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내가 바라보는 것
연재에 앞서
연재 마감 이벤트 알림
브런치 스토리 연재중인
<넣고 씹기의 단순한 기록> 중
11화 - 닭개야 잘 있어, 신엄리도 안녕,을 읽으신 후
라이킷(하트) 눌러 주시고 저의 인스타그램 첫번째 피드를 확인하신후
(https://www.instagram.com/reel/C8Ckh5KPc7z/?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이 피드에 브런치 스토리에서 쓰는 아이디와 독서완료, 라고 댓글 남겨 주시면 확인후, 댓글 순서대로 선착순 열 분께 별다방 커피 쿠폰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다른 풍경의 아침이다.
숙소 안으로 햇살이 창문 틈을 비집고 들어와 반짝이고 있었고, 감칠맛이 풍부한 된장찌개 냄새가 폴폴 풍겼다. 앗, 고소한 들기름 향기도 났다.
밤새 개와 씨름을 하느라 잠이 부족했던 나는 닭개가 짖자마자 2층 침대로 몸을 던졌고 이른 시간의 기상, 배꼽시계가 정확한 그는 나를 위해 홀로 개와 시간을 보내며 밥까지 챙겨 먹었다.
홀로 모든 것을 다해야 했던 나는 오랜만에 개에게 쏠린 신경을 나의 부족한 잠에 쏟을 수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을까, 나는 짧은 시간 동안 단잠을 그리고 단꿈을 꾸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가 곁에 있으므로 나는 그랬다.
(너와 내가 바라보는 것)
육지에서 처럼 나의 시선과 그의 시선은 정확히 분배하고 나눌 수가 있었다.
나의 개를 보고 확인해야 했던 나의 시선은 반을 덜어 그 남은 반을 바다와 오름과 사람과 꽃, 그리고 그에게 머무를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시선도 반을 덜어 개에게 머물며 또는 내게 머물렀다.
이렇게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눈에 통증을 느낄 정도로 빛날 수가 있다니, 내게 머물렀던 그 며칠의 비와 바람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과연 머물렀던 시간이었을까,라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정말이지 그와 함께 본 햇살은 예뻤다.
우리는 해안도로의 끝에서 끝까지 달렸다.
바다가 잠시 내어주는 이 평화로움에 참 감사하다. 바다가 부르는 노랫소리만 듣고 있어도 자연에 대한 감사함에 감격스러웠다.
나의 덴젤은 달리다가, 자연이 부를 땐 잠시 머물렀다.
그의 입에서 연신 감탄의 소리가 들렸다.
“하아, 정말 너무 좋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말했다.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좋을 수 있으니까, 너무 좋네”
그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빛나는 햇살에 눈이 부신 개는 아주 작은 눈의 크기로 나를 바라보며 헥헥, 거렸다.
덴젤은 좀 더 깊은 오름을 오르듯, 도로를 달렸다.
굽이굽이 길이 좁고 초록색의 것들이 다시 시선을 앗아갔다.
덴젤의 창문을 열고 개가 왕왕 짖는 소리를 들으며 계속 달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보말 국수가 유명한 식당이다.
도착하자마자, 유모차를 꺼내어 개를 앉혔다.
가게 밖에서 사장임이 분명한 남자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개와 함께 들어가기 위한 아주 친절한 몸짓과 아주 예의 바른 목소리가 필요할 때다.
어찌할 수도 없을 정도의 친절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마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약간 무서운 인상을 지닌 사장은 담배를 짓이기며 고개를 까닥, 네네 한다.
“사장님, 개를 유모차에 태워서 식사 좀 해도 될까요?
짖지 않도록 피해 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구석에 앉아도 됩니다, 헷”
사장이 잠시 머뭇하며 말했다.
“다른 손님이 있는데.. 어…”
사장은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빠르게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우연일까?
사장이 들어가자 문은 닫히지 않았고 마치 개와 우리를 반기듯 그렇게 활짝 열려 있었다.
사장의 들어오란,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나는 친절한 소리라도 들은 척, 소리 냈다.
“감사합니다, 앗 저기 구석에 앉을 게요”
그가 세모눈을 뜨며 나를 보았다.
그 누구도 개와 우리를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를 보고 있는 주방 안쪽 아주머니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조금 당황하던 모습이었지만 이내 물과 잔을 내려놓으며 속삭이듯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나와 개와 그는 신이 났다.
왜냐면 이곳은 반려견 동반 식당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감사함과 성취감에 나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내 개는 늘 미친 듯이 짖는 개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딱 맞는 개답게, 어딘가 들어가서 돈을 지불하고 앉아 무언가 먹는 곳을 들를 때면 짖던 입을 헤헤, 거리기만 한다.
간혹, 산책만 나왔을 뿐인데, 늘 가던 커피숍이라도 지나가면 그 앞에서 네 다리를 버티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들어가서 앉자는 뜻이다.
역시 제주에서도 가게,라는 곳도 개에게 통했다.
우린 사실 배가 부른 상태였다.
바다를 구경하며 커피와 약간의 군것질을 했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말 국수와 돔베고기를 맛보지 않고 비행기를 탄다면 육지에 발을 내리자마자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면 신이라고 불리는 그로서 이곳을 포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다시 들어오는 손님들도 많았다.
사람들이 오고 갈 때마다 혹시나 개가 짖을 까 온통 신경을 개에 쓰고 있었고 가져온 간식을 쉴 새 없이 개의 입으로 가져갔다. 또한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 까, 빠른 눈치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려견 동반 식당이 아닌 곳에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좀 더 피곤하게 굴어야 하는 게 맞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그가 보말 국수의 국물을 맛보자마자 소리 낸다.
“크하아 으음”
이런 우린 보말국수에 눈과 입이 돌아간 채 사진을 남길 수도 없었다.
사실 그는 푹 쪄낸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구워서 기름이 좔좔 흐르고 바삭하고 짙은 갈색이 도는 매일 먹다간 일찍 단명할 것 같은 고기만 좋아한다.
제 멋대로 썰어진 돔베고기를 간장에 찍어 함께 나온 무 장아찌를 올려 먹었다.
헙, 수육이 어찌 이런 맛이 날까?
처음 먹어본 돔베고기에 내 혀가 무진장 놀란 눈치다.
의심쩍은 고개를 갸우뚱, 하던 그가 돔베고기를 입에 넣었다.
몇 번 씹어 넘기더니, 젓가락으로 돔베고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네”
찐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싶었다.
겉과 속이 같은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빼놓을 수가 없지
여기요, 막걸리 부탁합니다”
내가 말했다.
“으응? 이것 그건데? 제주 막걸리”
모든 원재료가 수입이었던 제주 막걸리였다.
제주도민은 제주 막걸리로 이 막걸리를 먹는 모양이다.
어디를 가나 수입 쌀을 쓰는 이 제주 막걸리를 판매했다.
“그래도 먹지 않을 수가 없는 조합이잖아”
나는 웃었다.
“풉”
사실 나는 막걸리 맛을 모른다. 그리고 막걸리를 한 잔 만 마셔도 뿅, 하고 눈이 풀린다.
내가 절대 마주할 수 없는 술이다.
그가 이렇게 쪄낸 고기를 잘 먹다니, 놀라웠다.
사실 보말 국수의 양이 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돔베고기와 국수를 탈탈 털어먹었다.
그가 다시 세모눈을 뜨며 주방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보리밥이 있네? 셀프야”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나는 설마 먹을 건가?라는 게슴츠레한 눈빛을 보내며 미심쩍어했다.
“뭐, 맛 좀 보던지”
그의 배는 이미 불룩, 나온 상태다.
사사삭, 축지법을 쓰며 그가 보리밥을 담아 왔다.
보말 국수를 먹고 남은 국물에 보리밥을 말았다. 그는 다시 또 보리밥을 씹으며 맛있게 먹는다.
마치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처럼 그렇게 먹었다.
개는 열심히 간식을 받아먹으며 우리가 식탁을 비울 때까지 안정적이었다.
“너무 잘 먹었습니다, 수고하세요”
식당 옆은 공터처럼 잔디로 이루어져 있었고 손대지 않은 야생의 나무와 풀들이 지그재그로 들쑥날쑥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개는 다시 맞은 자유를 만끽했다.
잔디까지 구비한 곳이 반려견이 함께 하지 못한다 하니 참 아쉬웠다.
담배만 피우고 앉아 있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 아닌가?
혹시 모를 일이다.
다음에 이곳을 방문할 때 다시 개를 옆에 두고 돔베고기를 맛볼 수 있을지.
약간 무서운 인상의 사장 얼굴이었지만 그와 다르게 인정이 많은 신 분임이 틀림없다.
다음 재 방문할 때가 기대된다.
제주의 도로는 참 예쁘다. 이곳이 시골이라 더 아기자기했다.
배부른 후의 운전은 졸릴 법도 했지만 깨끗하고 작은 도로와 초록들을 눈에 담고 움직이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우린 숙소에 도착했고, 며칠 동안 맞은 바람 싸대기처럼 졸음과 피곤이 몰려왔다.
왕왕, 짖던 개도 지친 모양이다.
우린 꿀맛이 도는 낮잠의 단잠을 성공했다.
오늘따라 숙소가 이렇게 고요할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개는 이제까지 밀린 잠을 한꺼번에 누리는 듯했고, 그 또한 그랬다. 나는 그의 배려로 개와 오랜만에 분리된 채, 또다시 이층에서 단잠을 잤다.
그는 단잠 후 개와 함께 나를 위해 내내 잔디에서 뛰어다녔다.
짖음에 내가 깨어나기라도 할까, 개가 숙소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할 때까지 뛴 모양이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저녁 시간의 자유를 위하여 개를 다시 또 지치게 한 것을 나는 아주 잘 안다.
조금 이른 개의 저녁밥을 챙기고 외출 준비를 했다.
이 시간은 중요하다.
나의 제주 생활을 마감하는 실질적인 날이었고 내일은 이 애월의 바다를 볼 수 없다.
내내 아주 흔한 풍경이 되어 내가 찾아가면 있어주던 이 바다와 작은 오솔길은 다시 비행기를 타고 와야 곁에 둘 수가 있다.
나는 간사한 사람이다.
제주 생활이 하루하루 쌓여가자, 귀한 풍경의 것들에 빠르게 적응하며 흔하게 본다,라고 정의하며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세찬 파도와 바람을 보며 우울해하지 않았던가.
헌데, 이제 마지막 날을 턱걸이한 체, 있어 보니 다시 또 소중해지고 있는 모양이다.
어쩜 이렇게 내 편의에 맞게 말과 생각과 행동이 달라지는지, 처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건 내 뇌 속에만 존재하는 가 보다.
이틀 동안 아름다운 날씨를 선물한 제주는 아름다운 노을을 또다시 선물했다.
밖을 나오자 물감으로 칠한 지 얼마 안 된 그림 한 폭이 내 앞에 머물렀다. 그 어떤 빛의 화가 작품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제주가 나의 걸음을 붙들어 매고 싶은 모양이다.
내게 너무 흔한 눈물이 울컥, 뻗치려 했다.
밀려오는 감정을 삼키고 휴대전화에 담았다. 그리고 내 깊은 곳, 그 모진 감정이 아주 작은 동그란 점이 될 수 있도록 그 속에 머물러 주길 다시 한번 기도했다.
유난히 덴젤이 서 있는 곳이 예뻐 보였다.
사실, 내내 비를 맞고 홀로 서 있던 덴젤이 머물던 곳은 섬뜩해 보여 어깨를 움츠러뜨리곤 했었다.
다시 보니 짙은 오렌지 빛의 노을과 검은색 덴젤이 참 잘 어울린다.
숙소를 빠져나오는 길은 아주 좁다.
첫날 이곳의 이 좁은 길을 굽이굽이 들어올 때는 덩굴 식물이 돌담에 치렁치렁 늘어져 꽃들이 만발했었다.
하지만 지금, 지고 떨어진 꽃들을 덴젤이 밟고 지나갔다.
진한 오렌지 빛의 넓은 잎의 꽃들은 처음부터 머물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는 저 하늘 위로 다시 잔뜩 피어나 붉게 물들이고 있다.
그와 나는 해안도로를 내려가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가슴에 담을 것들이 너무 많았다.
물들고 있는 하늘과 수평선이 만났다.
끝이 어딘지 모르는 저 길은 신들의 하늘 길일까?
제주 길은 신기한 길이 많다.
목적지를 정확하게 알리고 있는 덴젤을 따라서 가다 보니 막다른 길인 것처럼 보여 브레이크를 잡았다.
보기에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헌데 덴젤은 계속 고집을 피웠다.
그가 말했다.
“내려가 보자”
그는 덴젤을 믿어 보자는 뜻이다.
아주 가파르고 아주 좁은 길을 내려가자마자 작은 포구가 나왔다.
수많은 배들이 묶인 채 가지런히 정박되어 있었고 바다의 냄새가 더욱 진하게 퍼졌다.
해가 기울어지면서 추위가 몰려오고 있었다.
주차 행운아인 나는 덴젤이 인도하는 곳으로 내려오자마자 빈 공간에 주차를 했고, 똑똑한 덴젤답게 주차된 바로 앞은 우리의 목적지가 되었다.
그와 나는 동시에 눈이 커졌고 와, 아, 하며 입을 벌렸다.
포구 앞 바로 술 집이라니 너무 매력적이다.
술 집의 이름 또한 포구 앞 술 집답다.
바람이 거세지고 온도가 내려가면서 파도의 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야, 여기 대박이다”
바로 눈앞에서 오징어 배를 보았다.
사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는 건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처음이다. 어릴 적 파란색 붉은색 작은 배를 보면서 예쁘지 않다,라고 생각했던 건 무슨 이유였을까?
배는 바다를 입고 있었고 너무 예뻤다.
덴젤의 트렁크를 열고 앉아서 그곳에서 따뜻한 정종 한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술 집 외관은 나무로 사방이 덧대어져 있었고 나무 특유의 세월을 먹은 낡음이 아주 유난스럽다.
눈에 띄는 낡음을 확인하고 나니, 포구를 앞에 둔 일층의 공간은 수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상을 했다.
파도의 높이가 배의 높이 만하고 바람이 거세질 때 포구를 바라보는 이 얇은 창이 어떻게 버텨냈을까?
세월을 견디다 못해, 이제 버거워진 모양이다.
한 번 두 번의 실패로 이번 이 목적지는 엄청난 서핑의 결과다.
제대로 된 후기를 찾아 읽었으며 제주도민의 도움도 받았다.
다시 또 매우 낡은 좁은 계단을 올라섰다.
오를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올라서자마자 넓게 보이는 포구와 새벽의 느낌을 자아내는 수평선과 조금 더 거칠어지고 있는 파도 소리와 이곳의 음악이 너무 잘 어울린다.
기본적으로 한 시간 이상의 기다림은 기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후기를 뒤로하고 조금 일찍 서두른 우리는 자리,라는 것에 또 운이 텄다.
2인석은 이곳이 최고입니다,라고 마치 적어 놓은 듯한, 우리를 위한 자리에 안전하게 착석했다.
우린 동시에 고개를 창문 쪽으로 돌렸다. 당연히,라고 해야 할 만큼 어느 곳을 가도 매달려 있는 노란색 전구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또 생각했다.
바람이 거세지면 얇은 창도 견디기 힘든데, 전선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전구와 작은 화분에서 버티고 있는 이름 모를 나무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지?
어찌 보면 자연에 가장 약하게 묻히는 건 인간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 지은 죄만큼.
전체적으로 나무로 이루어진 이곳은 주인장이 동물을 또 하나의 생명의 존재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군데군데 붙어있는 액자 속에는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있었고, 우리 옆 자리에는 가방 속에서 얼굴만 작게 내밀고 있는 개 녀석이 있었다.
몰랐던 이곳은 반려견 동반 술집이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가 나왔다.
“아, 우리 개도 데려올 걸”
지금은 완벽하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작정을 했다.
개야, 미안.
역시 그는 어떠 곳을 방문해도 생맥주가 먼저다.
메뉴를 보기도 전에 그는 태블릿을 꼭꼭 눌러 맥주를 주문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차가운 맥주가 들어갈 리 없었지만 그를 위해 잔을 들었다.
유난히 계속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이다.
가만히 술 집 안을 살펴보니 그가 좋아하는 것들로 둘러 쌓여 있었다.
우린 주문할 메뉴로 뒤로 한 채, 맥주만 들이켰다.
“앗, 주문”
들떠 있는 기분을 가라앉히며 우리는 메뉴를 신중하게 훑었다.
세상에는 참, 먹을 것이 많다.
이 좋은 세상에 태어난 내가 이 좋은 제주에 있다는 게 참, 나도 나 자신이 부러운 지금이다.
어제의 그 매운 해물탕을 생각하니 고개가 흔들어졌다.
오늘 그의 선택은 하얀 짬뽕탕이다.
나는 당연히 딱 새우가 들어간 모둠 숙성회를 선택했다.
모둠 숙성회에는 시메사바, 삶은 문어, 참치 회, 광어회, 방어, 도미 회, 그리고 딱 새우장이 놓여 있었다.
사실 나는 시메사바가 뭔가 했다.
사바는 일본어로 고등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메사바라고 메뉴에 표기되어 있다니 조금 실망했다.
왜 어디를 가든 모둠 숙성회에 나오는 소금과 식초에 절인 고등어를 시메사바라고 표기한 건지 정말 실망이다. 한국 사람은 일 년 중 하루 광복절을 맞이하면 마치 독립운동을 한 투사라도 되는 냥, 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표출하며 일본의 과거 잘못을 비난한다.
그런데 시메사바라니, 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름다운 한글을 두고 굳이 메뉴에 시메사바,라고 적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또한 소금과 식초에 절인 고등어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잡힌 고등어는 맛이 좋고 살도 많았으며 어획량도 많았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이 굉장히 선호했다. 그리고 잡은 고등어를 거의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 그들의 입만 호강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잡은 고등어를 가족들과 함께 먹는다는 건, 정말 부자이거나 특별한 날이거나 친일을 한 사람들에게나 허락된 일이었다.
그렇게 씁쓸하고 아픈 과거를 지닌 절임 고등어를 시메사바,라고 칭하는 건 글쎄, 나는 몹시 반대하는 바이다.
벌써 네 번째 보는 메뉴 속 시메사바,라는 단어다.
참, 속상하다.
아, 간사한 나는 애국을 부르짖는 것도 몇 초, 고등어 절임을 입에 넣었다.
다신 생강, 고추냉이를 곁들여 먹는 이것은 정말 놀라웠다.
일본에 갈 때마다 모둠으로 조금씩 나왔던 고등어 절임은 내 입에 맞지 않았다.
등 푸른 생선 특유의 살에서 나는 비릿함은 무엇으로 잡을 수가 없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곳의 고등어 절임은 달랐다.
입에 넣자마자 씹히는 감각은 아주 잠깐, 굉장히 부드럽게 살이 부서졌고 비릿함은 1초도 느끼지 못한 채, 버터의 고소함만 남았다.
가히 놀랄만한 맛이다.
하지만 역시 그의 도전은 무리였다.
그렇게 고등어 세 쪽은 내 차지가 되었다.
어디를 가든 그는 늘 탕과 면을 고수한다.
탕이나 국, 찌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술꾼이라는 속설이 있긴 한데, 그는 술꾼이 되고 싶어 하는 조금 모자란 술꾼이다.
어제의 그 매운 해물탕의 기운이 아직 가시지 않는 나의 위상태다.
눈에 보이는 건 하얀 국물이지만 입에 넣으니 역시나 매콤했다.
그가 국물을 두 입하자 마자 말했다.
“크하아, 역시”
역시 조금 모자란 술꾼도 술꾼이다.
하얀 짬뽕탕에 들어간 해물은 모두 신선했다.
흔히 우리가 육지에서 먹는 해물탕 또는 해물 짬뽕이란 음식에는 냉동 해물이 많이 들어간다.
씹을 때 수분이 날아간 상태, 또는 약간 바싹 마른 느낌의 식감은 냉동이다.
간혹 역한 냉동실 냄새가 베어 먹지 못하고 뱉어 낼 때도 있다.
이곳의 해물은 마지막 남은 하나까지 모두 신선했다.
그 흔한 해초까지도 싱싱했다.
역시 포구를 앞에 둔 술 집의 가장 큰 장점인 듯하다.
내 입이 이 맛을 알았으니, 육지에서의 보통 해물이 들어간 음식은 이제 먹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이 음식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땐 비행기의 좌석을 먼저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로의 술잔이 비워질 때마다 우린 서로의 빈 잔에 따뜻한 감정과 따뜻하게 데워진 정종을 따랐다.
따뜻한 정종을 한 입 꿀꺽, 한 뒤 뜨겁고 하얀 국물을 입에 넣으면 천국이 펼쳐진다.
귀에 익은 옛 노래가 나오면 그가 흥얼거린다.
그리고 입가의 미소가 작은 꽃처럼 잔잔하게 그려졌다.
그가 학창 시절 사랑한 혜은이의 음악이 나왔다면 참 좋았을 걸, 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그를 보며 휴대전화를 집었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 보고 웃어봐요”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방긋”
그가 방긋 웃었다. 그리고 잔잔한 웃음을 입가에 남겼다.
나는 그 찰나를 담았다. 그리고 그의 그때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가 말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월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큰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던 2월이 지나갔다.
아름다움은 심장에 남기고 힘듦은 훨훨 날아가리라, 바라고 바랬다.
그가 지금 잔잔하게 웃고 있지 않은가.
그는 행복해 보였다.
그러므로 난, 행복해야 한다.
잔잔하게 고요하게 나의 입가의 미소가 아주 오랫동안 남기를.
우린 이른 아침 입가에 남은 미소를 기억하며 안전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육지)
나는 내내 부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나를 들키고 말았다.
그리고 알았다.
처음부터, 그를 적어 내렸고
마지막도 그를 적어 내렸다
어쩌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
비겁했지만
강한 부정은 아주 정확한 확답이었다는 것을.
개가 옆에서 잠이 들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타닥타닥, 소리를 들으며.
그리고 나와 개는 내내 기다렸다.
개의 털 색과 같은 하얀 머리카락을.
다시 속세에 물든 나는 오늘 외식할 생각이다.
그럼, 제주야 이제 가슴에서도 진짜 안녕�️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
제주의 마지막 밤, 제주라면 누구라도 얼큰하게 취하고 싶은 밤
우리는 마지막 제주의 풍경을 눈에 담기 위해 추위와 거센 바람에도 버텼다.
그때 경찰차가 왔고, 우린 서로 웃음이 터졌다.
대리기사를 기다리고 있는 중, 음주 운전을 생각하지도 않은 우리는 번쩍이는 불빛만 보고도 깜짝 놀란 것이다. 희한하게 경찰차만 보면 나는 그랬다.
눈에 띄는 옷을 입은 두 경찰이 정박되어 있는 배를 점검하는 듯했다.
묶여 있는 밧줄을 다시 확인하며 배를 끌어당기는 모습이었다.
이 추위와 강한 바람과, 누구나 취하고 싶은 이 달콤한 시간에 그들은 제주도민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미안함이 올라왔고, 얼큰하게 취한 내 발간 볼은 더욱 발개졌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들 모두 얼마나 인상이 좋던지, 강한 바람이 미간을 찌푸릴 만했지만 계속 웃었다.
나는 그들의 책임감과 웃음을 담고 싶었고, 정중하게 사진 찍기를 부탁했다.
그들은 제주해양경찰 소속(한림 파출소)이라고 말했다.
난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Z급 작가 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책임감과 수고스러움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내 글로 알려지는 건 쉽지 않겠지만 대부분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을 알아본다.
이미 그들의 노고는 제주도민이 모두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넣고 씹기의 단순한 기록>
- 부제, 짖는 개와 낯선 제주 연재를 마치며.
나만의 감정에 이끌려 단순히 적어 놓은 글을 독자님이 읽어 주시고 이야기해 주셨다.
감사의 말을 하고 또 해도 모자람이 없다.
여전히 난 부족한 z급 작가 나부랭이지만
몇 분 되지 않지만 나를 응원해 주는 여러분들을 위해
매진하고 또 매진하겠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실 지금 절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