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아래서, 다시 태어나는 사랑
“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대학생 때였을까
어쩌면 더 어릴 때였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서툴렀고
언제나 단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칭찬보다는 충고가 먼저였고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어릴 땐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는 늘 불안해야 하는지.
왜 따뜻한 말 한마디 없이 견뎌야 하는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아버지도 어떤 그늘 아래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고모들에게 들은 이야기 속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지키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명절이면 고모들은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를 이해하라고.
초등학생 때부터 가정 폭력 속에서
할머니를 감싸야했던 아버지.
그가 술을 멀리했던 이유도,
늘 현실을 걱정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자신도 알코올에 취해
가정을 무너뜨리는 사람이 될까 봐
자신도 연약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 아버지가 나는 답답했다.
무뚝뚝한 말투도, 불안과 짜증이 섞인 얼굴도.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서른이 넘고 보니
문득 내 안에서 아버지가 보일 때가 있다.
불안할 때마다 짜증을 내는 모습,
걱정이 많아지는 모습,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서툰 모습까지.
나는 아버지가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했던
할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것처럼
나 또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도, 나도.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가 받은 사랑을 돌아본다.
비록 투박하고 서툴렀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진심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처럼 살 것이다.
그렇기에 다정한 사랑을 가르쳐 줄 것이다.
무뚝뚝함이 아니라 따뜻한 말로
칭찬으로
그리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방법으로.
아버지가 내게 주었던 진심 어린 사랑과
그가 주지 못했던 다정한 사랑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