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선택했는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설날'이라는 명절이 되면 온가족이 둘러 앉아 떡국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또 한 살을 먹었네"라고 웃으며 말한다.
이 한국의 고유한 풍습은 단순하게 숫자 개념에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으니 그 나이 값에 맞는 생각과 행동을 해야함을 함축적으로 재인식시시킨다. 그리고는 실제 삶에 적용시켜 실천하며 한 해를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미성숙된 자녀들에게 명절 밥상에 온식구들이 둘러 앉아서 먹는 떡국 한 그릇이 인간이 갖춰야 하는 덕목으로 몸과 머리에 새겨저 변환하는 과정이 잠재적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한 의도된 환경을 만들어주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왜 내가 'Single life'를 선택한 것과 새해에 떡국 한 그릇을 먹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슨 상광관계가 있나 싶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깊숙이 들여다보면 연결고리가 있다. 단지 우리가 미쳐 그 관계성에 대해 깨닫지 못했을뿐이지 우리의 삶 속에서 무수히 많이 반복되고 지속되는 일에 대한 행동들이 실제로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우리는 생애주기별이라는 인간의 발달 혹은 성장단계에 따른 시간적 흐름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올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동시에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 전인적 인간이자 구성원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개인,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장시기에 적합한 교육 및 다양한 주변환경 등에 노출되고 수동적 혹은 능동적으로 참여하며 경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부모,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것들을 주입(input)시키고 이는 아이들에 따라 수동적 또는 능동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자신의 생각과 행동으로 표출(output)하는 과정을 무수히 많이 겪으며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가정과 학교의 의도적 계획에 따라 경험하고 성장하고 또 경험하고 성장하는 과정 속에 숨을 쉴 수 있는 쉼표가 필요한데 어쩌면 그 숨 쉬는 구간이 설날에 온가족이 둘러 앉아 떡국 한 그릇을 먹는 순간이 아닐까까. 그 찰나의 시간에 자신이 표출(output)했던 무수히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성찰할 수 있기때문에 말이다.
그렇다 '그 찰나의 시간'이 관계성을 연결해주는 고리이다. 매해 그 찰나의 순간에 집중했고 자기성찰 혹은 자기반성을 통해 나는 어떠한 사람인지가 명확해지면서 나의 삶의 궤도를 설정할 수 있는 밀도 높은 순간임을 알아차렸다. 나의 삶의 궤도가 허황된 이상주의자의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어느 누구도 인생의 결과를 당장 알수도 예측할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나의 삶의 궤도 안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것들이 결과물로 창조되는 것보다 나의 시도와 실패가 반복되는 과정이 겹겹이 쌓이면서 나에게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쥐어주는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화려하고 성공한 삶이 어떤 누군가에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지만 나에게는 이상주의자의 상상 속에 그려진 것들을 실제로 실현되는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전하게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 것이고 또 그렇게 살아가야하는 삶이 의미있으니 말이다. 그 찰나의 시간들이 쌓였고 그 사이에 생긴 틈들이 인지된 자유로움으로 변환하였고, 이는 "진짜 나의 삶을 무엇인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이라는 심연 속 질문에 찾은 답이 싱글의 라이프이다. 즉 온전한 자기주도적 일상을 지속가능하게 보내며 살아가는 삶이다.
어쩌면 내가 말하고 있는 이러한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수도 있고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만의 온전한 삶에 대한 기준만 제대로 설정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그 기준을 탐색하고 설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의 기준에 따른 나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이러한 삶을 시도해보는 것도 꽤 괜찮다. 나 역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고 타인의 삶을 따라가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질수록 나를 가리고 있던 커튼이 겉히고 그 뒤에 서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튼에 가려져 있던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 그 순간부터 불필요한 수많은 가지의 선택지가 단순해 질테니까 말이다. 누구에게나 있을 '그 찰나의 순간'을 잘 발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