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사랑하는 거 맞아?
엄마들은 아들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무얼 생각하는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어디서부터 그런 생각이 생겨난 건지, 생각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엄마들은 하나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들이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최민준의 아들 TV 같은 걸 보면 엄마의 생각과 아들의 생각이 어떻게 극명하게 갈리는지 명쾌하게 설명해주는데, 정말이지 엄마들이 아들들을 얼마나 모르는지 그 괴리만큼이나 최민준 선생님의 설명이 너무나도 명쾌하게 들린다.
지금은 이런 유튜브 채널이라도 있지, 예전에는 그런 것도 없었고, 심지어 학교 교육 시스템에 남자아이들은 맞지 않다, 학교 교육 시스템은 여자아이들에게 최적화 되어 있다, 뭐 이런 담론 같은 거 자체가 아예 없었던 시절이다. 여자 선생님들이 남자아이들을 이해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엄마들이 아들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아이들 중에는 엄마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잘 듣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런 애들은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좀 샌님 같은 취급을 받거나 왕따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가 딸을 가르치듯이 아들을 가르치고, 아들이 그걸 곧이곧대로 실천하면, 그게 기집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말투가 여자 같다기 보다는, 뭐랄까, 좀, 유치원 선생님이 가르치는 언어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달까, 한 마디로 쿨하지 못해 보이는 특징이 있었다.
그 만큼 남자아이들은 다르다. 정말 다르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걸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때로는 그러한 괴리가 극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나는 아빠가 없다시피 했다. 우리 집은 아빠의 저주가 3대째 내려오는 집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내 증조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고, 그 유산을 친척들이 맡아뒀었는데, 할아버지가 커서 그 유산을 돌려달라고 하자 유산은 커녕 땡전 한 푼 없이 집성촌에서 쫓겨났고, 막노동을 하다가 역시나 할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리고 아빠는 그 아픔을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받은 기억 때문이었는지, 집에를 안 들어오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친구들이랑 밤새 술 마시고, 포커치느라 집에를 안 들어왔다. 내가 분석하건대, 아마도 어릴 때 친구들에게 위로를 얻은 기억과 홍콩느와르 영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정보다는 친구를 중요시 하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걸 찐따 취급하는 영웅본색, 첩혈쌍웅, 특히, 도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홍콩영화식 우정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한부모 가정에 준하는 삶을 살았다. 아빠가 있는데 없다고 봐도 무방한, 뭐, 그런 삶이었다.
그래서, 아빠가 없는 집에서 엄마와 나는 허구헌날 싸워댔다. 열 두 살 이후로 나는 엄마의 부당함, 엄마의 잘못, 엄마의 억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해댔고, 엄마는 아빠 없는 호로자식처럼 엄마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불합리성(한 마디로 불합리라고 퉁쳤지만, 거기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었다)에 분노했고, 엄마는 불합리고 나발이고 부모의 권위를 내세웠지만, 내가 보기에는 독재에 지나지 않았다. 큰삼촌이 중재를 한답시고 매번 나섰지만, 말이 중재지, 중재가 아니라 그냥 엄마말씀 잘 들으라는 말을 조리있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혈기 넘치는 나는 부당함을 참을 수가 없었고, 내가 말하는 부당함이 어른들의 귀에는 들어가질 않았다. 귀에 내 말의 내용이 들어가기 전에 50년대생 아저씨 아줌마들의 눈에는 어린 놈의 새끼가 싸가지 없게 대드는 태도가 그냥 문제일 뿐이었다.
엄마와의 갈등은 좁혀지긴 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서로의 논지가 서로의 귀에 들어갈리가 없었다. 나는 잘못을 인정하고 부당함이나 불합리함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진정한 권위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엄마는 그냥 호로자식이 엄마를 무시한다고만 생각했다. 큰삼촌은 그냥 불쌍한 우리 여동생을 누가 울려 이 O씨 집안 인간들 하나같이 인간이 덜 됐어. 이거였고.
그렇게 10대,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30대... 결국은 연락도 끊고, 얼굴 안 보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몇 년 정도를 지냈다. 항상 마음 속에 울분이 있었다. 왜 엄마는 날 이렇게 대하나. 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아들한테 이럴 수가 있나. 도저히 용서가 안됐다. 어떻게 저렇게 자존심이 중요할까. 어떻게 저렇게 아들의 마음은 눈꼽만큼도 알아 줄 마음이 없는 걸까...
그 사이 나는 재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아이를 가지면서 생각했다. 아이에게 어떻게 이 관계를 설명해야 할 지......
결국 아이를 낳는 날,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아이를 낳았다고.
그리고, 다시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어머니와 나는 완전히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그 어떠한 계기는... 이 이야기의 메세지를 흐릴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야기 하지 않도록 하겠다.
다만, 내가 먼저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나는 사랑받고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도저히 나는 엄마의 진심을 확인 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 중시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자존심, 돈, 자기 자신...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엄마가 나보다 저것들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재확인 할 뿐이었다. 그래서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지,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 엄마가 선택하는 것은 나였구나... 라는 것을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걸 알고 싶어서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가 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지막의 마지막에 엄마가 선택하는 것은 정말 나였다... 그 차가운 엄마가... 나를 선택하는구나...
엄마들은 아들들을 모른다. 그래서 관계가 어그러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것이다.
아들들은 아무리 엄마가 미워도, 아무리 엄마가 증오스러워도, 저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엄마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그저 알고 싶을 뿐이라는 것이다.
왜냐면... 아들들은 끝끝내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닌 것처럼 보여도... 아무리 엄마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가 않다... 아들들은 끝끝내 엄마를 사랑한다...... 그래서 엄마가 날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