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죽는 중입니다.

by 은하수 물류센터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
이 말은 무섭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기도 한다.
누구도 예외 없이 끝을 맞이한다는 당연한 사실은

때때로 삶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한다.
죽음을 말하면 분위기가 가라앉고
영정 사진을 준비하는 건 불길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언젠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어쩌면 인간만이 가진 고귀한 비극일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말 그대로 참인 명제다.

누구에게나 정해진 운명이고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

어떤 죽음은 갑작스럽고
어떤 죽음은 아주 천천히 오래 걸린다.
나는 그중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큰 병이나 사고가 아니라면
나는 매일 아주 조금씩 죽어갈 것이다.


의식은 멀쩡하고 몸도 움직이지만
시간은 말없이 안쪽을 파먹는다.
지나간 선택들, 사라진 기회들,
다신 돌아오지 않는 얼굴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조금씩 소모시킨다.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생의 총량은 줄어든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
그래서 어떤 날은 무기력하고
어떤 날은 두려움에 싸인다.
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밤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어난다.
출근하고, 아이를 돌보고, 누군가를 안는다.
일정표대로 움직이고, 지시에 맞춰 일하고,
루틴한 저녁을 먹고, 그냥 다시 잔다.
덧없음을 알면서도 삶을 이어가는 이 모든 행위는
실은 죽음에 대한 가장 조용하고 품위 있는 반항일지도 모른다.


삶이란 무대다.
어차피 막이 내릴 것이기에
지금의 대사 한 줄 한 동작이 더 절실하다.
죽음을 안다는 것은 몰락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몰락을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삶을 깊이 껴안고 있다는 뜻이다.


죽는다는 사실이 삶을 초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덧없음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지금 이 순간의 커피 한 잔이 귀하고
눈부신 봄 햇살이 따뜻하며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을 알기에
지금 이 모든 것이 그 무엇보다 소중해진다.

누구도 이 운명을 바꿀 수 없다면
이 운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나아가 이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듯 살아내는 것
그게 인간에게 주어진 품위 아닐까.


나는 오늘도 조금씩 죽는 중이다.
그러나 동시에 조금씩 사랑하고 있다.
내려가면서도, 건너가며도,
하루하루를 끝까지 살아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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