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 순간 선택한다.
커피를 마실지 차를 마실지,
엘리베이터를 탈지 계단을 이용할지.
대부분의 선택은 사소하다.
하지만 어떤 선택은 우리의 존재를 뒤흔든다.
트롤리 딜레마는 오래된 철학적 사고 실험이다.
폭주하는 트롤리, 선로 위에 묶인 다섯 명,
그리고 선로를 바꾸면 희생될 단 한 명.
단순한 숫자의 비교라면 정답은 명확해 보인다.
다섯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까?
그러나 질문이 바뀌면 고민도 달라진다.
만약 희생될 그 한 명이 내 가족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이르면 “옳음”과 “그름”이
단순한 도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단편 영화 ’Most‘에서
한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면서
기차 탑승객들을 살린다.
만약 우리가 그의 입장이라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도 우리가 정말로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닌다.
트롤리 딜레마는 숫자의 논리로 보이지만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한 명보다 다섯 명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가 참이라면 우리는 멀쩡한 사람을
희생시켜 장기를 나누어줄 수도 있어야 한다.
네 명의 위대한 인물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의 건강한 이를 희생하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가?
넷플릭스 영화 ’ 나의 마더‘에서 인공지능은
주인공에게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네가 살린 사람이
나중에 더 큰 해악을 끼친다면?”
숫자로 판단하는 공리주의는
여기서 벽에 부딪힌다.
단순한 셈법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있다. 인간의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작은 선택들로 이루어진 삶을 살아간다.
일상의 선택들은 트롤리 딜레마처럼
명확하지 않지만
우리는 늘 비슷한 고민 속에서 살아간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혹은 친구와의 갈등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레버를 쥔 채 서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가 선로를 바꾸든,
가만히 서 있든,
그 선택을 하고 난 뒤에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선택은 정당한 이유가 있어도
죄책감을 남기고,
어떤 선택은 아무리 논리적으로 맞아 보여도
찝찝한 감정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옳은 선택이란 무엇일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선택이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트롤리 딜레마가 단순히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라는
더 큰 질문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단순히 더 많은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사회를 운영해야 하는가?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이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선로 위에 서 있다.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끌어안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트롤리 딜레마의 본질은
“무엇이 옳은가? “
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 “
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선택의 순간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삶은 계속 흘러가고
우리는 그 선택 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때때로
그 자체로 충분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