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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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구형’이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구형이라는 말은 아직 결정이 아니라는 뜻이다.
검찰이 요청한 형량일 뿐, 법원이 내린 결론은 아니다.
절차는 남아 있고, 판단은 유예된 상태다.
형식적으로 보면 그 자막은 아직 문장의 중간쯤에 와 있었다.
사안은 내란 혐의였다.
검찰은 실제로 벌어진 결과보다 그 지위가 가진 위험성과 파급력을 강조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 명령이라는 언어, 국가 권력이 한 방향으로 움직였을 때의 가능성.
논리는 정제되어 있었고, 설명은 일관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실제 희생자가 없었다는 점과 그래서 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말이 하나의 논리로 연결될 때,
나는 그 연결이 과연 자연스러운지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법적으로 가능한 최고형이라는 설명과 형벌의 비례에 대한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사형이라는 단어는 아직 가정법에 가까웠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미 확정형처럼 보였다.
한가한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는 대화가 굳이 사적인 것으로 남을 필요가 없었다.
“속이 다 시원하다. 사형이라니.
저 인간은 사형 받아야 해.”
자연광이 얼굴에 닿아 있는 여성은 전혀 흥분해 보이지 않았다.
말투는 차분했고,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내가 그 말을 듣고 있다는 사실은 그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이 그 말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앞에 앉은 다른 여성의 반응을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출발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었고, 이 공간에 더 머물 이유도 없었다.
밖으로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편이 지금의 판단을 계속 듣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영하 4도의 공기는 생각보다 정직했다.
거부감을 밀어내기에 딱 알맞은 온도였다.
무거웠던 머리가 찬 바람에 씻겨 내려갔다.
감정은 얼어붙고, 생각만 남았다.
거부감.
그렇다.
내가 느낀 것은 분노도 슬픔도 아니었다.
거부감이었다.
이것은 정치 성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좌와 우의 문제도, 찬성과 반대의 문제도 아니었다.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였다.
전직 대통령이 잘못했느냐 아니냐는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었다.
나를 멈추게 한 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상상하며 안도와 쾌감을 동시에 느끼는 태도였다.
그 태도는 지나치게 빠르고, 너무 쉽게 결론에 도달했다.
죽음은 상상 속에서 먼저 소비되었고 정의는 그 소비를 정당화하는 장식처럼 붙어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어떤 논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설득할 말도, 반박할 의지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사실만 분명해졌다.
이것은 의견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태도의 문제다.
그리고 태도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나에게는 위험하다.
나는 그 선을 경계선이라 부르기로 했다.
환기를 넘어 추위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터미널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생각을 정리해 줄 거라 기대했지만 몸이 먼저 거부했다.
그녀들의 대화는 여전히 또렷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말은 의지와 무관하게 귀에 꽂혔다.
이 무슨 주책이람.
“구정 연휴에 하루만 빼서 우리끼리 놀자.
여자들은 명절에 스트레스 터지잖니.”
그건 그래.
나는 속으로 동의했고, 그 사실이 조금 우스워 비식 웃음이 났다.
“이태원 가자.
거긴 식당 문 안 닫아.
외국인들 거리라.”
좋다고 맞장구를 치던 그녀는 곧바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태원 참사였다.
불쌍한 아이들.
부모들은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이태원은 좋기도 하지만 그래서 늘 마음이 아프다고.
그 말은 진심처럼 들렸다.
조심스럽지도, 과장되지도 않았다.
애도의 형식을 갖춘 말이었다.
여전히 자연광을 뿜어내는 고운 피부의 그녀는 조금 전과 달리 몹시 인간적으로 보였다.
서로 다른 문장을 아무런 모순 없이 연이어 말하는 그녀는 나에게 낯설었다.
그 낯설음은 곧 거부가 되었고,
설명되지 않은 덩어리 하나가 가슴 안쪽에 남아 숨 쉬는 일을 방해했다.
또다시 나는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고독해졌다.
대중의 심리에 동의하지 못하는 외로움이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나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의견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슬프다.
사람들은 운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반사다.
아이들은 죄가 없고, 사고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래서 애도는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나는 그 슬픔을 의심하지 않는다.
처벌은 사회가 맡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잘못한 사람이 자신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과,
그 대가를 죽음의 형태로 떠올리며 속이 시원해지는 감정은 같은 자리에 놓일 수 없었다.
문제는 판결이 아니었다.
책임도 아니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며 안도하는 태도,
그 지점에서 나는 멈췄다.
생명은 내가 시작한 것이 아니므로,
누군가의 죽음을 감정의 해소로 사용할 수는 없다.
죽음과 우리 사이에는
분명히 건너서는 안 될 경계선이 있다.
2.
얼마 전, 대중에게 존경받던 한 배우가 떠났다.
연말이 되면 대종상영화제가 채널을 떠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그 배우는 상을 휩쓸었다.
‘국민배우’라는 이름은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는 그 이름을 오래 달고도 한 번도 추문에 걸리지 않았다.
말이 많던 시대를 아무 말 없이 건너왔다.
아름다운 배우자와 잘 자란 아이들.
이제는 조금 쉬어도 될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이상할 만큼 허전했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배우들이 모였다.
그들의 얼굴은 비슷하게 굳어 있었고, 그 누구도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는 정리하기엔 이르고 떠나기에는 여전히 아까운 나이였다.
의학이 발달한 시대에 관리받을 수 있었음에도 피하지 못한 죽음은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죽음 앞에서 누군가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애도는 조용히 흘렀고, 감정은 낮아졌다.
죽음 앞에서는 말이 줄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영화들이 방영되었다.
넷플릭스에도 그의 오래된 영화들이 올라왔다.
남겨진 사람들은 빛나던 그의 얼굴을 반복해서 보며 그리움의 시간을 견뎠다.
“진짜 밤마다 불렸는데. 안성기 씨 이름.”
“대종상 받을 때는 매년 불렸어. 대단한 사람이었지.”
텔레비전에서는 〈투캅스〉가 흘러나왔다.
나는 단감과 사과를 깎았다.
남편은 단감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단감을 먹으려면 사과도 함께 깎아야 했다.
“영화를 정말 많이 찍었어.
〈실미도〉 같은 영화도 있었고, 웃기고 유쾌한 영화도 정말 많았어.
아우, 아까워.
실감이 안 난다.
안성기 씨가 돌아가셨다니.”
“무릎과 무릎 사이.”
남편은 기발한 생각이라도 떠올린 사람처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우리 어릴 때 있잖아.
벽보에 ‘무릎과 무릎 사이’ 이렇게 붙어 있으면 도대체 그게 뭔지 진짜 이상했지, 크크.
왠지 엄마한테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고,
괜히 아는 척하면 더 곤란해질 것 같았고.
애들 다니는 길에 그 영화 벽보가 떡 하니 붙어 있었잖아.
하하하.”
사과를 깎던 내 손이 딱 멎었다.
남편은 자기가 또 뭔가를 잘못했나 싶었는지,
아니면 이 여자가 왜 또 변덕을 부리나 싶었는지,
짐짓 얼굴을 굳힌 채 사과를 먹었다.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한편으로 포기하는 마음이 되어 주방으로 발을 돌렸다.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는 경계선도 허물고 싶어지는 걸까.
가끔, 밖에서는 하지 않을 말을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편이 버거웠다.
흔들리는 경계선.
그거였다.
남편이 이럴 때 버거워지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난 한 배우의 애도가 끝난 자리에서,
하필 떠올린 영화가 야한 영화라는 사실.
그 선택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존중감이 몸에 밴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3.
한때 같이 일하던 동료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전교 1등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보헤미안처럼 옷을 입고 세상사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얼굴로 그 말을 했기 때문에
나는 잠시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말은 자랑이 아니었다.
사정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녀는 어릴 적 어머니와 둘이 남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았다고 했다.
막내딸인 자기와 어머니, 두 사람뿐이었다.
어머니는 밖에서 자주 야단을 맞았고, 모욕을 당했고, 무시를 견뎌야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생각했다고 했다.
살아남는 길은 공부밖에 없다고.
그래서 잠을 줄였고, 자다 깨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고 했다.
혹시라도 어디선가 자기보다 더 공부하는 아이가 있을까 봐.
이제는 돈도 벌고 생활도 안정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면 가엾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는 엄마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밖에서 그런 수모를 겪으면서도 자기에게 그렇게 잘해줄 자신이 없어서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오래 곱씹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만난 그 여자의 얼굴이 그때 떠올랐다.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리며 속이 시원하다고 말하던 얼굴.
흥분도 분노도 아닌 차분한 확신의 얼굴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혹시 그 사람도 어딘가에서 오래 분노를 쌓아두었고,
그 분노가 힘을 가진 사람을 향해 적의를 띠게 만든 것은 아닐까.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닌 사람의 잘못 앞에서
죽음마저 속이 시원한 결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건 누군가를 미워한 대가로
자기 안의 인간성 한 부분을 잃어버린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선택을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렇게 닳아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슬퍼하고 싶다.
나는 따뜻한 사람들이 끝까지 남아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 잔인함이 어디에서 왔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