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걷는 날들의 온기

58부

by 김대희

잊은 줄 알았는데, 잊지 못했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 다 잊힐 줄 알았다.

그 사람과의 마지막 기억도, 손을 놓았던 그 순간의

아릿함도 다 과거 속에 묻힌 줄 알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채워가는 것에 익숙해져서 정말

잊은 줄 알았다.


어느 비 오는 날 오후, 우연히 길을 걷다 꽃집 앞에 놓인

노란 프리지어를 보았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라는 꽃말이 보였다.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사동 거리에서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주던 그녀의

어정쩡한 걸음걸이, 열이 나 하루 종일 잠든 내 이마에 묻은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기던 손길,

심야 연극을 보고 나오던 녹녹한 공기,

언제나 함께 하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입술.

나는 단 한 번도 그 사람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저 마음속에 묻어두고 외면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이 기억들이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마치 다 나았다고 여겼던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잊지 못할 기억들 때문에 나는 주저앉고 싶을 때, 버티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만큼 깊고 잊을 수 없는 사랑을 했다는 증거였고,

다시없을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그 기억들을 애써 밀어내지 않는다.

잊지 못한 채로, 다시 한번 누군가에게 이토록 뜨거운

마음을 내어줄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그 사람과의

추억만큼 깊은 사랑을 시작할 용기를 내기를.


얼마 전, 그녀의 소식이 들려왔다.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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