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거대한 것들이 좋았다. 철학, 과학, 인류, 논리와 이성 같은 단어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마치 그런 것들을 탐구하는 것이 삶의 본질을 꿰뚫는 길인 줄 알았다. 커다란 꿈을 꾸고 담대한 목표를 세우며 언젠가는 세상을 바꿀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시답잖은 것들이 좋아진다. 아니, 시답잖은 것들이야말로 나를 지탱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침착맨을 좋아한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좋다. 방송을 보고 있으면 별것 아닌 대화들 속에서 묘한 위안을 얻는다. 하루를 지탱하는 건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그런 가벼운 순간들이다. 자격증 수험기간 동안도 그랬다.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무거운 책을 넘기면서도, 내가 기다린 건 짧은 휴식 시간에 보던 침착맨의 영상이었다. 그 몇 분의 시덥잖음이 없었다면,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우리는 종종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마치 영화 속 클라이맥스처럼 거창할 거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수험이 끝나도, 입사가 결정돼도, 뭔가를 이뤄내도, 생각보다 특별한 감흥은 없다. 오히려 나를 지탱하는 건 소소한 것들이다. 따뜻한 차 한 잔,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쓸데없는 농담, 괜찮은 향초를 발견했을 때의 작은 기쁨.
삶은 결국 거대한 의미를 좇다가도 결국 시답잖은 속에서 숨을 돌리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시답잖은 것들이 좋다. 그리고 아마 그게 진짜 삶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