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正面突破
2025.04.06. 일요일, 봄밤에 든 생각
내가 해야 하는, 혹은 하고 싶은 일들을 되도록이면 제때 해내야 한다.
선택을 위한 고민의 시간은 되도록 짧아야 하며 이유는 간단해야 한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신이 없다는 것이며
사설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선택에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정말 필요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c.f. 삼 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면 잘 수 있는 날이 마침내 주어졌을 때 타인에게 지금 잠을 자도 되는지 묻지 않을 것이며 지금 자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인지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리스트업을 하지 않고 우선 공부를 시작할 것이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좋아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나열하고 분석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하고 싶어 해야만 하는 일들은 실행하는 데까지 지체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물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남들이 모두 하는 것이기에 머리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었던 일들과,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얻었던 동력은 그 순간에만 지속될 뿐이다. 일을 해내더라도 무언가의 성취를 얻지 못한 채 찝찝함만이 남을 때도 있다. 정말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더라도 해야 하지만, 남들이 하니까, 가니까, 즐거워하니까, 속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의 경우에는 그렇다는 거다.
떠올려보면 남들 사이에 무던하게 있고 싶어 한 것들보다, 그걸 왜 굳이 하냐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내가 내켜서 선택한 것들에 만족감이 비교도 되지 않게 높았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기둥이 되고, 나의 가치관을 구성하며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준다.
c.f. 나의 전공을 선택할 때 굳이 그 전공을 선택하는 이유가 뭐냐며 의아해한 친구들도 많았다. 지금 내 전공에 만족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못 본 척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친구를 도왔을 때, 이대로 관계를 애매하게 끝내기 찝찝해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을 때, 평점이 낮고 판매량도 적지만 내가 너무 갖고 싶었던 물건을 샀을 때, 간단한 일이지만 매일 해냈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치웠을 때 등.
결국 편한 길이 아닌 불편한 길을 고르는 것이 오래가는 방법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고민할 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줬었다. 편한 길을 따르는 것이 무던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지만, 너는 그렇지 못하는 성격이라며 불편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끝에서 만족할 거라나. 일리 있는 말이다. 요즈음 크게 느끼고 있다. 무던한 길로 돌아가는 것보다 어려운 길이라도 정면돌파하는 것이 더 즐겁다. 전에는 무던한 일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하지 않거나 끝까지 하긴 했지만 중간에 후회했었다. 그래서 마음이 내키는 일을 하긴 했지만 불안함이 있었다. 이 길에 대한 이정표가 많이 없었기에. 나에게 좋은 선택을 하는 연습과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인지, 어려운 길이라도 선택하고 걸어갈 수 있는 맷집이 생겼다. 그리고 결과가 객관적으로 좋건 나쁘건 주관적으로는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이제 알게 되었다.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선택하는 데 있어 주변의 조언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나의 이유와 갖고 행하니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challenge이다. 긍정적 의미의 도전이다. 더불어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작건 크건 내가 갖추고 있는 것, 내가 하는 일, 나를 둘러싼 환경에 만족할 수 있으니 많은 것들에 충만함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싫은 것도 있긴 한데, 맘에 들지 않는 한 가지보다는 좋은 아홉 가지에 더 집중하게 된다. 복잡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재고 따지지 않으니 생각도 이전보다 더 건강해진 것 같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별 탈 없이 꽤나 만족스럽게 흘러간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들은 '여유롭다'는 말이 금기어라며 내가 카페에 놀러 갔을 때 이런 말을 하면 다들 기겁을 하며 말조심하라고 한다. 요즘 하루가 별 탈 없다고 말하면 별 일들이 생겨나려나? 살아온 22년 중 기억이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현재 마음이 가장 편안한 것 같다. 필수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도 귀찮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즐겁다. 타인을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막연한 불안감도 줄었고, 타인의 말에 휘둘리고 상처받지 않는다. 하고 있는 다양한 일들도 의미 있다. 밤에 눈을 감는 시간이 아쉽다. 낮에 많은 일들을 해치우고 새벽에 과제를 할 때에도 그다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여러모로 충만한 요즘이다. 속이 텅 비었을 때는 누군가를 통해 구원받고 싶거나 구원해 줌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찾고 싶은데 지금은 나만으로도 충분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친구들과의 약속을 끊임없이 잡거나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을 만나 끝에 찝찝함을 느끼는 등의 가학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다. 할 일이 없지만 이게 편하다며 합리화하지도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 일정을 내가 건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만큼 조정한다. 완벽하게 내 삶을 계획하고 일정을 재단하지는 못하며 그럴 능력도 없고 그렇다고 느끼는 것은 자만일 것이다. '완벽'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며 가까워지려고 하면 더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완벽을 바라지 않는다. 완벽하고자 했던 지난날의 나를 보낸 지 오래되었다. 내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정답은 없지만 이 느낌은 나를 정답 가까이에 데려다줄 것만 같다. 차선책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 감정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안다. 언젠가 이 감정이 끝이 나고 무언가 나를 다시 끌어내리려는 느낌이 들더라도, 한 번 느껴본 감정이기에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나를 구렁텅이에서 밝은 곳으로 끌어내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엄청난 구렁텅이에 빠져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감정적으로 구렁텅이에 빠질 때가 있기에. 그리고 정말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저녁을 먹고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하며 학교 기숙사 앞 운동장을 빙글빙글 돈다. 매일 느끼는 생각이 달라진다며 일주일 전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술 한 잔 마시지도 않고 이런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하고 헤어진다. 대학생이라는 시기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시기인 걸까? 그래서인지 “이게 대학생이지” 라는 말을 즐겨한다. 내 생각이 매일매일 달라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기쁘다. 기쁨이든 아픔이든 행복이든 두려움이든 설렘이든 다양한 감정들과 생각들 모두 정면돌파하는 대학 시기를 보낼 것이다. 열정의 불씨가 오랫동안 타지 않기를, 타더라도 다시 타오르길, 모두 연소한 끝에는 나를 꽃피울 수 있게 하는 재가 되어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