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반 고흐처럼 살 수 있는가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by 은하수 물류센터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라는 질문은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에서 비롯된 유명한 논의다. 밀은 공리주의 철학에서 쾌락에도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쾌락보다는, 정신적이고 지적인 쾌락이 더 고귀하고 가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겼다. 즉, 지적이고 도덕적인 만족감이 육체적 쾌락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라는 뜻이다. 밀의 철학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 반고흐는 그의 철학에 아주 부합하는 인물이다. 고흐가 물질적 안락보다는 예술적 충족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갔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두에게 바람직한 선택이란 것은 아니다. 각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삶의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예술

고흐는 일생 동안 불행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궁핍했으며, 그의 예술은 생전에는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흐의 작품 활동은 우울증과 정신적 고뇌를 겪으면서 그림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그림에 매달렸고, 그 결과로 현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동양의 이름 모를 청년 또한 아는 작품을 남겼으나 그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가치가 인정받지 못한 채, 궁핍하고 외로운 삶을 마감했다.


죽음 후의 명성과 행복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이 죽은 후에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철학적이며 동시에 심리적인 질문을 하고자 한다. 인간은 대개 자신이 존재하는 동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한다. 죽음 이후의 명성과 명예는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는 의문부호이다.

반 고흐가 자신의 삶에서 겪었던 고통은 그가 죽은 후의 명성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예술적 열정은 오히려 그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다. 만약 그가 자신의 작품이 죽음 후에 인정받을 것임을 알았더라도, 그것이 그가 겪었던 고통을 상쇄하거나 그에게 위안을 주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사실 닥터 후 에서 비슷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곳에서는 반 고흐가 굉장히 감동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삶의 선택과 책임

그러나 이 논의를 통해 단지 반 고흐처럼 살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밀의 철학이 그렇듯, 삶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다. 반 고흐의 삶이 위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바람직한 선택일 수는 없다. 또한,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라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그 선택이 자신의 가치관에 맞고, 그 선택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삶은 의미 있는 삶이 될 수 있다. 반 고흐는 그의 예술을 위해 고통을 감내했고, 그의 작품은 그 고통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책임을 지고,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삶이든, 배부른 돼지의 삶이든 상관없이, 그 길이 옳은 길이 될 것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수처작주"는 "어디에 있든지 주인이 돼라"는 뜻이고, "입처개진"은 "서 있는 그곳이 모두 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그 상황 속에서 진리를 깨닫는다는 뜻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사상이 그렇듯, 지적인 충족과 도덕적 만족감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물질적 안락함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그 길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그 삶은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결국 고흐는 그의 고통스러운 삶을 완전히 인식하면서도, 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그의 행복은 그의 고통을 넘어서 예술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데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가 고통 속에서라도 순간의 행복을 느꼈으리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가 그 순간들을 진정으로 누렸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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