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은 이불 속을 설명하는가

by 추지원

1

우리는 고기를 먹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다 먹고 있었다.


불판 위에는 더 이상 고기가 없었고 연기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잔을 들거나 이쑤시개를 찾고 있었다. 마무리의 시간이었다.


그때 성진이 말했다.


“나 고기 굽느라 정작 못 먹었는데 1인분만 따로 시켜서 먹어도 될까?”


그는 정중했다. 정중함에는 늘 반박하기 어려운 힘이 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고기는 곧 도착했고 성진은 혼자 먹었다. 혼자 굽고, 혼자 뒤집고, 혼자 씹었다. 그 모습은 마치 지금까지 아무도 고기를 먹지 않은 것처럼 열심이었다.


나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번 파티에서도 그는 비슷한 표정으로 와인을 마셨다. 누군가 뒤늦게 가져온 비싼 와인이었다.


성진은 그 와인의 가치를 즉시 알아보았다. 그는 항상 가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본다. 그날 그는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고 또 비웠다.


우리는 취해 있었고 그는 끝까지 맑았다. 와인은 사라졌고 성진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 잘 마셨다.”


그리고 떠났다.


이미 알고 있었다. 성진은 언제나 자기가 낸 것보다 더 가져가야만 안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늘도 어김없이 대화는 이불 속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마치 단체로 잘못 탄 에스컬레이터처럼.


성진은 마술사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결말을 미리 정해두는 마술사였다. 이야기가 위로 흘러도 아래로 빠지고, 좌로 새도 우회전을 하며 결국에는 이불 속에 착륙했다.


성진은 아무 데서나 시작할 수 있었다. 그는 맥락을 낭비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블라우스를 집어 들었다가 “색이 참 잘 어울리네요”라고 말하고, 그다음에는 몸이 참 탄탄하다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모든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이미 이불 속에 들어와 있었다.


문제는 그 이동이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가야 할 곳이 거기였다는 것처럼.


오늘도 어쩌다 보니 우리는 모두 이불을 덮고 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성진의 재능이다.


분명 부동산 얘기가 돌고 있었는데 형형색색의 이불은 이미 곱게 펼쳐져 있다. 정신 차려보면 그렇다. 성진은 아무 데서나 시작한다. 평당가에서 출발해도 결국엔 이불 끝자락을 만지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간다. 바보들처럼.


그때 준기의 눈초리가 달라진다. 준기는 안다. 남자는 남자를 아니까.



2

준기를 소개할 차례다.


준기는 화끈한 남자다. 이건 수식이 아니라 사실이다. 사업에 성공해서 돈이 많고, 자기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아 몸도 딱 봐도 탄탄하다. 괜히 벗기지 않아도 이미 벗은 것 같은 몸이다.


준기는 자기 얘기를 할 때 돌리지 않는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는다. 질문이 오면 바로 답이 나온다. 직격탄이다.


준기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고 말한다. 그래서 딱 보면 알 수 있다. 아, 이 사람은 그래도 어딘가 순수한 구석이 있겠구나.


그 순수함은 조금도 무례하지 않았다.


성진과 준기는 오늘도 나란히 있었다. 누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지가 중요해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둘은 밀지도 당기지도 않았다. 그저 팽팽했다.


성진이 이불 속 이야기를 시작하면 준기는 고개를 숙인다. 그건 경청의 자세가 아니다. 잠시만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폭우가 지나갈 것이라는 생활의 지혜에 가깝다.


준기는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만 듣는다. 그 정도면 살아가는 데 충분하다는 얼굴이다.

나는 가끔 준기가 성진을 아니꼽게 여긴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정면에서 한 대 치고 욕을 먹은 다음 손을 털고 나오는 사람에게는 특유의 가벼움이 있다. 반대로 착한 얼굴로 머뭇거리며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는 인간을 보면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진다.


손자병법에는 정면돌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측면공격도 있고, 우회도 있고, 기다림도 있다. 그러나 가진 자는 대개 정면으로 간다.


정면으로 부딪혀도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면 그건 운이 아니라 능력이다. 혹은 신뢰다. 대개는 둘 다다.

이도 저도 없는 사람은 전술에 밝다. 말을 돌리는 법, 자기를 보호하는 법, 선해 보이는 법을 안다. 이론은 화려하고 내용은 가볍다. 성진에게는 그런 종류의 지성이 있었다.


준기라면 이불 속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자기 실수담을 먼저 내놓았을 것이다.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이었는지, 아내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를 별다른 수식 없이. 그는 그런 이야기를 실제로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준기는 피부나 아랫도리를 굳이 건드리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언제나 조용하다.



3

성진의 이야기는 항상 칭찬으로 시작된다. 이건 예의가 아니라 전략이다.


오늘은 누가 어깨선이 예쁜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살이 좀 빠진 것 같다는 말도 곁들인다. 머리 스타일이 바뀌니까 얼굴선이 살아난다는 평가도 빠지지 않는다.


성진은 칭찬을 흩뿌리지 않는다. 정확히 사람 위에 떨어뜨린다. 대중을 먼저 확보하는 거다. 곧 나올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이성들.


그리고 슬그머니 들어간다.


“근데 말이야, 여자들은 남편이 밤에 다가가면 왜 그렇게 화를 내?”


아주 순진한 질문처럼.


잠깐의 침묵. 누군가는 결국 말하게 된다.


“피곤할 때 건드렸나 보지.”


됐다. 이제 문이 열렸다.


“아니야, 피곤한 것도 아니었어. 설거지도 내가 다 했고 컨디션도 좋았는데.”


성진은 상황 설명에 진심이다.


“그냥 뒤에서 슬쩍 안았을 뿐이야.”


슬쩍이라는 단어는 늘 무죄처럼 들린다.


“그랬더니 짜증을 내더라고.”


그는 아내의 목소리를 아주 정확하게 흉내 낸다.


“아이, 저리 좀 가.”


여기까지 오면 질문은 이미 질문이 아니다.


“이게 괜히 그러는 걸까? 아니면 권태기인가?”


그리고 절대 빠지지 않는 말.


“저, 밖에 나가면 여자들한테 인기 없는 편은 아니거든요.”


이 말이 나오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거나 아무튼 넘어간다.


“첫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뻐, 이뻐 해주는데 자꾸 튕기기만 해.”


이쯤 되면 성진은 자기 레퍼토리로 자연스럽게 접어든다. 그 실험 이야기. 여자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입했더니 미치겠더라는 이야기, 성욕이 솟구쳐서 땀을 뻘뻘 흘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기다리는 결론. 아, 남자들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구나. 이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 남자는 본래 동물에 가까운 존재구나.


성진은 이 결론에 항상 안도한다.


“남자로 사느라 고생 많다.”


웃음이 터진다. 큰 웃음이다. 덕분에 이 대화는 순간 아주 건강해 보인다. 마치 아무도 소모되지 않은 것처럼.

4

그날 밤, 나는 투명해졌다.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거울 앞에 섰는데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게도 놀라지 않았다. 나는 원래 사람들 앞에서 없는 쪽에 가까운 인간이었으니까.


능력은 단순했다.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문은 의미가 없었고 예의는 더더욱 필요 없었다. 밤에만 작동한다는 점이 이 능력의 유일한 품격이었다.


하필 그날은 성진과 준기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간 밤이었다.


나는 먼저 준기의 집으로 갔다.


불은 꺼져 있었고 집은 조용했다. 조용한 집은 대개 사람이 편하다는 뜻이다.


부엌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설명이 필요 없는 웃음이었다.


준기의 아내가 말했다.


“야, 며칠째냐?”


준기는 물컵을 들고 있었다. 패배자의 자세는 아니었다.


“밥은 잘 처먹으면서 꼬추는 왜 안 서, 이 인간아.”


준기는 웃었다. 전혀 억울해 보이지 않는 얼굴로.


“수십 년 끼고 산 마누라 앞에서면 꼬추가 안 서.”


그 말에는 변명도, 자기 연민도 없었다.


“니가 너무 세잖아. 내 기가 팍 죽지.”


아내는 그를 잠깐 보더니 다리를 쫙 벌렸다.


“내가 쎄?”


콧방귀였다.


“니가 못난 거지. 힘 좀 써봐. 말만 하지 말고. 들어와 보시라고.”


둘은 동시에 웃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이었다. 부부만이 허락받은 잔인하고 평화로운 웃음이었다.


나도 무의식적으로 같이 웃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 다행이다. 보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도 음소거였다.


이 능력, 생각보다 윤리적이다.


나는 조금 가벼워진 기분으로 성진의 집으로 갔다.


성진은 술을 먹고 들어왔다. 놀다 왔다는 말이 더 정확했지만 그 차이를 이 집에서 궁금해할 사람은 없었다.

현관을 막 지나려는 순간 욕실 문이 열렸다.


아내였다. 머리는 젖어 있었고 수건은 목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진을 바라봤다.


시선에는 분노도, 실망도 없었다. 그래서 훨씬 더 모욕적이었다.


성진이 먼저 말했다.


“아, 좀 늦었지? 이야기하다 보니까…”


말은 끝까지 가지 못했다. 이미 너무 여러 번 쓰인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짧게 말했다.


“안 물어봤어.”


그 한마디로 성진의 밤은 정리되었다.


아내는 그를 스치듯 지나가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뭐, 새로운 얘기면 듣지.”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맨날 같은 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술 냄새.”


문이 닫혔다. 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저렇게 날카롭게 문을 닫는 것도 하나의 재능일까.


그 순간 능력은 사라졌다. 아주 정확하게.


나는 침대에서 깼다. 이불을 덮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아마도.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였다.


이불 속은 볼수록 시시하고, 말할수록 비대해진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열심히 이불 속을 설명하는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뭔가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말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혼자서는 서럽다.


말은 손보다 덜 노골적이고 그래서 더 오래 쓸 수 있다. 죄책감도 덜하다. 무엇보다 흔적이 남지 않는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면 그 말은 중간에 꺼진다. 그래서 관중이 필요하다.


사람들을 모으고 칭찬으로 문을 연다. 질문으로 안으로 들어가 결국 자기 이야기로 끝낸다.


누군가 웃어주면, 누군가 고개를 끄덕이면 그 순간 그는 자기가 아직 유효하다고 믿는다.


그건 공유가 아니다. 해소다.


해소가 끝나면 사람들은 흩어진다. 남는 건 없지만 성진은 잠시 편안해진다.


그래서 다음 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이야기. 조금 더 매끄럽고, 조금 더 안전한 이야기.

말은 그의 유일한 혼자 하는 행위이자, 유일하게 함께 해야만 가능한 행위다.

그렇다면 나는 성진을 이해해주어야 할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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