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나는 오이를 싫어했다.
아니, 싫어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오이를 혐오한다.
오이를 보면 도망쳤고
냄새만 맡아도 표정이 구겨졌다.
우리 집 식탁에는 가끔
초록빛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고,
엄마는 내 입에 오이를 넣어보겠다며
갖은 전략을 동원했다.
“이건 그냥 수분 덩어리야. 맛도 없어.”
“그럼 먹을 이유가 없잖아.”
논리로 맞서려 했지만
엄마는 논리보다 힘이 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이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엄마는 “그래? 그럼 나가서 살아. “라는
무시무시한 판결을 내렸다.
겨울이었다.
나는 내복 차림으로 문 앞에 섰고
차가운 공기가 내 얇은 팔을 감쌌다.
하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떳떳했다.
차라리 얼어 죽을지언정 오이를 먹을 수는 없었다.
결국 몇 시간이 흘러 엄마가 문을 열어주었고,
나는 승리한 듯 집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식탁 위에는 여전히 오이가 있었고
내 접시 위에는 더욱 큼지막한
오이 뭉치들이 올려졌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다.
스스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아무도 내게 오이를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냉면, 김밥, 냉국 등
항상 오이가 들어간 음식을 피해야 했고,
샌드위치를 사기 전에 성분표를 확인해야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오이를 좋아한다며
내 앞에서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저게 가능하다고?
어느 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오이를 싫어하는 게 이렇게까지
삶에 영향을 줘야 할까?”
한 입만 먹어볼까?
혹시 입맛이 변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용기를 내어 오이를 씹었다. 그리고…
아, 아니다. 여전히 최악이다.
나는 확신했다.
오이는 내게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피해야 할 재앙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지옥에 간다면,
거긴 분명 오이 지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