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부
나선형 계단을 오르다
내가 몰랐던 나선형 계단은 빛과 어둠이 번갈아
드나드는 곳이었다. 처음 발을 디뎠을 때, 눈부신 빛이
길을 안내하는 듯했지만, 조금만 더 오르면 어김없이
그림자가 길을 가로막았다.
나는 종종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던 기억이 있다.
오르지 않으면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발만 내디뎠다.
그때 나는 주변의 계단을 보지 못했다. 그저 발밑의 계단만 보던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나는 지나쳤던 길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지.
계단을 오를수록 바람의 방향도 달라졌다.
아래쪽에서 불어오던 따뜻한 바람은 위로 올라올수록
차가워졌다. 바람의 감촉은 내가 다른 위치에 있음을
말해주었다. 똑같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매 순간 다른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반복되는 삶의 무대에서 매번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그 감정을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어두운 구간을 지날 때였다. 삐걱거리는 계단의
틈새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 빛은 나에게 방향을 안내하는 빛이 아니었다.
그저 그곳에 묵묵히 존재하고 있었다.
이 계단은 단지 내가 지나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길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이제 나는 그 계단을 마저 오른다.
이제는 바람의 방향을 느끼고 빛과 어둠이 드는 구간을
모두 받아들인다. 예측할 수 없는 바람의 방향까지도
내 것으로 품는다.
나선형 계단은 목적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내가
스스로 계단을 오르는 과정이 의미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여전히 방향을 잃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들이 곧 나의 삶의 방향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