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story] '서울의 브루클린' 성수동을 말하다

성수동의 변모, 그 구조와 동력

by 매드본

불과 10년 전만 해도 성수동은 별로 가고싶지 않은 서울 동부의 낙후된 산업지대였다. 대학생 시절, 지역의 아이들을 무료로 과외해주는 사회 봉사활동을 다녔던 곳으로도 기억이 생생하다. 제화공장과 철강소, 창고가 밀집해 있었고, 서울숲이라는 대형 공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낡고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며, 감각적인 카페와 전시 공간, 스타트업 사무실이 들어서고 수많은 브랜드가 앞다퉈 팝업스토어를 여는 공간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 변화는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며, 앞으로 어디로 향할 것인가?


첫째, 낙후된 산업지대에서 문화 실험지로 성수동은 오랫동안 경공업 중심의 산업지대였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부터 산업 구조 재편과 임대료 저렴이라는 조건이 맞물려 예술가, 디자이너, 소규모 창업자들이 이곳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공간을 리노베이션하여 공방, 전시실, 카페 등으로 탈바꿈시켰고, 성수동은 점차 ‘재생의 실험장’이자 ‘창조적 클래스’의 거점으로 진화했다. 서울숲과 가까운 입지적 장점도 문화적 전환을 가속화시켰다.

둘째, 브랜드와 자본의 유입 : 공간이 곧 콘텐츠 2020년대에 들어서며 대기업과 글로벌 브랜드들이 성수동에 주목했다. 나이키, 샤넬, 르라보 같은 브랜드들이 기존 매장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경험형 매장'을 성수동에 열었다. 그들은 성수의 감성적 정체성과 물리적 공간을 활용해 ‘브랜드 세계관’을 연출했고, 소비자는 단순한 쇼핑을 넘어 '체험'과 'SNS 콘텐츠 생산'을 위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성수동은 어느새 ‘브랜드가 가장 창의적으로 변주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된 것이다.

셋째, 젠트리피케이션 : 누구의 공간인가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또 다른 문제를 동반한다.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원래 이곳에서 일하던 제화 장인들과 자영업자들이 점차 밀려나고 있다. ‘재생’이라는 이름 아래, 창조적 실험은 거대 자본에 의해 소비되고 정형화되며, 성수동의 원래 정체성은 흐려지고 있다. 지역 기반 없이 유입된 상업적 공간들은 지속 가능성이 낮고, 일회성 콘텐츠로 변질될 위험도 크다. 이 질문은 성수동을 바라보는 시선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과연 이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넷째, 제도적 대응과 공동체 실험 서울시는 성수동 일대를 '도시재생 활성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다양한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성수연방, 언더스탠드에비뉴, 수제화 거리 등은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특히 소규모 장인들과 로컬 브랜드를 연결하는 프로젝트, 창의산업과 주민을 잇는 커뮤니티 기반 프로그램은 단순한 '외부 유입'을 넘어 '지역 기반의 재생'을 모색하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성수동의 이런 변화는 행정의 전략적 개입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 특히 성동구청은 ‘도시재생은 외관이 아니라 관계의 복원’이라는 철학 아래, 장인과 창작자, 로컬 브랜드를 연결하는 실험적 거버넌스를 시도했다. 단기적 개발보다 중장기적 자생력을 중시한 행정 리더십은 성수동을 단순한 상업화가 아닌 ‘지속 가능한 창의 도시’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성수동은 분명 서울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 중 하나다. 하지만 이곳이 진정한 의미의 '창조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물리적 공간의 다양성’, 즉 거대한 자본만이 아니라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플레이어가 공존할 수 있는 입체적 공간 구조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반의 지속성’, 즉 지역 주민과 창작자, 방문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문화적 관성이 축적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대역 일대다. 한때 ‘여성 패션의 메카’로 떠올랐던 이대역 주변은 단기 유행과 임대료 폭등, 정책적 지원의 부재로 급격히 쇠락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상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창업자조차 자리 잡지 못하는 ‘소비만 있는 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성수동도 같은 길을 피하기 위해선 반드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


첫째, 지역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철학이 필요하다. 이는 상징적인 간판 몇 개로 해결되지 않는다. 실제 거주민, 창작자,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이곳에서 삶을 꾸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민간 자율성과 공공 정책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관은 조율자 역할에 머무르되, 지역 기반의 생태계를 조직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셋째, 소비 중심의 유행이 아닌 ‘생활 중심의 문화’가 축적돼야 한다. 공간은 단순히 콘텐츠를 전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지역의 기억과 관계를 품은 일상의 터전이어야 한다.

앞으로 성수동은 단순한 유행지에서 벗어나 ‘서울이 실험할 수 있는 도시의 미래’를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고령화, 인구 감소, 지역 공동체 해체라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앞에서, 성수동은 ‘도시의 자생력’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물리적 재개발이 아니라 관계와 기억, 창작과 자립의 구조를 설계한다면, 성수동은 향후 10년간 ‘기술과 감성, 자본과 공동체’가 균형을 이루는 도시 생태계의 모범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제는 명확하다. '누가 이 공간을 만들고, 누가 이 공간을 지속시킬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공동체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성수동의 미래는 결국, 우리 도시가 어떤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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