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부
좀비 세상
얼마 전, 텔레비젼에서 좀비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화면 속 좀비들이 서로를 물며 달려드는 모습,
붉게 번진 눈과 피범벅이 된 갈라진 입술.
감염되지 않은 인간을 사정없이 물어 뜯는 장면들이
내 심장 안에서 진동을 남겼다.
인간의 욕망과 공포, 서로를 향한 차가운 계산이
현실속 사람들의 움직임과 겹쳐져 보였다.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무심코 지나치는 시선 속에서 서로를 밀어내고,
어쩌면 나 역시 마음 한켠에는
"그래, 나도 살아남아야지." 라는 작은 계산을 갖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내가 왜 이런 욕망에 흔들렸는자,
이런 욕망이 왜 내 안에 스며들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욕망이 내 마음을 잠식하도록 두지 않고,
내 안의 온도와 리듬을 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도 남을 눌러서 얻는 안락보다
나 자신에게 친절한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세상이 흉포하게 돌아가도, 나는 내 안에서 작은
균열과 파동을 읽으며, 그 속에서 나만의 중심을
지켜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다
세상에는 스쳐 지나가면 놓치기 쉬운 틈들이 있다.
가느다란 햇살이 바닥에 흘러내린 골목,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벤치 위,
누군가 서성이다 남긴 흔적들 사이에서,
마음 깊은 곳이 살짝 흔들린다.
그곳에서 나는, 아직 채워지지 않은 상처와
마주한다. 상처는 눈에 드러나지 않아도, 속삭이듯
나를 흔들어 댄다.
과거의 기억이 갑자기 몰려올 때,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고, 머릿속은 흐린 연기처럼
뒤엉킨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순간에도 숨을 고르게 하는
틈이 있다.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다는 것은, 아직 마음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다.
빈자리를 들여다볼 때, 놓쳐버린 순간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들을 억지로 붙잡지 않아도 된다.
있는 그대로 느끼고, 지나가도록 허락하는 것만으로,
상처는 나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 뒤에 잔잔히 피어난 꽃잎처럼,
마음도 서서히 숨을 내쉰다.
결국, 상처를 함께 걷는 법을 배우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지켜보는
것과 닮았다.
비틀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며,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아물지 않은 상처를 보듬는다는 것은,
내 안의 틈을 이해하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손을
내미는 가장 섬세한 연습이다.
행복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행복은 늘 손에 닿을 듯 멀리 있다.
가까워 보이면 사라지고, 사라졌다고 여길 때,
다시 다가온다.
마치 불빛을 따라가다보면, 그림자에 가려지고
등을 돌리면 발치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촛불 같다.
그래서 행복은 쟁취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억지로 찾지 않을 때, 소리없이 다가오는
새벽빛과 같다.
우리는 그 새벽빛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더 화려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를
몰아붙이지만, 그럴수록 애써 붙잡은 행복은
모래처럼 흘러 사라진다.
진짜 행복은 애쓰지 않아도 찾아오는 것.
이름 없는 들꽃처럼, 때로는 무심히 열린 창가의
바람처럼.
스쳐가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행복은 성취가 아니라 발견이고,
경쟁이 아니라 흐름이다.
멈추고 서는 순간 또렷이 다가오는 존재이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우리는 이미 행복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