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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story] 가까운 사람이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돈 문제는 곧 마음 문제다

by 매드본

인생에서 가장 난감한 순간 중 하나는 ‘믿고 있던 사람’에게 큰 금액의 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다. 그것도 갑자기. 평소 아무 문제없던 사이였고, 서로 신뢰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그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꿔놓는다. 거절하자니 마음이 무겁고, 들어주자니 불안하다. 만약 돈을 빌려주고 관계가 틀어지면 어떻게 하나? 안 빌려주고 멀어지면 또 어떡하지? 이런 고민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돈 문제는 단순한 금전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 책임, 기대, 손해에 대한 불안이 한데 얽혀 있다. 그래서 더 어렵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중요한 건 상대의 부탁이 아니라, 내 판단이다.


첫째, 돈을 빌려달라는 말은 신뢰의 표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너니까 부탁하는 거야”라는 말에 흔들린다. 하지만 그 말은 상황을 전가하는 수단일 수 있다. 오히려 진짜 신뢰하는 사이라면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돈이 급하다면 은행, 카드, 금융 상품 등 공식적인 채널이 먼저다. 이 모든 수단이 막혔다는 건 이미 문제가 복합하다는 뜻이다. 그 책임이 온전히 나에게 넘어오는 건 매우 위험하다. “가깝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는 말은, 엄밀히 말해 감정의 빚을 만들어 그 위에 금전의 부담을 얹는 것이다.


둘째, 돈을 빌리려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가장 큰 심리는 절박함이 아니라 '가장 쉽게 빌릴 수 있는 사람에게 먼저 요청한다'는 계산이다. 그들은 보통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거나, 거절하지 못할 성격이라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접근한다. 즉, 신뢰보다는 약점을 노리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어려운 사정인데 설마 네가 외면하겠어?”라는 식으로 도덕적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이때 감정적으로 휘말리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돈을 빌려달라는 요구는 ‘나를 이용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중요한 건 그 심리를 꿰뚫고, 내 결정에 감정을 얹지 않는 것이다.


셋째, 감정적 결정은 나중에 더 큰 상처를 만든다. 돈을 빌려줬는데 돌려받지 못하면 손해는 둘째치고 마음이 먼저 무너진다. “그 사람은 그러지 않을 거야”라는 기대는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관계란 믿음 위에 세워지는 것이지만, 돈 문제는 신뢰보다 관리다. 빌려주기로 결정했다면 그 자체를 계약으로 간주해야 한다. 구두 약속은 기록으로 남기고, 가능하다면 차용증을 작성해야 한다. 가까운 사이라고 해서 확인을 생략하는 순간, 그 관계는 부담으로 변질된다.


넷째, 거절은 파괴가 아니라 정리다. 우리는 종종 “거절하면 관계가 끝날까 봐”라는 불안에 휘둘린다. 하지만 진짜 관계는 돈을 기준으로 깨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관계라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거절은 싸움이 아니라 설명이다. “지금은 나도 여유가 없다”, “금전 문제는 원칙이 있다”는 식으로 내 입장을 명확히 하자. 상대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의 태도 문제다.


다섯째, 대안적 도움을 제시하라. 무작정 “안 돼”라고 말하면 상대는 단절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보나 조언, 다른 도움을 제시하면 관계는 이어진다. 예컨대 신용회복지원센터, 공공대출 정보, 지역 금융복지센터 등을 안내하거나, 돈 외의 방식으로 돕는 방안을 말해보자. 중요한 건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명확히 제시하는 일이다. 그 선을 넘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관계는 수직이 된다.


여섯째, 마음의 준비는 언제나 필요하다. 큰돈이 오가는 관계는 어느 쪽이든 부담이 남는다. 빌려주든, 거절하든, 언젠가는 불편한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하든 스스로의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나는 왜 이 결정을 내렸는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은 상대가 만들어내지만, 판단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애매한 태도가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든다.


가깝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함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돈은 인간관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예민한 주제다. 오히려 가장 가까운 사람과는 돈거래를 피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관계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거절한 건 아니다. 거절하는 것도 용기다. 빌려주는 것도 판단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은 들어주지 않는 것이 상대를 위한 길일 수도 있다. 나를 지키는 일은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 성숙한 책임이다. 가깝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돈을 빌려주든, 거절하든, 결국 중요한 건 그 뒤에 남는 나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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