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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JAZZ May 25. 2024

정상 안 비정상

서울특별빌라 시리즈 4 (508호의 시점)

그와 내가 만난 곳은 교양 강의 조별과제에서였다. 아주 재미없는 소설책 한 권에 대하여 발표를 준비해야 하는 강의였는데, 그와 나를 포함하여 4명이 한 팀이 되었다. 어색함을 풀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가 나와 같은 건물, 서울특별빌라에 거주한다는 것과 우리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313호, 나는 508호였고 우리는 25살이었다.


같은 건물에 거주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그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조별과제 이야기 말고 다른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고, 같이 밥을 먹고 카페를 가기도 하였다. 같이 두꺼비같이 생긴 집주인에 대하여 뒷담화를 나누고, 그가 옆집 312호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그는 요즘 보기 힘든 올곧은 사람이었다. 우산도둑을 붙잡기 위해 노력하고, 학교에서는 강의를 열심히 듣고, 하루에 1시간은 꼭 운동하는 그의 올곧음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는 담배는 전혀 손에 들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술도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시대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드문 것이 당연했다. 쾌락을 쫓는 시대이니, 그와 같은 올곧은 사람들은 부러지기 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비가 오는 날에 그와 같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못한 한 여자가 비 맞은 생쥐 꼴이 된 채 뛰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그는 자신의 우산을 씌워주겠다고 그 여자에게 달려가 그의 우산을 같이 쓰고, 그 여자의 목적지인 중앙도서관까지 같이 걸어가 주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남의 불행에 대해 신경 써주는 그의 정상적이고 따뜻한 면모가 그 자신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서늘함을 처음으로 느꼈다. 오직 올곧기만 한 사람은 얼마나 큰 짐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힘들다는 소리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는 그가 얼마나 힘들지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그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친구로서 그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해도, 그의 짐은 그가 감당해야 하고, 나는 내가 감당해야 할 짐만으로도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항상 바른 자세로 강의를 꼿꼿이 듣는 그가 걱정되었고, 나는 그의 친구로서, 그의 곁에 항상 머물러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에 어떤 구덩이가 있는지는, 나는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는 항상 웃었다. 입꼬리를 귀에 걸고 따듯한 미소를 지었으며, 강의실과 집 복도에서 마주칠 때면 화사한 웃음으로 나를 기분 좋게 해주었다. 내 여자친구, 지원이도 그에 대해 호감을 품게 되었고, 우리는 90년대 사람들이 서로의 집에 오가는 것처럼 그와 이웃사촌이 되었다. 우리는 지원이가 요리를 많이 할 때, 반찬이 본가에서 배달이 올 때면, 그의 집 313호의 문을 두드려 나눠주고는 하였다. 그도 보답으로 밥을 자주 쏘곤 하였다.


하루는 내 방에 놀러온 그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항상 그렇게 바르게 있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하다고 질문하였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냐 나도 엄청 결점 많아. 나 요리도 못하고, 집은 좀 더럽고 막 그래" 나는 그런 그가 귀여웠다. 지원이도 그를 일부러 놀려대는 것이 그를 귀여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와 알게 된지 몇 개월이 지났다. 그와 내가 서로의 집을 별장 삼은지는 2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그즈음은 항상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어오는 나날이었다. 가끔은 눈이 오고, 또 가끔은 비가 오기도 하는 진눈깨비의 계절이었다. 나는 그에 대하여 항상 허깨비를 좇는 인간군상에 가깝다는 생각을 점차 하게 되었다. 저 위에 있는 그의 이상은 어쩌면 허구에 불과할 것이고, 이상을 향해 고개를 든 해바라기는 차디찬, 낯선 겨울바람에 고개를 툭 떨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짐이 무거워도 그의 곁에 더더욱 있어 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이런 면모야말로 그가 인간으로서 가진 가장 무서운 면모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와 안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가 어떤 인간인지 전부 파악하였다고 생각하였고, 점차 나는 그에게 감화되어 내 짐보다 그의 짐을 더 보게 되었다.


겨울이 다가온 12월이 되었다. 나는 그와 명동으로 놀러나갔다. 차디찬 겨울바람과 진흙색 미세먼지가 명동거리를 점거하고 있었다. 외국인들은 미세먼지에도 개의치 않고 명동거리의 화려함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백화점에 들어가 겨울옷 코디에 대하여 같이 떠들어대었고, 길거리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파는 음식들을 몇 개 집어 먹기도 하였다. 명동성당을 관광하였고, 같이 칵테일 바에 가기로 한 시점에서 그가 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어차피 곧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도 없었다. 미세먼지는 가득했지만 비가 올 기색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잘 봐, 사람들 가방에 작은 우산들이 끼워져 있지?” 그가 말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사람들의 가방 하나하나마다 우산이 끼워져 있었다. 나는 일기예보를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들의 성실함에 감탄하였다. 나는 그의 말에 순응하였다. 집에 가기로 한 것이었다.



택시는 우리 둘을 뒷좌석에 태운 채 한강 변을 달리고 있었다. 하늘은 점차 짙어지더니, 이제는 먹구름이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내며 어두운 하늘을 더 어둡게만 하였다. 강 위로는 한강 다리들 위로 수많은 자동차가 도시의 동맥을 가로지르며 부산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강을 가로질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도시의 생리란 어떤 것일까에 대해 생각하며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근데 어차피 나 술 먹을 생각은 없었어.” 그가 말했다. 나는 황당하였다. 아까는 칵테일이라도 먹고 싶다고 먼저 운을 띄웠던 그가 아닌가. 표리부동한 그의 태도를 바라보니 나는 잠시 화가 나려고 했지만, 굳이 표정에 드러내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알콜로 하는 술도 많고, 굳이 꼭 같이 취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술은 몸에도 안 좋으니까.” 내 눈치를 조금 보더니 그가 말했다. 이는 이치에는 맞는 말이지만 인간 집단의 생리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예의는 직장에 다닐 때 넥타이를 매야 하는 것처럼 어쩌면 챙겨야 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옷차림이고, 그와 나는 급속도로 친해져 예의를 벗은 채 행동하는 것을 당연시했기에 나는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네가 다 맞다. 뭐 너 원래 술 안 좋아하는 것 알아. 웬일로 그러나 했다.”


“근데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도 있어.”


“그게 뭔데?”


“너는 네가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생각해?” 그는 살짝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뜬금없는 소리였다. 그는 가끔씩 정처 없이 떠도는 생각들을 붙잡아 토론 주제로 나에게 토스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자동차 안의 거울로 택시기사가 갑자기 귀를 쫑긋하게 세우며 동시에 피식 웃는 것을 보았다. 그렇지만 한강 다리 위 자동차들의 목적지가 제각기 다른 것처럼, 사람 간의 관계도 제각기 다르며, 그와 나는 항상 무형의 것들을 얘기하는 것을 즐겼다 마치 밥벌어 먹기 힘든 사람들의 대표 예시가 되는 듯한 일을 즐겼던 것이다. 나는 택시기사는 무시하고 그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다.


“글쎄? 애초에 정상이라는 것도 인간이 정하는 거고, 평균과 동의어도 아닐뿐더러 사람들마다 각자의 결점이 다 다른데 과연 정상을 뭐라고 정의할 건데?”


“그렇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이라는 기준이 있잖아. 무언가 좋은 삶을 영위하는 스탠다드. 그런 것들에 넌 도달했어?”


“글쎄다. 사실 그런 기준에 도달하기는 어려워. 정말 평생을 노력해도 누군가에게는 단 한 발자국일 수도 있다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내 나쁜 버릇이었기에, 이런 질문은 회피하고만 싶었다. “그럼 너는, 너는 정상인이야?” 내가 말했다.


“나는 아니지, 사실 내가 정상이 아니어서 너한테 물어본 거야. 정상이라는 것은 나에게는 안개로 꼭 숨기면서 절대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산의 정상 같은걸?” 그는 말장난을 참 좋아했다. 분위기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모든 어휘를 붙잡아두려고 애쓰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그럼 우린 다 비정상이네, 원래 사람들은 다 비정상이야. 너도, 나도, 우릴 가르치던 담임선생님도, 그리고 지금 대학에서 나한테 정상이 아닌 학점을 준 교수도 비정상이지.”


“그렇지만 나는 내가 동경하던 것들을 기억해. 아등바등 삶을 살아가면서 어릴 적에 대학생 형들은 얼마나 정상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인지 기대하던 시절도 기억하고, 아까 백화점에서 일반인은 이해하지 못한 유머를 담은 영화를 보며 평론가들처럼 고상하게 웃던 사람들도 정상인 것만 같고.”


“그렇게 따지면, 결국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없어. 내 기준으로는 네가 말한 사람들 모두 다 비정상이야. 바뀌는 것은 결국 관찰자의 기준일 뿐이라고.” 나는 원론적인 얘기를 하며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아까부터 그의 표정은 진지함을 드러내다가 서서히 일그러지고 있었다. 고집스런 검은색의 눈동자는 서서히 옅어지더니 점차 물기가 고여가는 듯 보이기도 했다. 나는 슬슬 그가 하고 싶었던 것은 토론이 아니라 한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오늘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였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던 것은 기침이 나올 만큼 미세먼지가 가득한 하늘뿐이었다.


“도시는 야경이 참 이뻐. 저기 건물들 좀 봐. 아직까지 야근하는 사람들이 많나봐. 엄청 밝아. 서울의 밤은 어둠이 보이지가 않는다니까.” 딴소리였다. 그렇지만 딴소리가 나올 때가 어떤 때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일그러지고, 깊어지고,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침묵에 안주할 수밖에는 없었다.


“저기서 야근하는 회사원들도 다 정상이야. 그리고 아까 명동 백화점에 쇼핑하던 사람들도 다 정상이고, 주황 불빛으로 환하던 명동거리에서 하하 호호 웃던 외국인들도, 커플들도, 모조리 싸그리 다 정상이야. 근데 난, 난 정상이 아닌 것만 같아.” 그는 이제 거의 흐느끼고 있었다.


마침 먹구름들도 착실하게 모아온 빗방울들을 도시를 향해 쏘아 내리기 시작했다. 거센 소나기가 행복하게 반짝이는 서울의 밤을 향해 쏟아졌다. 이제는 환하게 반짝이던 마천루들의 빛이 빗방울에 흐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소리에 자동차들의 소리가 가려졌고, 택시 앞창에서 와이퍼가 돌아가는 소리가 어우러져, 택시 안은 밖의 도시와 유리된 공간처럼 느껴졌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규칙적인 소리에 맞추어 그도 이제는 완전히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이젠 아까 명동에서 재치를 뽐내던 그의 모습이 무엇이고, 지금의 그는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만 하였다. 얼굴을 가린 채 코를 훌쩍이며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총에 맞은 채 전쟁터로 기어가는 상이병처럼, 그의 말은 느리고 고통스러웠다.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고, 내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들이, 다 미안하대 나한테, 근데 나는 용서해주기로 했어. 알았다고, 괜찮다고 말했어. 몇 분 만에 한 말이 지난 내 몇 년의 상처랑 같은 값어치더라고.”


그는 나에게 자신의 상처를 말하지 않았었다. 누구나 상처받는 세상이지만, 그는 유독 더 깊이 내상을 입은 사람처럼 항상 미소를 지을 때도 눈망울에 한구석을 비워두고는 했다. 그렇지만 말로 꺼내는 것은 자신의 지나치게 깊은 곳에서 꺼내야 하는 거라고, 항상 자신의 상처를 말하기를 꺼리며 미소를 지었던 그였다. 도대체 어떤 것이 이토록 그를 힘들게 했을까? 학교폭력일 수도, 가정 내 불화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깊은 상처에 대해서는 친해진 정도가 무색하도록 아는 것이 적었다.


“용서한다는 말이, 참 쉽게 내 입에서 나오더라고, 근데 난 용서하고 싶지 않았어. 사실 화를 내고 싶었는데, 입에서는 용서한다는 말이 나오더라고.”


“내 지난 일생 동안 당신들 때문에 내 마음속 깊은 구덩이를 파고 나는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밖은 지독하게도 어둡고 무서운 밤이어서, 나는 내 구덩이 속에서 숨죽이고 살아갈 수밖에는 없었다고, 이제는 그 구덩이가 거대한 공동이 되어서 내 마음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고, 나는 이제는 공동과 공포와 비정상과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고. 지독히도 저주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의 발음은 거의 듣기 힘들 정도로 웅얼대는 말이 되어 갔다. 그렇지만 그의 말 마디 하나하나에 축적된 그의 감정들의 세월이 서슬 퍼렇도록 날카로워 나는 그의 상처에 베이는 것처럼 점차 그 자리에 있는 것조차 고역으로 느꼈다.


“그래서 나는 비정상인 거야, 모든 게 관찰자니 뭐니의 기준도 아니고, 나는 절대로 명동거리에서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행복을 이해하지 못할 거고, 또 절대로 행복을 박제하려고 카메라 앞에서 거짓 없이 웃을 수도 없을 거고, 또 절대로 밤에 길거리를 다니면서 안전을 느끼지 못할 거야. 나는 말이야, 밤이 되면 내가 잡아먹히는 것 같아.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공동이, 밤의 어둠과 감응해서 점점 나를 붙잡고, 먹어치우는 것만 같아. 그래서 난 절대로 혼자 밤거리를 나서지 못할 거라고. 쇼핑하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모든 순간에 나는 내 공동과 함께 살아갈 거고, 나는 절대로 정상이 되진 못할 거야. 절대로 나는 정상이 되진 못할 거라고.”


나는 그저 그가 울먹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만 있었다. 그가 말하는 거대한 공동이 그의 밖으로 흘러나와 택시 안의 모든 것은 잡아먹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소나기가 거세게 몰아치는 바깥세상에서 숨쉬고 싶어서 택시 창문을 얼른 열었고, 앞의 택시기사가 무엇하냐고 화를 내는 순간에도 거대한 공동이라는 관념에 맞서 제정신을 차리려고 물벼락을 맞고만 있었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택시는 비정상과 우울의 표본으로 박제되고 있었다. 나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 하나하나를 빗방울을 맞을 때마다 느끼면서 얼른 이 택시에서 나가고 싶다고, 집이든,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는 한강 변이든 어디든 좋으니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는 어떤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비정상이 내 마음속에 침입해 똬리를 튼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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