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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story] 나 혼자만 남을 것 같아 두려운데..

손절의 유혹과 고립의 공포 사이

by 매드본

요즘 시대를 관통하는 관계 키워드는 ‘손절’이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불쾌하면 “그냥 끊어”라는 말이 당연한 듯 따라붙는다.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본능이자,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손절을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묻게 된다. “내 곁에 누가 남았지?”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동료도 모두가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렇다면 그 불편함이 생길 때마다 다 끊어내는 것이 해답일까? 아니면, 참고 이어가는 것이 맞을까? 이 글은 그 딜레마를 풀기 위한 탐색이다.


첫째,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를 정리한다는 건 감정에 모든 결정을 맡긴다는 뜻이다. 물론 감정은 무시할 수 없는 신호다. 하지만 그 신호가 무조건 ‘끊어야 한다’는 판단으로 이어지는 건 위험하다.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성과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어떤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도 하고, 대화를 통해 해결되기도 한다. 감정이 곧 결론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갈등을 배우지 못하고 회피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둘째, 손절은 종종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립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관계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 어색하게 맞춰가는 과정이다. 그 안엔 오해도 있고, 실수도 있고, 피로도 있다. 그런 감정을 한 번도 통과하지 못한 관계는 얇고 가볍다. 너무 쉽게 끊는 습관이 들면, 나중엔 어떤 갈등도 버티기 어려워진다. 결국 스스로 외톨이가 되는 셈이다. 중요한 건 무작정 참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끊는 것도 아니다. 관계는 ‘유지냐 단절이냐’가 아니라 ‘어디까지 견디고, 어디서 끊을 것인가’의 문제다.


셋째, 손절의 기준을 감정이 아닌 ‘관계의 질’로 바꾸자. 나를 반복적으로 무시하거나, 악의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손절이 아니라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실수 하나, 말투 하나 때문에 관계를 끊는다면, 그건 나 역시 타인에게 엄격하다는 뜻이다. 내가 타인에게 바라는 관용만큼, 나도 관계에 유연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라, 반복이다. 불편함이 지속되고 고의성이 있다면 멀어질 이유는 충분하다. 하지만 단발적 충돌이라면 되묻는 용기, 표현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넷째, 두려움을 인정하되, 길들이자. “모두 끊고 나면 나만 남을까 봐”라는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혼자라는 감각에 쉽게 흔들린다. 이 감정은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감정이다. 외로움이 두려워 관계를 끌고 가면 결국 더 깊은 상처를 입게 된다. 반대로, 상처받기 싫어 모든 관계를 닫으면 애초에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감정을 관리한다는 건, 그 감정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머무르면서도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다섯째, 관계의 밀도는 숫자가 아니라 신뢰로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과 적당히 얽혀 있는 것보다, 몇 명과 깊은 신뢰를 나누는 것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손절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손절을 선택할 때, 내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지키려는지를 분명히 아는 것이다. 관계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선택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늘 책임이 따른다.


여섯째, 그렇다면 손절하고 ‘나랑 딱 맞는 사람들’하고만 지내면 될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완전히 맞는 사람’이라는 건 환상에 가깝다. 취향이 같고, 유머가 통하고, 가치관도 비슷하더라도 언젠가는 갈등이 생긴다. 인간은 변하고, 상황도 바뀌기 때문이다. 오히려 너무 닮은 사람들끼리는 미묘한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맞지 않는 사람과도 부딪히지 않고 지내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다. 사회는 협상의 연속이다. 내 기준에 꼭 들어맞는 사람만 남기겠다는 태도는 결국 내 세계를 좁히는 결과로 이어진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애매한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분명 기분은 나쁘지만, 그렇다고 바로 끊어버릴 자신도 없다. 그 애매함이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그 애매한 구간에서 이뤄진다.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손절은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쉬운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를 주는 건 아니다. 반대로, 버티는 것도 무조건 미덕은 아니다. 중요한 건 기준이다. 내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무엇을 감당할 수 있고 무엇은 참을 수 없는지. 그 기준이 선명해질 때, 우리는 끊을 수도 있고, 견딜 수도 있다. 손절은 도망이 아니다. 그러나 남는 것 없이 끊는 건 스스로를 지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관계는 끊는 기술과 버티는 용기의 조합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엔 나의 태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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