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라임 타임' 리뷰
나는 테러 관련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던 일상에 테러가 일어남으로써 쑥대밭이 되고 긴박함과 긴장감에 휩싸인 사람들에 몰입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관객들의 심장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질 때쯤 뻥하고 터지는 폭발 장면들이나 테러범과 협상가의 줄다리기 한판은 내 두 눈에 흥미를 가득 채웠다. 이런 나를 위해 넷플릭스에서 인질 스릴러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기대감을 품고 영화를 재생하게 되었다.
개봉 날짜: 2021
장르: 스릴러
국가: 폴란드
감독: 야쿠프 피 옹 데크
주연: 바르토시 비엘 리니아
줄거리
1999년 폴란드, 걱정과 새로움이 가득한 새천년을 맞기 하루 전 날 방송국에 총을 든 남자가 진행자를 인질로 삼아 자신을 생방송에 내보내 줄 것을 요구한다. 이로써 발생하는 갈등과 사건을 중심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빠른 템포로 테러범이 어떻게 방송국을 접수하는지를 보여준다. 시작한 지 5분 만에 테러범은 두 사람을 인질로 잡고 불안정한 그의 눈동자에 집중하게 한다.
영화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을 보고 나는 테러범과의 협상 그리고 그 속에서의 치밀한 기싸움을 중심으로 전개되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영화가 끝나는 순간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나는 영화가 끝나기 10분 전까지도 치밀한 협상을 하겠지 라는 기대감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영화를 보았지만 그런 내 희망은 저 멀리 우측 담장으로 넘겨버렸다.
영화는 분명히 테러 또는 인질을 주제로 하는 스릴러 영화이다. 그렇다면 이런 장르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협상가와 테러범의 치밀한 협상 즉 기싸움이다. 협상가가 어떠한 방식으로 테러범의 귀에 사실 같은 거짓말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중점으로 보면서 영화 속 두 주인공의 줄다리기를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는 것이다.
세밀하고 촘촘한 유도신문과 회유로 테러범을 어떻게 잡아넣는지 협상가의 달변을 보며 경탄을 금치 못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런 영화는 많은 상징과 플롯들을 알차게 집어넣어야 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는 협상가라기보다는 애원가라고 봐야 할 정도이다. 협상가라는 사람은 테러범을 가엾게 여기고 있고 주도권을 뺏고 뺏기는 싸움이 아닌 계속해서 말로 주위를 환기시키고 그를 제압하려는 미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두 번째로는 테러범이 얼마나 미친 사람인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이 장르영화의 두 번째 재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테러범을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착하디 착한 소년을 데려다 놓고 연극을 펼친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테러범을 착하고 순수하게 묘사해놓았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테러범이 제압되는 장면을 슬로 모션을 걸어서 비참하고 길게 보여주는데, 이를 보며 그제야 나는 영화의 메시지를 언뜻 눈치챌 수 있었다.
영화 속 새천년을 준비하는 방송국은 파티를 하거나 행복한 모습의 중산층만을 보여주면서 빈곤층이나 약자들의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이에 착하지만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인 소년을 앞세워 여기를 좀 봐달라며 테러라는 이름으로 소리친다
그러나 경찰과 방송국은 그를 속이려 하고 제압할 생각뿐, 그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는 것을 강조한다.
이를 보며 영화는 협상을 주제로 한 사회 고발 및 풍자영화를 만들려 했다는 시도를 알아챘다.
내 생각엔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약자의 말을 들어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엔 테러범의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앞에서 암시와 복선은 잔뜩 깔아놓고서 결국엔 보여주지 않는 답답함에 영화의 메시지와도 이해관계가 멀어진다.
감독은 이제껏 나왔던 테러와 협상에 대한 영화가 수도 없이 찍혀 나온 것을 의식한 탓인지 약자의 편에 선답시고 이제껏 클리셰를 모두 포기하고 힘을 주다가 그만 똥을 싸버렸다.
테러범이 인질범 두 명을 잡게 되는데 한 명은 잘 나가는 진행자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방송국 관계자이다. 진행자는 계속해서 도망치려 하지만 방송국 관계자는 그런 테러범에게 연민과 공감을 느끼는 듯한 행동과 표정을 보여주는데, 나중에는 테러범과 이 인질범이 동일시되는 듯한 장면들이 나온다.
하지만 관객들은 테러범의 사연도 모르고 이 관계자가 처자식이 없는 것 외에는 정보가 없음을 이유로 들어 우리는 이 둘에 전혀 공감과 암시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인질범이 미래의 테러범이 될 것이라는 열린 결말 같은 교차 장면도 그만 비웃음이 날 정도였다.
영화는 결국 메시지 전달에 실패한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테러를 일으키지 말고 테러범의 일상이나 그 이유들에 대해 깊게 보여주고 그의 정체를 일찍이 밝혀주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를 모두 포기한 채 메시지에 집중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한 영화 '프라임 타임'의 평점은 2.2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