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 숫자가 현실이 되는 순간
서울 강남, 청담동, 한남동. 부동산 기사에서 ‘200억 원’이라는 금액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몇 년 전만 해도 기사 제목에 쓰이면 클릭을 유도하는 과장이겠거니 여겼지만, 이제는 부동산 사이트에 평범하게 등장하는 숫자다. 그런데 200억 원은 단순한 고가가 아니다. 평균적인 직장인이 평생 벌 수 있는 금액을 훌쩍 넘는 돈이며, 웬만한 중소기업의 연매출과 맞먹는다. 그렇다면, 이 집을 사는 사람은 누구이고, 어떻게 사고, 왜 사고, 어떤 감정으로 사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그저 “돈 많은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산다”는 상식 이상을 들여다봐야 한다.
먼저, 이런 집을 사는 사람들은 국내 상위 0.001%에 속한다. 이들은 보통 상장기업 대주주, 글로벌 자산가, 연예인·스포츠 스타 같은 고소득 프리랜서 집단에 해당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다. ‘현금 유동성’이 크다는 것. 즉, 200억이라는 거액을 주택 한 채에 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사치로서의 공간을 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집은 자산의 일부, 삶의 전시장이자 정체성의 일종이다. 어떤 이는 “브랜드를 입는 게 아니라 거주한다”고 표현한다. 한남더힐이나 나인원한남,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같은 곳은 단순히 면적이나 인테리어를 파는 곳이 아니다. ‘같은 수준의 사람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이다.
그렇다면 이런 집은 어떤 방식으로 거래될까? 상식적인 ‘부동산 계약서’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법률·세무 전문가가 거래 전 단계부터 개입하며, 법인 명의, 가족 분산 명의, 신탁 활용 등 복잡한 소유 방식이 일반적이다. 대출은 거의 없다. 오히려 금융기관은 매수인을 ‘리스크 관리 대상’이 아닌 ‘관계 구축 대상’으로 본다. 거래 자체가 투자 전략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편입하는 것’이며, ‘사는 순간부터 오르는 자산’이 돼야 한다.
이처럼 고가 주택은 투자와 소비, 생활과 전시의 경계를 동시에 넘나든다. 고급 주택의 가치는 실내 마감재나 평수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조망, 프라이버시, 보안 같은 ‘비가시적 요소’가 핵심이다. 여기에 이웃의 사회적 수준, 출입 차량의 브랜드, 거실 창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전경은 가격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이 집은 ‘주거 공간’이라기보다는 ‘사회적 경험의 완성본’이다. 이 집을 산다는 건 “나는 더는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기 확신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감정이 동반된다. 이들이 이 집을 살 때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만족이 아니다. 불안, 방어, 조심스러움이 함께 존재한다. 매입 시기가 적절한지, 노출이 가져올 리스크는 없는지, 향후 매도 전략까지 고려하며 사고판다. 마치 예술작품이나 고급 와인처럼, 고가 주택은 사용하기보다는 ‘소유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만 접근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들은 자신이 ‘누릴 자격이 있다’는 믿음을 확인받는다. 이는 외부 과시가 아니라 내부 정당화에 가깝다.
결국, 200억짜리 집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산이 어떻게 삶을 구획하고, 취향이 어떻게 신분이 되며, 소비가 어떻게 언어 없이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보여주는 압축된 사례다.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돈이 어떤 방식으로 배분되고, 어디에 집중되며, 어떤 형태로 물질화되는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누가 공간에서 밀려나는지도 함께 물어야 한다.
200억 원짜리 집은 거울이다. 그 속에는 소수의 선택만이 아니라 다수의 불가능이 반사된다. 그 집을 누가, 어떻게,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를 따라가는 일은 곧 우리 사회가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수 있는가’를 되묻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결론이 있다. 이들 소수의 선택이 뉴스가 되고, 그 집값이 더 오를 것 같다는 예감이 우리에게 FOMO를 유발할 때, 한 걸음 물러서야 한다. 그 집은 우리를 위한 것도, 우리가 닮아야 할 미래도 아니다. 자산을 따라잡는 일보다, 자기 삶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 더 가치 있다. ‘200억 집이 오르니 지금이라도 사야 하나?’라는 질문보다, ‘애초에 집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를 먼저 물을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