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실 결혼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원래 사랑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어제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 글을 먼저 썼어야만 했던 것이다. 결혼은 반드시 사랑을 전제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결혼은 말 그대로 계약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계약에 지나지 않는 결혼이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남녀가 만나서 호르몬 작용으로 3년 간 서로를 탐닉하고 그리워 하다가 결혼을 하면 식어버리는 생물학의 장난?
사랑을 요즘은 뇌과학이나 생물학적으로도 설명을 하고, 심리학적으로 설명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그런 과학적 설명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설사 그러한 이론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그들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정작 사랑이라는 고귀한 개념을 너무 객관화하고, 대상화해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이 호르몬의 작용이든, 뇌의 착각이든, 과거의 상처에 대한 보상이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 사랑은 의지다. 다만, 마땅히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대상에게 그것을 주겠다는 결심이자 의지인 것이다. 잘못된 대상에게 잘못된 의지를 들이는 것 또한 진정한 사랑은 아니다. 지속가능하지가 않고, 자기사랑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금 더 정리를 하자면, 마땅한 대상에게 마땅한 의지를 들여 사랑하겠노라는 결심과 노력. 그것이 진정한 사랑으로 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고, 그 의지를 통해 부단히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어렵다. 한 번의 성공이 진정한 성공이 아니고, 한 번의 실패가 진정한 실패가 아니다. 끊이없이 노력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실패했더라도, 다시 노력하고, 끈이 놓아질 것 같더라도 절대 놓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그걸 나 혼자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방도 함께 이 어려운 길을 마땅히 가겠노라 결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노라 이를 악물고 손을 놓지 않아야만 하는 것이다. 나 혼자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어려운 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게, 이게 쉽지가 않다보니 실패하고, 상처받고, 지쳐버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그 다음 순간, 성공했다고 믿었던 사람들도 고꾸라지고 마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보니, 결국은 성공이 성공이 아닌 것처럼 보이고, 주변에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인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봐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사랑은 없다'라고...
사랑은 그저 철부지 어린 애들의 장난 같은 것이라고...
혹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믿는 신기루에 불과하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를 하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서로가 원하는 걸 주고 받고 헤어지기로 한 것이다. 때로는 조금 지저분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냥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혼자 살기가 두려워졌을 때 만난 사람과 좀 더 장기 계약을 맺기로 한다.
대신, 언제 헤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혹은, 나는 절대 이 계약에서 손해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혹은, 설사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반대편의 보상을 받기 위해, 계약의 상대와 계약의 조건을 차갑게 따져본다. 그리고 누군가 그걸 욕하면 '결혼은 현실'이라는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이는 말로 스무스하게 넘어간다.
그리고는 사랑의 결실인지, 계약의 성립인지 모를 결혼식을 올린다.
상대방의 조건을 따지는 건 사랑에 대한 냉소가 아니라 성숙한 현실주의가 되고, 내가 꿈꾸는 판타지와 욕망은 끝 간 데를 모르고 높아져만 간다.
그러다 보니 이게 양자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는 계산이 서는 순간!!
더 이상 이 손해보는 장사를 누구도 원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내가 왜?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내가 왜 시어머니한테 죄송하다고 해야 해? 내가 왜 장모님한테 고개를 숙여야 해? 내가 왜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해야 해? 내가 왜 추석에 음식을 만들어야 해? 내가 왜 처가에 용돈을 드려야 해? 내가 왜 애를 낳아야 해? 내가 왜 애를 낳고 내 커리어를 희생해야 해? 내가 왜 결혼하는 데 집을 해와야 해? 내가 왜 결혼하는 데 3천만원을 준비해야 해? 내가 왜? 내가 왜?
내가 왜 이런 손해보는 일을 해야해? 도대체 왜? 그냥 안 하고 말지. 혼자 살면 이 꼴 저 꼴 안 보고 속 편한데...
내 분석이 틀렸나? 나는 내가 제대로 봤다고 생각한다. 이게 가장 핵심이고 본질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부동산이 비싸서? 노동 구조의 부조리 때문에? 경력 단절 때문에? 개인주의의 확산 때문에? 독재적 가부장제 때문에? 여자가 손해보는 문화라서? 남자가 손해보는 제도라서? 모두 다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원인이지, 본질이 되는 원인이 아니다.
결국 본질은 그냥 사랑에 대한 불신과 냉소 이 하나로 귀결된다.
나는 이 냉소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참 불편하다. 때로는 화가 난다. 사랑에 대한 냉소가 도대체 언제부터 '어른스러움'이 된 것일까. 정작 그 냉소는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것을...
사랑은 어렵다. 혼자 잘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그걸 내가 아닌 누군가와 합을 맞춰서 함께 잘해야 하다보니 삐끗하기 십상이다. 지난 몇 년 간 아무리 잘 해 왔어도, 오늘이나 내일 순식간에 공 든 탑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도 있다. 쌓기는 무지하게 어려운데,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다.
마땅한 사람을 찾는 것을, 그리고 그 사람에게 평생 끝까지 진정한 사랑을 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끝끝내 실천하기 위해 죽을 힘을 다 해 노력하는 것을...
그냥 섹스어필 되는 사람이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그냥 정서적이고 지적인 유대만 가능해서도 안된다.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포기해선 안되고, 끝까지 손을 놓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내 손을 놓지 말아달라고 끝끝내 제안해야 한다.
서로 기대하기를 포기해서는 안되고, 상대방의 기대가 무너지도록 방치해서도 안된다. 서로 조금씩 기대를 포기 할 때마다, 조금씩 사랑에 대해 냉소하게 된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소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또 내가 발전하기를 멈춰서도 안된다. 사람은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나 스스로 그러해야 하고, 상대방 또한 그러할 것을 기대해야 한다.
부디 내가 이 삶을 이렇게 끝까지 살아내기를 기도하며,
부디 이 세상이 이러한 사랑을 꿈꾸길 기도한다.
그 누구도 사랑 앞에서 오만 할 수가 없다.
오직 사랑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사랑을 할 수 있다. 오만한 누구도 결코 사랑 할 수 없다.
사랑은 있다. 많은 사람이 그걸 이미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랑을 믿는 시대가 다시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