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냈다. 급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행을 간 것도 아니다. 그냥 주중에 백화점에 가보고 싶었다. 토요일에 가면 사람에 떠밀리고, 주차에 30분 낭비하고, 직원은 지쳐 있고, 계산은 줄이 길다. 평일에는 어떨까.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주차장이 비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직원이 먼저 웃으면서 다가왔다. 천천히 보고, 물어보고, 고르고. 같은 공간인데 공기가 달랐다. 돈을 더 낸 것도 아닌데 대접이 달랐다. 직원이 친절한 게 아니라, 응대해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까 친절한 거였다.
나는 그때 그들을 봤다. 주중에 백화점을 여유 있게 걷는 사람들. 평일 오후에 카페에서 책을 보는 사람들.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늘 그런 생각을 한다.
그들은 주인님 같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주인님이라고 부른다. 주중에 여유가 있는 사람, 평일 오후의 세상을 누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는 그러지 못하기에, 나 자신을 노예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노예와 행동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을 하고, 정해진 날에만 쉰다. 같은 도시에 사는데 보는 풍경이 다르다.
나는 주인님의 기분을 느끼려면 휴가를 내야 한다. 일 년에 몇 번. 그때만 잠깐 그 세상에 발을 들인다. 그리고 돌아온다. 다시 토요일에 줄 서는 노예로.
재밌는 건, 토일에 몰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당연하게 토일에 몰리고, 당연하게 불편해하고, 당연하게 월요일에 다시 출근한다. 왜 다 같이 쉬어야 하는지는 묻지 않는다. 원래 그런 거니까.
근데 원래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산업혁명 시절에 공장을 돌리던 방식이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공장에 모여 같은 시간에 일을 하고 같은 날에 쉰다. 그래야 기계가 돌아갔으니까. 지금은 기계도 아니고 AI까지 이야기하는 시대인데, 쉬는 방식만 200년 전 그대로다.
7일을 나누면 된다. 누군가는 월화를 쉬고, 누군가는 수목을 쉬고. 그러면 은행도 365일 열리고, 주말 도로도 한가해지고, 백화점도 북적이지 않는다. 주인님과 노예가 없어진다. 모두가 조금씩 주인님이 된다.
근데 안 바뀐다. 왜 안 바뀌는지도 나는 모르겠다.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은 해도, 누구도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토요일에 줄을 서고, 일 년에 몇 번 휴가를 내서 잠깐 주인님 행세를 한다.
다음 주 수요일에 휴가를 냈다. 한 번만 더 주인님이 되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