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설명할 때 혹은 스스로 자신을 규정지을 때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는 한 단어나 문장을 의도적 찾아 활용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설명을 더할 필요 없이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끼 말이다.
‘나는 이상주의자이다’라는 이 한 문장이 나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굳이 1에서 10까지 나열하듯이 나에 대한 정보를 주절주절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상주의' 개념과 이것이 정의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교육을 받으며 자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 문장으로 나의 성격, 성향, 가치관, 사고방식 등 나를 존재하게 하는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함축적으로 정리해 버린다.
그렇다면 ‘Why? 나는 나를 이렇게 규정짓게 되었는가’이다. 딱히 어떤 시점이나 시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나'를 깊숙하게 들여다보고 매 순간마다 선택하는 것들이 나에 부여하는 가치나 의미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싶다. 사고를 통한 성찰을 실제적 행동으로 변환하는 그 순간말이다.
기존의 틀에 머물러있지 않고 새로운 것들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실불가능한 것들을 현실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긍정적 이상주의자를 동경했다.
나에게 ‘이상‘ vs ’ 현실’ 중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면, 나는 무조건 ‘이상’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 더 나은 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행하는 선택들, 자신의 선택에 의해 존재하게 되는 것들 등 이러한 것들에 집중하며 자신의 자아를 살찌우고 성장시키는 것도 좋지만 나는 현실의 틀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상상하고 그 상상을 마치 현실화되는 것처럼 상상으로 만들어보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상‘이 ’ 현실‘이 될 수 있게 실현시키는 경험에 대한 쾌감이 훨씬 더 나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현실에서 동일한 기준에 따라 제시된 것들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명명하는 ‘나는 이상주의자이다’라는 핵심문장을 등에 새기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앞을 나아가고 있는 삶을 선택했다. 나에게 한 번만 주어진 삶을 나의 자발적 선택으로 삶 자체가 빛나고 충만하게 발현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삶의 깊이를 만들어주고 또한 그 깊이가 나에게 나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