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가끔 해외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답답한 일상이 지속될 때면 미지의 세계 어딘가에 내가 찾는 낙원이 있을 것 같았다. 성인이 되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1차 시험에 뜻밖의 실패를 경험했을 때, 혹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나는 문득 산속에서 스님이 되거나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가 되는 상상을 했다.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조금은 자유로워질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떠나면 좋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나는 해외로 나가 새로운 환경을 경험해 보기도 했고, 속세와 연을 끊으면 마음이 편해질까 싶어 한 달간 템플스테이를 하며 조용한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심리학, 뇌과학, 철학 책을 읽으며 인간의 마음과 변화에 대해 고민했다. 하지만 떠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은 잠시 위안을 주었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도망친 곳에서 우리는 달라질 수 있을까
책과 경험, 그리고 주변의 조언을 종합해 보니 결국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였다. 신경과학에서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개념을 통해 인간의 뇌가 경험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어려움을 피하기만 한다면 뇌는 변화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비슷한 패턴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도망친 곳에서 잠시 안도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결국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어려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침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도망침이 단순한 회피로 끝나는지 아니면 새로운 배움과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는지다. 우리의 뇌는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기에, 우리가 새로운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도망친 곳이 낙원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지옥이 될 수도 있다.
낙원은 ‘장소’가 아니라 ‘시각’에서 만들어진다
이와 관련된 개념으로 인지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가 있다. 이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같은 상황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을 때 나는 단순히 실패한 경험으로 남을 수도 있었지만 다시 도전할 기회로 삼았다. 만약 신부나 스님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관을 찾기 위한 선택이 되었을 것이다.
도망친 곳이 낙원이 되려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단순히 외부 조건이 달라졌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관점을 바꾼다면 같은 장소에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낙원은 내가 만드는 것
템플스테이를 하면서 한 스님께 들은 말이 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에 있든 주인이 되면, 그곳이 곧 진리의 세계가 된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한 체념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때 비로소 평온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각자의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본다. 같은 장소라도 어떤 이는 기회의 땅이라 여기고, 어떤 이는 감옥처럼 느낀다. 장소 자체가 본질적인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낙원을 외부에서 찾으려 하면 우리는 끝없는 도망 속에서도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하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환경을 바꾸어나간다면 낙원은 결국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 는 말을 듣고 어차피 어디서든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이 말의 진짜 의미는 다르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피하기만 하면 결국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뿐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망침이 새로운 성찰과 성장의 기회가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도망침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결국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도망침이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이 되는가이다. 때로는 도망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디를 가든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도망쳐도 괜찮다. 하지만 그 도망침이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낙원은 특정한 장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