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부
오래된 그림자와 화해하며
가끔은 어둠이 깊게 따라붙는 날이 있다.
아무리 걸음을 재촉하고 등을 돌려도,
그림자는 결국 나와 함께였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괴로워, 나는 애써
외면하며 지나쳐왔다.
하지만, 외면할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져
내 발목을 잡았다.
오래된 상처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안에 남아 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그림자이야말로 나를 오늘까지 버티게
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쓰라린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는 단단함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운다.
"그래. 너도 내 일부였지."
낮은 목소리로 내뱉는 순간, 그림자는 더 이상
두려움의 존재가 아니었다.
외면하고 부정할수록 커져만 가던 어둠이,
인정하는 순간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제는 함께 걸어가려 한다.
내 삶의 뒤편에 드리운 과거를 억지로 밀어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나를 지켜온 힘을 본다.
그리고 마침내, 오래된 그림자와도 온전히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를 안아주는 법
"괜찮아."
이 말을 누군가 내게 해주길 오래도록 기다렸다.
밤늦도록 잠 못 이루던 날, 혼자 감당해야 했던
무수한 상처들이 깊게 패여 들어갔다.
누군가 내 앞에 나타나 괜찮다며 나를 안아주길
바랬지만,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제야 알았다. 나를 일으켜 세울 사람은,
나를 온전히 안아줄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거울 속 얼굴은 늘 무심했다.
지독한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날에도,
세상 모든 외로움을 끌어안고,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나는 나를 외면했다.
내 안에서 흐느끼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고통을 외면할수록 쓸쓸함은 더 깊어졌고,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더 크게 곪아갔다.
나는 나를 방치한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멈춰 서서 거울 속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하루 버티느라 정말 수고했어."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해."
이 짧은 언어가 이상하게도 눈시울을 무겁게 만들었다.
내가 나를 안아주지 못한 세월이 얼마나 깊었는지,
얼마나 많은 외로움 속에 홀로 방치되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스스로에게조차 따뜻한 위로 한 번 건네지 못한 채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는 천천히 배워보려 한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법.
작고 사소한 기쁨에도 고맙다고 인사하는 법.
퉁퉁 부은 마음에 약을 바르듯, 내가 나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는 법.
그렇게 나를 안아주는 연습을 하다 보면, 세상이 내 편이 아니어도 괜찮을지 모른다.
내가 내 편이면, 그것으로 충분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