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발표가 났다.
다들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이 뭘 했는지, 어떻게 올라갔는지. 실력이 아니라는 것을. 돈을 썼든, 줄을 탔든, 외부의 힘이 있었든 — 깜도 안 되는 사람이 올라갔다. 다 알았다.
점심시간에 수군거렸다. 퇴근 후 술자리에서 욕했다. "말이 되냐." "저 사람이 뭘 했다고." "우리가 바보냐." 그날은 모두가 분노했다.
한 달이 지났다. 아무도 그 얘기를 안 했다.
세 달이 지났다. 그 사람 앞에서 웃고 있었다. 보고하고, 인사하고, 앞에서는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일 년이 지났다. 원래 거기 있던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올라갔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 따르는 사람이 생겼다. 줄을 서는 사람이 나왔다. 처음에 같이 욕했던 사람 중에서.
왜 잊었을까.
나에게는 당장 돈벌이가 필요했다. 이번 달 월세가 있고, 아이 학원비가 있고, 내일 출근이 있다. 부당한 승진이 내 월급을 깎는 건 아니었다. 내 자리를 뺏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적이지 않으니까 내 일이 아닌 게 되었다. 내 앞에 더 급한 것들이 있으니까 남의 일이 되었다.
분노는 그렇게 사라졌다. 누가 지우지 않아도 스스로 사라졌다.
"대중은 개 돼지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 말이 나왔을 때 온 나라가 분노했다. 그런데 지금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분노했고, 들끓었고, 잊었다. 부당한 승진에 분노했다가 잊은 것과 똑같은 순서다.
이 순서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분노는 사라지고, 이기심이 돌아오고, 잊힌다는 것을. 개 돼지로 모는 사람들은 그게 업이다. 목적이 있고, 세력이 있고, 그걸로 먹고산다. 그 사람들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대중은 스스로 돌아간다.
그래서 개 돼지라고 한 것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다.
나를 보자.
부당한 승진에 분노했다. 잊었다. 앞에서 웃었다. 줄을 선 사람을 욕했다. 근데 — 나에게 그 기회가 오면 거절할 수 있는가. 솔직히 모르겠다.
공정을 외치면서 내 차례가 오면 예외를 만드는 게 나다. "이건 좀 다르잖아." 남이 하면 비판하고, 내가 하면 합리화하는 게 나다. 이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다 알고 있다. 알면서 매번 같은 자리로 돌아간다. 몰라서 당하는 건 억울한 것이다. 알면서 당하는 건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다 바꿀 수는 없다. 다 맞서 싸울 수도 없다. 내 앞에 더 급한 것들이 있으니까.
다만 — 다음에 부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 "아, 또 하고 있구나"를 알자. 분노가 사라지려 할 때, "이게 그 순서구나"를 알자. 바꿀 수는 없어도 알고는 있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개 돼지일 수 있다. 다만 — 그것을 아는 개 돼지와 모르는 개 돼지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