양을 왜 걱정했을까? 두 가지 음식의 양이 그야말로 1인분 양이었다.
참나 원, 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리뷰 그거 뭐지?”
역시 인터넷 리뷰는 믿을 만한 게 못된다. 아니, 바보 같은 내가 낚인 게 잘못이다.
손쓰지 않고 먹기만 하기 위해서 바깥 음식을 선택했지만 덜 맵게 해 주세요,라는 말을 여자는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결국 나는 미역국을 끓였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가지의 두루치기를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쓰레기가 스트레스였다. 이곳에서는 아직 따로 분리하지 않고 버리기 때문에 나는 마치 뭔가 범법자가 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쓰레기와 재활용 품을 버리는 클린 하우스,라는 곳을 꼭 가볼 생각이다.
참 불편한 제주 생활, 이지만 이렇게 불편한 동선 덕에 쓰레기를 줄이는 게 며칠 동안 몸에 배고 있는 중이다. 비닐 하나라도 나온다면 씻어서 재사용을 하거나 남은 채소 자투리는 달걀과 볶아 먹는다 거나,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너무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라 아직도 낯설지만 조금은 불편한 이 생활이 꽤 괜찮다.
피곤한 하루다.
또 비와 바람이 시작했다.
오늘 볕을 볼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다.
내 개가 피곤함을 호소한다. 워낙 예민한 개가 더욱 예민하고 짜증스러워졌다.
무슨 이유인지 자꾸 내 얼굴을 보고 짖는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짖고, 엎드려 있다가 또 짖고, 당최 이유를 모르겠다.
일찌감치 우린 이층으로 올랐다.
이젠 나의 무릎도 내게 그만 좀 하라고 성질을 부린다.
뚜둑, 뚜두둑
아, 아프다 내 도가니.
컴퓨터를 앞에 두고 드디어 앉았다. 글을 적어 넣고 엔터 키를 누를 때마다 개의 눈치가 보인다.
얼마나 나를 흘겨보는지 정말 얄밉다.
“이봐 여긴 내 공간이고
이 공간에 네가 조금 얻어 들어와 있는 거야
알아들어?”
한참 뒤 개가 완벽하게 잠이 들었다.
끙, 하는 소리도 낸다. 굉장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맥주 캔을 딸까 말까, 하며 엄청난 고민을 했다.
딸깍, 소리가 나면 분명 벌떡 일어나 짖거나 으르렁 할 게 뻔하다.
에라 모르겠다.
딸깍, 취이이
아, 내 개는 오늘 밤 정말 떡 실신을 한 모양이다.
밤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 짖거나 왔다 갔다 발톱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던 개가 며칠 만에 숙면을 취한다.
역시 사람이나 내가 자는 모습이 가장 사랑스럽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더 마신 후 아마도 화장실을 세 번 이상 가기 위해 계단을 탐험해야 할 것 같다.
고되지만 맥주는 포기할 수 없다.
당신들도 그런 모습이라는 것 다 안다, 훗.
자, 모두 굿나잇
(혼자 다 하기)
내가 지금 수면 중인가? 아닌가?
캄캄한데 이상하다 눈을 뜬 건가?
자꾸 소리가 들린다.
꾸르륵 꾸륵, 아장장장 끼잉
앗차, 나는 벌떡 일어났다.
개가 왔다 갔다, 안절부절이다.
시간은 아직 새벽 두 시다.
또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에 개의 배를 쓸었다.
워낙 상상초월의 예민한 개라 소화능력도 어릴 때부터 많이 떨어졌다. 약을 달고 살았고 췌장이 좋지 않았을 땐 나는 느껴 보지 못했던 큰 절망의 감정도 느껴 보았다.
그 시간을 겪어 오면서 나의 노하우가 담긴 식단도 있고 응급 시 노하우도 있다.
제주에 오기 전 가장 많은 상상을 하며 대비를 했던 일도 이 일이다.
짐을 챙기며 인간의 비상약 보다 개의 비상약을 더 많이 챙겨야 하는 게 참 씁쓸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내 개의 정상적이지 못한 이 점들을 조금씩 받아들였다.
처음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어서 억지를 쓰며 고쳐 보자,라고 별의별 짓을 다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고 결과는 늘 내 개를 너무 지치게, 힘들게 했다는 거다.
내 개를 잘 아는 수의사가 말했다.
“어차피 근본적으로 고칠 수 없는 것은 내 개는 원래 이렇다,라고 받아들이는 게 먼저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까지 6년이 흘렀던 것 같다.
내 개의 나이는 나의 지레짐작과 수의사의 판단이다. 그렇게 내 개는 지금 일곱 살을 넘어가고 있고 지금 같은 상황을 현명하게 잘 넘어갈 수 있도록 받아들이고 훈련했다.
이럴 땐 잠결이라는 게 없다.
굉장한 정신력으로 계단을 내려가 약 봉투를 챙겼다. 복통이 올 때마다 먹는 이 약은 한 달에 다섯 번은 먹이는 것 같다. 씁쓸하지만 다섯 번 밖에 안돼,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약 복용 후, 삼십 분 정도가 흘렀을까, 축 쳐진 치친 개의 모습이다.
다행히 다시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또 한 번 개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했다.
한번 깬 잠은 쉬이, 다시 들지 않는다.
혹여 토하기라도 할까 실눈을 뜨고 보다 감다 보니 여섯 시가 훌쩍 넘었다.
이럴 바에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일찍 잠드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우린 조금 일찍 하루를 시작했다.
비바람이 조금 잦아들었지만 여전하다. 제주의 큰 장점은 비가 아무리 세차게 와도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는 금방 마른다는 것이다. 밤새 비가 와도 밤새 불어댄 바람이 물기를 앗아간다.
육지에 있을 땐 밤새 비가 오면 그 다음날 산책하기가 어렵다.
고인 물과 축축한 잔디와 사방에는 지렁이가 오글오글 거린다.
제주는 태풍이 들이닥치지만 않는다면 어떤 날씨에도 산책하기 참 좋은 곳이다.
깨어 있던 시간이 오래되어서 그런지 꽤 배가 고팠다.
오늘 아침 메뉴는 육지에서 가져온 샐러드 채소와 지인에게 선물 받은 아라비아따 소스로 파스타를 만들어 보자. 나는 육지에서 채소를 챙기면서 자신만만했다. 실리콘 백 하나라면 채소를 길게 한 달이상 싱싱하게 보관이 가능하다.
여유 있게 챙긴 채소를 보니 참 흐뭇하다.
요리하는 시간 동안 내일 이사를 하기 위해 빨래를 돌리기로 했다. 수건은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빨아서 건조해 놓고 간다면 여사님도 좋고 내게도 기분 좋은 일이 될 거다.
샐러드 채소를 손질한 후 물기를 빼기 위해 채반에 올려 두고 물을 끓이고 소금을 넣어 준다. 그리고 파스타에 들어갈 마늘을 편 썰고, 올리브 오일을 팬에 둘렀다.
팬에 마늘을 넣자마자 지글지글, 이때 불을 은근하게 줄여준 후 오일에 마늘 향이 배어 날 수 있도록 충분히 볶는다.
잘 익은 면을 면수와 함께 팬에 넣고 오일을 입혀 주는 의식을 치른다. 그리고 아라비아따 소스를 부어 보기 좋게 섞은 후 다시 올리브 오일 한 숟가락으로 마무리한다.
물기를 뺀 샐러드 채소 위에 올리브 오일과 후추 소금을 뿌린 후 예쁜 접시에 파스타와 함께 담아내면 간단하고 훌륭한 요리가 된다. 식성에 맞게 화이트 발사믹 식초를 뿌려 가며 먹어도 감칠맛이 돋는다.
이렇게 간단한 재료로 간단하게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세상은 참 감사할 것들 천지.
잊지 않고 살겠다.
제주는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곳이다.
식사를 마친 후, 신기하게도 빨래가 그 사이 끝났다.
이렇게 빨리 끝이 나도 되는 가 싶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흘러가 있었다.
세탁기의 문을 열고 수건 세 장 양말 세 켤레, 실내복 손수건 몇 안 되는 빨래를 꺼냈다.
십 년을 넘게 젖은 빨래를 건조대에 걸어 말리고 개고 하던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주부들의 혁명 아이템 건조기를 쓴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이 생활 습관이 젖은 빨래를 세탁기에서 꺼내는 일이 어색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젖은 옷을 꺼내어 툭툭 털어 건조대에 나란히 널었다. 일은 세탁기가 했지만 뭔가 큰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에 상쾌함까지 느꼈다.
나는 중얼거렸다.
“보송보송해져라”
오늘은 노동을 하는 날이다.
이층에 있는 짐을 다시 캐리어에 넣어야 했다. 그래야만 이사할 때 좀 더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짐을 캐리어에 넣고 오늘 밤 써야 할 것들만 밖으로 꺼내 놓았다.
3층에 있던 의자도 다시 옮겨 놓아야 한다. 내려올 땐 꾸역꾸역 들고 내려왔지만 무거운 의자를 다시 3층으로 옮기려 하니 도대체 동선이 나오질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포기했다.
내일 펜션 지기 사장님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가장 큰일이 남았다. 재활용 두 박스와 타는 쓰레기, 그리고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이다.
비는 그쳤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상태라 너무 추웠다.
아직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은 개를 데려갈지 아닐지, 고민하다 짖다 지쳐도 낯선 곳에 혼자 두기보다 데려가는 것을 선택했다.
덴젤이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쓰레기를 옮기느라 세 번을 왔다 갔다 했다.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사람이 절대 게을러질 수가 없다.
내가 아니면 누군가 해주던 생활에 또다시 감사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펜션 소개 글에 나와 있는 주소로 클린 하우스를 찾았다.
맙소사, 굽이굽이 가는 길은 낯설지 않지만 들어갈수록 심상치 않는 분위기가 연출된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불어오는 바람과 뭔가 새벽 같은 날씨의 색깔이 음산함을 더 부추겼다.
무서웠지만 혼자서 해야 한다.
아무도 날 대신해서 해 줄 사람은 없다.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한 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차 문을 잠그지 않았다. 비상시에 재빨리 올라타야 하는 그런 순간이 올 수도 있지 않은가. 비상등을 켜고 시동도 끄지 않았다.
그리고 세제가 담긴 스프레이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자, 담대하게 내리자.
날씨가 으스스함을 한몫했다.
뒤로 보이는 폐건물은 창문이 있어야 했던 자리들이 새카만 색으로 뻥, 뚫려 있었고, 세월을 먹으면서 단 한 번의 관리도 못 받은 듯 굉장히 쓸쓸해 보였다.
갑자기 좀비라도 튀어나올 광경이다.
좌, 우로 펼쳐진 말도 안 되는 밭들과 어디까지 갈지 모를 언덕 찻길이 망망대해처럼 보였다.
나의 눈은 사방을 훑고 있었고 재활용 품들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았다.
펜션 지기 여사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긴 아직 재활용도 음식 쓰레기도 큰 의식은 모자란 것 같아요”
그 말이 무색하게 정말 그랬다.
종량제 봉투 속에 처절하게 보이는 여러 음식물 쓰레기, 페트병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비닐과 타는 쓰레기,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제주에 대한 깨끗한 이미지 바다 색깔 같은 청량함은 어디로 가고, 이렇단 말인가.
정말 씁쓸했다.
내가 이렇게 버린다고 대체 이게 정리가 될까, 싶었다.
나는 빠르게 차에 올랐고 비참해 보이기까지 한 여러 개의 분리수거 통을 보며 한탄했다.
주소는 분명 클린 하우스였다.
하지만 클린 하우스는 없었다.
내일은 나의 유일한 자매와 조카들이 방문한다.
조카,라는 단어만 입에 올려도 애틋한 이들이 찾아온다는 소식에 참 반가웠다. 또한 내일 이사를 위해 남은 짐들을 다시 박스에 넣었다.
이곳에서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을 생각하니 좀 아쉬웠다. 그 새 이 숙소에 정이 든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보이는 초록 풍경 속 귤나무, 비가 오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이 하는 대로 몸을 그대로 내 맡긴 귤나무는 참 며칠 동안 든든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들리는 여러 새소리는 음악을 듣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현혹되어 있었다.
나는 볕이 들어왔을 때 이 숙소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첫날 이곳에 발을 디디자마자 흘러나온 노라 존슨의 음악과 어디선가 맡아본 코튼 향내음과 여러 반려견들이 머물다 간 미세한 냄새의 흔적들, 펜션지기님의 애정이 유난히 돋보였던 곳이다.
좁은 창 사이로 문을 열어 두면 하얀 커튼이 바람에 날리고 작은 새가 나무에 앉아 지저귀는 것도 볼 수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실 필요가 없을 만큼 동화 속에 머물고 있는 기분을 내내 즐길 수 있었다.
나는 꼭 이곳을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마지막 밤을 위해 육지에서 가져온 와인을 꺼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고민도 잠시 엄마를 걱정하게 만드는 건 전화를 받지 않아도 무게는 같을 것이다.
“응 엄마”
“왜 연락이 없어, 전화도 안 받고
별일 없지?”
“응, 그럼 별일은..
엄마 무소식이 희소식이잖아?”
나는 멋쩍어하며 애써 웃음소리를 들려주었다.
엄마의 대답은 나를 감상에 젖게 만들었다.
“그런 소리 마 엄마는 안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없어도 연락해야 하는 사람이야
엄마잖아”
나는 순간 숨이 헉, 막혔다.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밥은 먹었어?”
나는 목이 메어서 대답을 잠시 쉬고 마치 엄마가 곁에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엄마는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모른 척하는 연기는 참, 어울리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았다.
나는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는?”
“응 이제 먹으려고, 목소리가 힘이 없네?”
“힘이 없긴, 엄마가 하는 소리 있잖아?
나 독하다고… 별일이 있어도 나한테는 별일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은 쓸데없는 겁니다 네?”
그리고 약간의 침묵으로 나는 엄마의 감정을 받았다.
엄마가 말했다.
“그래, 알았다”
“응, 엄마”
엄마도 나도 우린 서로의 마음을 다 안다.
굳이 꺼내어 말하며 다시 그것을 되새기고 싶지 않다.
해가 참 많이 길어졌다.
이 맑은 하늘은 정말 금방 왔다 사라지는구나.
내가 느끼는 우울의 깊이도 저렇게 찰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