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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봉 May 28. 2024

팔자 좋은 직업은 세상에 없다

유채나물과 서니사이드 업


(11일째)


유채나물



조선시대 양반 같은 말이

적막은 내게 익숙하다.

하지만 마음을 다해 신나게 웃고 떠들었던 그들과의 밤으로부터 후유증은 다분히 녹아들었다. 


TV 없는 삶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글을 적어내는 시간이 좀 더 길어졌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부터 펜션지기 반려견 말이가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킁킁거리고, 뒷다리를 올리거나 두 다리를 굽히거나 행동이 아주 바쁘다.


나는 생각했다. 

말이는 정말 행복한 개 중의 개, 그리고 개답게 살고 있는 말이가 참 부럽다. 


내 개의 행복을 말이라 빗대어 생각하는 나지만 아마도 이건 순전히 나의 생각뿐일 것이며 내 개는 하루빨리 아파트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이 사실은 내 개를 아는 모든 이들이 웃으며 인정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숙소에 머물면서 우리에겐 무언의 질서가 생겨났다. 


유난히 시끄럽게 뻥뻥 짖어대는 내 개가 나도 부담스러워 말이가 잔디에 나와 있는 시간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


아마도 내 개가 말이와 역할을 바꾸어 나갈 땐 말이도 그 자리를 피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번갈아 가며 서로의 개의 배변 상황을 살피며 깨끗하게 치운다. 이런 보이지 않는 무언의 배려와 질서는 당연함에서 오는 떳떳함과 정겨움이 남는다.


갑자기 떠올랐다. 


육지에서 개와의 산책 중 우린 얼마나 많이 좋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는지 모른다. 내 개의 배변은 당연히 치워야 하는 것, 그 누가 치워야 한다,라고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말이다. 

당연한 것을 사람들은 너무 당연히 모른 척, 아닌 척하고 산다.


제발 반려견의 보호자라면 그들의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올바른 인식을 갖고 어우러지길 바란다. 



그들의 여행 내내 짓궂게 굴었던 날씨가 어찌 이리 하루아침에 둔갑을 제대로 하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허탈함에 눈물이 날 정도로 볕이 쨍, 하고 나왔다.


오늘은 아주 오랜 시간을 의자 위에 앉아 컴퓨터 위에서 손을 떼지 않을 작정이다.

그렇다면 시작 전 강한 에너지와 기분 좋은 아드레날린을 분출해야 한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유채나물

자, 나를 위한 요리를 시작해 볼 까.


어제 사온 유채를 다듬고 끓는 물에 살짝 데쳤다. 그리고 땅콩 된장이라고 바득바득 우겼던 시판 된장찌개를 끓여 볼 생각이다. 


지금 나오는 유채는 연한 줄기를 갖고 있어서 딱 먹기 좋을 때다. 단맛을 지니고 있는 나물이라 무침 볶음 또는 찌개에도 꽤 잘 어울린다.


살짝 데친 유채를 차가운 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뭉쳐 있는 이파리 부분을 떼어준다. 



당연히 봄나물을 무칠 땐  꼭 마늘, 파는 생략한다. 

본연의 맛으로 맛을 내는 봄나물은 강한 향의 재료를 섞으면 제 맛이 죽어버린다. 봄나물은 강한 양념이 아닌 아주 간단한 간만 한 상태의 것을 먹어야 진짜 봄나물을 먹었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식성은 그렇다.


고이 모셔 온 엄마 표 시골(방앗간 이름) 방앗간 들기름을 넣고 멸치 액 젓을 조금 넣는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살살 섞어 준다. 


싱그러운 제주 유채 나물을 입에 넣었다. 


넣자마자 캬,라는 소리를 내며 눈을 살짝 감았다. 

정말 달큼하고 맛있다.

꼭 혼자 먹어야 맛있는 밥 위에 얹은 유채나물

꽃이 살짝 보이는 부분은 더 맛있다. 

급한 마음에 선 채로 밥 위에 얹어 다시 입에 넣었다.


“하아, 맛있다.”


두 눈이 동그래지고 며칠 동안 쌓였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한 채소다.


자, 이제 끓는 물에 고체 육수 한 알과 시판 재래식 된장을 풀어 넣는다. 

팔팔 끓어오를 때 대파, 고추, 유채, 두부, 호박을 썰어 넣는다. 

이때 채소는 너무 푹 익히지 않고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간이 맞지 않을 땐 된장을 조금 더 넣는 것으로 간을 맞춰 준다. 

된장찌개는 액 젓으로 간을 하는 것보다 소금이나 된장으로 간을 더하는 것이 깔끔하고 맛있다.


육지에 있을 때 지인의 예쁜 잔소리가 생각났다.


“언니, 밥 먹을 때 단백질 좀 챙겨 먹어
 달걀 프라이라도”


나는 훗훗, 웃으며 예쁜 그녀를 생각하며 달걀도 프라이팬에 떨어뜨렸다. 

튀기듯 익혀주면서 불을 줄이고 뚜껑을 닫는다. 


다른 반찬이 있을 때는 달걀에는 따로 소금을 뿌려 먹지 않는다. 반찬 덕에 간은 충분하다.

자연스럽게 염분을 줄이는 방법이기 때문에 식사를 할 때마다 꼭 지키는 습관이다. 

재래식 된장찌개가 아닌 시판식 된장찌개


그럴듯한 색깔이 땅콩 된장찌개 같은 느낌이 났다.

맛을 본 후 나는 너무 놀랐다.


사실 시판 재래식 된장을 사서 이렇게 끓여 먹는 건 처음이다.

실망을 해야 할지, 놀랍다고 해야 할지, 이틀 전 우리가 함께 먹었던 그 된장찌개와 맛이 똑같았다. 

나는 이 큰 공간에서 홀로 호탕하게 웃었다.


땅콩 된장이라니, 아주 특별함에 환장한, 기가 막힌 발상이었다. 


재충전에 조금은 성공한 기미가 보였다. 

빠르게 커피를 내렸고 그동안 개를 밖으로 보냈다. 


내 개도 볕을 참 좋아한다. 

볕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꽤 기분이 좋아 보인다. 


잠시 베란다 문을 열어 놓고 바람을 맞았다. 

아주 멀리서 바람을 타고 온 비료 냄새, 또는 그(똥??) 냄새가 희미하게 코 끝을 맴돌았다.


거세게 문을 닫을 법한 나지만 난, 참 어느새 느긋해져 있었다.


커피와 시골의 그(?) 냄새는 꽤 잘 어울렸다.



(혼자라는 것)


닭, 아니 옆 집의 그 옆 집 개가 짖고 내 개도 또 따라 짖는다. 


속으로 읊었다.


‘분명 네 시야, 닭도 아닌 개, 저런 정확한 개를 봤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놀랍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몇 분 후 다시 잠을 청해 보지만 역시 역부족, 방향을 바꾸기를 몇 번을 했을까, 내 개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으르렁, 화를 낸다. 


“내 자리잖아, 내려가서 자”


제주에 와서 매일 반복되는 싸움이다. 개는 마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더니 왕, 단 한 번의 신경질적인 짖음을 뱉더니 밑으로 내려갔다. 정말이지 미운 일곱 살이 된 아이 마냥, 신경질을 부린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과연 믿어 줄까?


개에게 눈치를 받고 사는 나다. 

나쁜 놈.

부쩍 나이 들어 보이는 처량한 개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이대로 있다 가는 오늘 하루가 더 피곤해질 게 뻔하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글과 눈싸움을 한 나의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깜빡 잊은 안약이 너무 아쉽다. 


나는 물렁한 살의 느낌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새 개가 다시 또 옆자리로 올라와 있었다. 

거울로 비친 개의 모습이 처량하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했으니 개도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얼굴을 보니 십 년은 훌쩍 늙어 버린 듯한 모습이다.

나는 잠시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갈까”


그리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다리에 쥐가 나도, 팔에 쥐가 나도 처량한 저 개님을 위해 움직이지 않고 한 시간은 참아 보겠다. 

뒤척거렸다간 저 놈이 내게 욕을 퍼부을 수도 있다.


잠들지 못한 시간 동안 뒤척거리다가 조금씩 볕이 드는 것을 보고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내내 심술궂게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부리고 눈을 내리더니 볕도 심술궂게 보일 듯 말 듯하구나. 


볕을 따라 드라이브를 나왔는데 갑자기 회색 구름이 층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기 전 우리는 무조건 걸어야 했다. 


차를 세워두고 개와 나는 올레길을 걸었다.

슬슬 숨바꼭질을 시작한 모진 해


돌담이 낮게 깔린 작은 집과 색색이 다른 작은 상점들이 참 정겹다. 

높은 건물이 없는 이곳은 눈을 참 편하게 해 준다.

마치 육지의 좁은 국도를 달리는 느낌의 시골스러운 찻길 또한 참 맘에 들었다. 


시작과 동시에 낯선 곳에서 내가 과연 운전할 수 있을 까, 에 대해 가장 큰 공포를 안고 발을 떼었다. 

내가 언제 그런 공포심을 안고 있었지? 


순간 아, 그랬었구나, 의 생각이 떠오를 뿐, 제주는 참 나와 잘 어울렸고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곳이다. 


만약 장기 숙박을 제주에서 한다면 차 탁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를 추천하다.


개와 올레길을 걸은 지 십분 도 채 되지 않았다. 그때 목줄을 한 채 리드줄은 없는 개 두 마리가 찻길을 건너고 있었다. 나는 개를 키우면서 여러 가지 급박한 상황을 많이 겪어 봤다. 


그중 가장 끔찍한 건 리드줄이 풀린 개의 느닷없는 공격이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의 산책은 늘 신경이 곤두선다.


멀리서 개 두 마리를 보고 나는 내 개를 번쩍 들어 올렸고 주차장 쪽으로 뛰었다. 

개들에게 공격성이 없다 해도 사건, 이라는 것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에 당황한 내 개는 짖기 시작했고 나의 기분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 녀석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올레 길 산책은 이 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유난히 제주는 개가 불쑥불쑥 어떤 안전장치도 없이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사실 도시에서는 리드줄이 풀린 채 개가 돌아다니면 보호자가 없는 개이거나 또는 보호자가 동반했을 시 그 행동은 법에 위배된다. 그렇게 리드줄이 풀린 상태의 개들을 목격했을 때마다 나는 무조건 유기견 인 줄로만 알았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유기견들이 제주에 있을 까,라는 생각에 개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제주도민이 하는 말, 제주는 리드줄이 풀린 개가 다니는 것에 대해 굉장히 고개를 끄덕, 하는 흔한 광경이라고 말했다. 또한 거의 보호자가 있는 개들이라며 내게 괜찮다,라는 식의 말을 했다. 


괜찮다? 

나는 괜찮지가 않다. 그런데 누가 괜찮다는 말인가?


육지의 개들은 공격성이 강해야 살아남는데 제주는 그렇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대체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제주의 개들은 공격성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대체 앞 뒤가 맞지 않는 맥락이다.

생각지 못했던 맛집 발견

결국 나와 내 개는 조금 남은 볕을 놓쳤고 포기했다. 그 좋은 맑은 공기도 맡지 못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운전대를 잡았고 갑자기 밀려오는 배고픔에 속이 쓰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김밥과 만두를 급히 사고 마트에 들러 생수와 저녁 찬 거리도 샀다. 

알찬 김밥과 야들야들한 만두

이제 볕은 아예 어디론가 숨어들었고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역시나 비 예보가 있다.


숙소와 주차장은 꽤 거리가 있다.

개가 없을 때는 한 번에 짐을 옮겼겠지만 이 거리를 두 번 왔다 갔다, 해야 할 듯하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있었다. 

숨도 가빠졌다. 


개를 숙소 앞 잔디에 밀어 넣고, 꼼꼼히 울타리를 잠근 후, 다시 덴젤을 향해 뛰었다.


혼자라는 것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의를 내리자면 정말 지지리도 그렇다. 


혼자?라는 단어를 보면 대개 사람들은 쓸쓸 외로움 등 이런 감정을 떠올린다. 

나도 그랬다.


제주 생활을 하다 보니 혼자,라는 건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뜻이 되어 있었다. 조금도 낭만적이거나 프리덤을 외치며 하하, 거릴 수만은 없다.


나를 위해 나의 목마름을 위해, 내 개의 목마름을 위해 무거운 생수를 구매하고 그것을 스스로 옮겨야 했다.

이 일이 이렇게 번거로운 일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모든 일들을 우린 함께 해 왔다.

이렇게 단순해 보이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는 짐을 들고 나르는 일 까지도. 


느끼고 싶지 않았던 빈자리와 비어 있는 나의 감정에 조금 쑥스러웠고 조급해졌다.


이렇게 작은 페트병에 들어있는 이것이 이렇게 무거웠다니, 집, 그리고 옆사람, 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나의 잔잔한 감정에 제주 바람 같은 드센 바람결을 일으켰다.


아 이런, 숙소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덴젤의 문을 잠그지 않은 게 생각났다.

하마터면 그를 부를 뻔했다.


“그야, 차 좀 잠가 줘”라고.


생수를 내려놓고 다시 뒤돌아 걸었다. 

덴젤 가까이 다가가 잠금 버튼을 눌렀다. 

아주 큰 한숨이 크게 내려앉았다.


“휴우우우우우”


그리고 길 한가운데 철퍼덕 앉았다. 

엉덩이가 차가웠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생수와 떨어진 간격이 얼마 되지 않았다. 

맑고 투명한 것이 참 예쁘다. 

나는 생각했다.


‘혼자의 자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나는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그리고 혼자,라는 삶을 선택한 나의 그녀가 떠올랐다. 

갑자기 다가온 혼자라는 삶을 매일 대할 때마다 어떤 감정이었을지, 새삼 그때 느꼈을 법한 그녀의 고통과 쓸쓸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좀 심장이 아팠다. 


넋을 놓고 한참을 길 한가운데 앉아있다 그제야 잔디에 홀로 있을 개가 떠올랐다.

혼자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게 만드는 짐

앗, 난 혼자가 아니었다. 


약간의 실소를 띄며 무거운 생수를 들고뛰기 시작했다. 개는 울타리 문 앞에 서서 꼼짝 않고 오랫동안 나를 기다린 모양이다. 


나만 바라보는 개가 혼자 있을 때의 시간은 참 무섭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를 바라보며 반가움에 짖고, 그 짧은 꼬리와 엉덩이를 흔들며 함께,라는 것에 안도하며 기뻐하는 모습이다.


순간 옆사람, 그에게 감사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팔자 좋은 직업)



빠르게 김밥을 해치우고 나의 정해진 루틴을 끊임없이 달리기 위해 주변을 깔끔하게 만들었다. 

물론 뜨거운 커피도 내리고 개가 낮잠을 자기 위한 루틴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사람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어야 할 손가락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허리를 세우고 팔의 각도를 안정적으로 잡은 후 컴퓨터의 촉감을 느낀다. 


나는 늘 작업을 할 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음악을 틀어 놓는다.

간혹 목소리가 남기는 절절함에 헷갈리는 감정과 거짓된 감정으로 글을 적어 내려갈 때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와 섬세한 음이 만나면 그것이야 말로 감정을 뒤 흔들어 놓는 극한 취중상태는 세상에 없다.


손이 만들어가는 촉감이 오늘은 꽤 괜찮은 컨디션이라고 말해 준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의 오래된 벗이다.


“응”


벗은 늘 그렇듯, 대뜸 밀고 들어왔다.


“야 너 제주도지?”


“응”


“와, 너 진짜 팔자 좋다”


순간 내 벗의 말투와 내 벗의 머릿속을 가장 잘 아는 내가 화를 낼 만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분명 별 뜻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을 골랐다.


“여보세요?”


“응 말해”


“아주 팔자 좋은 직업이라고...
 좋아? 혼자라서 진짜 신나겠다?"


나는 제주에 도착한 다음 날, 혼자 남았던 그날, 분노가 섞인 감정을 꽁꽁 숨기고 있었던 나의 좁은 내면을 넓히기 위해 노력했던 그날을 생각했다.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아는 벗이지만 나의 벗은 이 날의 나를 몰랐다. 


“그래 팔자 좋다, 나…”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나는 웃으며 말했다.


“일은 무슨, 아니”


우리는 짧게 안부를 전한 후 통화를 마쳤다.

뜨거웠던 커피는 다 식어 빠졌고 컴퓨터 위에서 손이 떨어진 채 공중에서 멈춰있었다. 


“후우우”


왜 또 뒤늦게 화가 나는 걸까, 그냥 화를 낼 걸 그랬다, 등의 후회가 밀려왔다. 

뒤늦은 화가 주체할 수 없이 하늘 위로 뻗쳐 올라갔다.


내가 처절하게 다 잡아 놓은 감정인데 얇은 유리 안에 있는 이것을 깨뜨려?

벗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사람의 감정을 뒤흔드는 바람과 비


모진 구름은 아예 새까매졌고 한치의 볕도 없으며 바람은 나를 흔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그곳에 머물렀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고 다시 오지 않는 이 아까운 시간을 한탄하며 나의 불길을 참지 못하고 끝내 나는 울었다. 


다짐하듯, 다시 컴퓨터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난, 결국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열었다. 

제주에서의 첫 낮술이다. 갑자기 회색구름을 맞이하듯 와인의 맛도 그만이었다. 

적색의 와인과 회색구름은 꽤 어울린다.


두 잔의 양이 식도로 완벽히 넘어가자 솔직하게 내 감정이 고스란히 담아지고 있었다.


 

2024년 3월 3일



『하루 중 긴 시간을 완벽하게 집중하여

글을 적어 내려가면 이천 자의 글을 겨우 적어낸다


그나마 그것도 의도와 다른 감정이거나 지나친 감정이라면 지워버린다


긴 시간의 동적인 움직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뻑뻑한 눈과

솟아오른 어깨는 내려갈 생각을 않는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팔자 좋은 직업이라고


나는 꼭 말하고 싶다


작가는 직업이라 말하기 부족하다


열망하는 것을 따라가는 꿈 꾸는 자다

열망하는 것을 따라가는 행위가

당신은 쉬웠고 편했던 모양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우리는 꿈꾸는 자다


지금도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이들의

드러나는 이름과 빛나는 책 들속에 함께 하지 못한다 해도

그들은 응원의 박수를 받을 만하다


세상의 모든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시 낮술에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한 병을 채 비우지는 못했지만 나는 개와 함께 곯아떨어졌다. 

사실 난 낮잠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낮술을 했을 땐 조금 달라지는 모양이다. 

새롭게 볼 수 있는 내 모습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딱 한 시간의 꿀잠, 단잠이었다. 

나의 기분과 피곤함을 고스란히 담아가는 내 개 또한 숙면을 취한 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종종 낮술의 긍정적인 면을 좀 써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약간 멋들어지고 싶었던 고뇌를 씹다가도 멋없어지게 본능적으로 허기가 진다.

나는 작업할 때를 제외하고 다른 일을 할 때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 재미는 귀찮은 집안 일도 나름 웃으며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지금 나는 마음이 급했고 아이버즈도 잊은 채 요리할 준비를 했다. 

오늘 메뉴는 남은 유채와 소고기 그리고 파스타를 할 생각이다. 

오늘 저녁은 좀 과하게 먹어 보겠다.


파스타 면을 데칠 준비를 하면서 채소를 다듬고 씻는다. 

프라이팬에 편마늘과 후추 올리브오일을 넉넉히 넣어 준다.

축축한 아라비아따 파스타


나는 파스타를 먹을 때 오일을 넉넉하게 넣어 축축하게 먹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마늘이 충분히 익어갈 때 면수와 파스타면을 함께 넣고 아라비아따 소스도 부어 마구 섞어 준다.

반쯤 남겨 둔 소스가 이럴 땐 참 간단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효자 아이템이 된다.


파스타가 식기 전에 빠르게 소고기를 볶아야 했다.

손질된 유채, 양배추와 아주 얇게 썰어진 살치살을 프라이팬에 함께 넣었다. 

후추와 소금을 조금 뿌린 후, 간장 한 숟가락을 프라이팬을 비스듬히 세워 가장자리에서 바글바글 태우 듯 끓인다.


몇 초의 시간이 지난 후 간장을 재료 위에 얹여가며 졸이듯 익혀낸다. 

이 작업은 아주 순식간에 센 불에서 작업해야 맛있는 요리가 완성된다.


귀찮음이 도가 지나칠 때 손님이 방문한다면 이 요리로 간단하게 멋을 내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자, 맛있게 먹어 보자!

살짝 태운 간장에 빠르게 볶아 낸 살치살과 유채나물




(비가 내린다, 또 내린다, 계속 내린다, 계속 내릴 예정이다, 정말 그랬다)



어제저녁부터 매캐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더니 새벽까지 내 머리를 강타했다.

결국 두통약을 털어 넣었고 내내 시비를 걸던 두통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분명 쓰레기를 소각하는 연기 냄새였다.


밤 새 비가 조용히 내리더니 이젠 아주 제대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중이다.


나의 개는 종종종, 문 열기만을 바라며 창문 앞에 내내 쪼그리고 있다. 

너무 많은 비가 내리는 중이라 잠시 고민하다 애원하는 개의 눈빛을 마주하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열려라 참깨(옛날 사람이라 그렇다)


후다다다다닥, 빛의 속도로 내 개는 비를 맞고 젖은 잔디를 밟으려 나갔다. 

에라 모르겠다. 


내 개는 밖에서 내게 손짓했다. 


“왈왈 왈왈”


얼른 나오라는 신호다. 

저 개는 왜 늘 나만 보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모른 척하고 싶다.


다시 짖기 시작했다.


“왈왈 왈왈”


결국, 우린 함께 비를 맞았다.


십여 분을 함께 뛰고 걷다 자신의 털이 무거워 짐을 느꼈는지 홀로 호다닥, 하고 들어가 버렸다. 

개가 숙소 안을 물로 적셔 놓기 전에 털을 말려야 했다.


정말이지 등 뒤가 땀과 비로 흥건했다. 


나는 빠르게 드라이로 개의 털을 말리기 시작했다. 

비 맞은 생쥐꼴이 딱 이 모양일까? 정말 비 맞은 회색빛은 거의 생쥐꼴이다.


비 맞은 내 개의 모습은 너무 못생겼고 치명적이게 귀여웠다.

다급함 속에서 치러진 일이라 찍지 못한 사진이 너무 아쉽다.


푸들의 털은 아주 곱슬거렸고 물방울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하지만 축적된 시간에 따라 물방울이 흡착되기 시작하면 어마무시한 무게로 돌변하고 숱 많은 사람의 머리카락 보다 더 말리기 힘들다. 

드라이어를 잡고 흔든 지 삼십 여분이 넘었을 것이다. 


이제는 빗질을 해야 한다. 비를 맞게 둔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개가 으르렁 거린다. 

발만 만지면 나오는 습관이다. 오랫동안 이 과정을 거쳤지만 여전히 나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쌀알 만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는 순간, 어떤 돌발 사태가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주 신속하게 꼼꼼하게 일을 마쳐야 한다. 


며칠 동안의 멈추지 않는 비는 나의 활동량을 적극적으로 줄여 놓았다. 내내 젖은 잔디와 내내 젖어야만 하는 나의 머리카락이 힘 없이 축 져져 기분까지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때 강하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먹이를 물고 올 어미 새를 기다리는 아기 새 마냥, 우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나는 비를 뚫고 끊임없이 처절하게 울고 있는 새를 찾으려 애를 썼다.


소리를 찾아 발을 옮겨 보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숙소에 들어와 다시 젖은 몸을 닦고 주방 창문을 열었다.

(나는 계속 몸을 닦는다. 비, 비, 비)


새소리가 조금 더 가깝게 듣기 위해서다. 그때 어느새 한 마리의 새소리가 두 마리의 소리로 들렸고 소리의 톤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들리는 듯했다.

새도 나처럼 이제 함께가 된 모양이다. 그제야 나의 두근거리던 감정도 가라앉았다.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나의 몸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미리 경고를 하고 기회를 준다.


가장 먼저 편도가 붓기 시작한다면 며칠 끙끙 앓을 게 뻔했다.


가장 약한 부분, 빠르게 목에 손수건을 칭칭 감았다. 양쪽 팔뚝도 약간 욱신거렸다. 

잘 챙겨 온 긴팔 히트텍을 티셔츠 안에 겹쳐 입었다.


한기를 다스릴 때는 뜨끈한 국물 요리가 최고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정성이 깃든 국물요리를 하기엔 조금 무리다.


육지에서 가져온 우동면을 꺼내고, 액젓과 간장, 가쓰오부시로 육수를 우려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알배기 배추가 언제든지 냉장고 안에 머물고 있다면 응용할 수 있는 요리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알배기 배추를 육지에서 챙겨 온 것은 가장 칭찬할 만한 일이다.

채수와 우동면이 만났다


육수가 바글바글 끓어오르면 우동면을 넣어 풀어주고 청경채와 배추를 넉넉히 넣어 한 번 더 끓였다. 

가쓰오부시의 향이 그윽하게 퍼져나갔다. 

유채나물 반숙 프라이


우동면이 퍼질 때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댤걀을 얹고, 유채도 함께 얹었다.

소량의 후추를 뿌린 후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노른자 위에 흰색 막이 조금 생길 때 즘 불을 꺼주면 아주 맛있는 서니 사이드업이 완성된다.


이번에 느낀 건 유채는 어떤 볶음 요리나 튀김, 굽는 요리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채소라는 것.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경이롭게 넓다. 

봄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꼭 한번 유채를 사용한 요리를 먹고 봄에 빠져들기를 권한다. 


들기름에 코팅된 유채는 씹을수록 달큼함이 올라왔고 달걀노른자에 찍어 먹는 방법 또한 꽤 맛있다.


새소리가 다시 처절해졌다. 

한 마리의 새가 다시 둥지를 떠난 모양이다. 굉장히 높은 음의 소리를 내며 끊임없이 울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혼자,라는 건 울음이 나올 법한 일인가 보다. 


이제 제주 생활의 끝이 보인다. 

숙소를 정하고 준비물을 꼼꼼하게 적어 내려가며 계획을 했을 때의 그 흥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다. 


시간은 역시 봐주는 법이 없다. 독한 것.

셋, 을 기다리는 영악한 개


내 개는 나의 기분과 어떤 감저의 상황인지 나의 냄새를 맡고 아주 빠르게 눈치챈다.

또는 행동을 유심히 살피며 나를 읽는다. 

사흘 후, 방문할 누군가를 나보다 더 먼저 알아차리며 기다리는 눈치다. 

신기한 녀석이다. 


육지에서의 오후 다섯 시는 현관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짖는 개 내 개의 일상이었다. 


제주 생활을 하면서 앗 시간 개념을 잊었구나?라고 생각할 무렵 녀석은 나의 감정을 느끼며 빠르게 다시 감각을 찾고 있었다.


이 날부터, 내 개는 해가 늬엇늬엇 기울기 시작할 때부터 현관문 쪽에서 꼼짝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렸다.


개와 나는 서로 알고 있다.


우린 둘이 아닌 셋이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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