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 엠 샘' 리뷰
영화를 리뷰하기 전 나는 사실 넷플릭스 신작 블러드 레드 스카이를 감상하고 리뷰를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너무나도 실망적이었고, 스토리와 결말은 예고편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가능할 정도이다. '불치병 걸린 엄마가 자식 살리려고 병이랑 싸우다가 희생하는 신파겠지'라고 되뇌며 또 똑같은 망작 리뷰를 하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난 더 이상 넷플릭스 신작은 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런 내 눈을 정화해줄 또 다른 부모 영화를 찾다 내가 어릴 적 좋은 기억을 간직한 채 감상했던 영화를 하나 보기로 했다. 바로 아이 엠 샘이다.
개봉 날짜: 2002.10.18
장르: 드라마
국가: 미국
감독: 제니 넬스
출연: 숀 펜, 미셸 파이퍼, 다코타 패닝
평점: 7.6점 (IMDB 기준)
줄거리
어느 날, 샘은 딸을 버리고 간 여자로 인해 루시와 단둘만 살게 된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가며 고된 육아를 하는 샘은 루시를 키우며 살아가던 중 어느 순간 7살이 된 루시는 지체 장애인이던 샘보다 지능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며 아빠보다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를 안 복지국은 샘의 양육권을 박탈하려 하고 둘은 헤어질 위기에 처한다.
아이 앰 샘이라는 영화는 살면서 본 영화 중에 가장 많이 운 영화이다. 지체 장애를 둔 아버지와 딸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는 어떤 영화의 이야기를 견주어보아도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우리는 아버지와 딸이 그저 복지국과 싸움을 벌이는 재판 드라마로만 영화를 감상하고 있지 않는다. 사회적 편견과 맞서 싸우는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이다. 과연 딸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아버지가 양육을 도맡을 수 있을까라는 사회의 걱정 어리면서도 냉정한 시선은 아픈 곳을 콕콕 찌르며 그 틈으로 냉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사회의 모습에서 어딘가 의아했던 점이 하나 발생했었다. '아이와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한 부모와 아이 간의 관계를 끊어놓으면서까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선사해주려 하는 사회의 모습이 과연 옳기만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점을 샘의 변호사 리타를 보여주면서 궁금증을 해소시켜준다. 리타는 고급아파트에 살면서 자신의 아들을 양육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사회도 그런 그녀를 인정해준다.
그러나 리타의 아들은 결핍을 느끼고 엇나가기만 할 뿐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들의 끼니와 스케줄은 다른 이에게 모두 전념해버린 채 사랑의 울타리에서 방치해버린다. 아무리 부모라는 이름으로 능력이 있어도 그 책임감과 사랑이 없다면 과연 아이가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느냐라는 영화의 날카로운 지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화는 부모가 아이를 위한 완벽한 양육이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사랑과 유대만이 있다고 해서 또는 아이를 부양할 능력만이 있다고 해서 자녀를 완벽하게 키울 순 없다고 말이다.
아이는 태어나서 언제나 봐온 사람은 부모이기에 그들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부모는 그런 아이에게서 의무적인 책임감이 따른다.
직업과 집 사이 수많은 갈등 속에 아이에게 사랑만을 주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에 부모도 완벽하지 못한다.
그러나 완벽한 부모는 존재할 수 없지만 좋은 부모는 존재한다. 영화 속 대사가 이를 확고히 명시해준다.
좋은 부모란 한결같아야 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해요.
또 더 이상 듣기 싫어도 귀 기울이는 척을 할 줄 알아야 해요.
책임감과 자녀에 대한 사랑만 있다면 아이를 키울 자격이 있다. 부모가 자녀보다 지능이 어린 장애를 겪고 있어도 말이다.
이렇듯 루시를 사랑하는 샘을 영화는 섬세하게 그를 어루만져준다. 다시 말해 그에 대해 입체적으로 설명하며 구석구석 보여준다. 샘은 뉴욕의 스타벅스의 직원으로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에겐 자신 이외에 누구보다도 딸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친구들이 있고, 세상에게서 외롭다고 느낄 땐 자신만의 벽을 만들어 강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면 속상해하고 화도 내는 그는 일반인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일반인들도 그를 같은 사람처럼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이 앰 샘을 모티브로 만든 우리나라 영화 '7번 방의 선물'의 주인공 용구의 모습을 살펴보자. 내 생각은 영화 속에서의 그를 그저 평면적인 인물로만 묘사하였다. (물론 7번 방의 선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누가 때려도 억울한 일을 당해도 맞고만 있고, 누군가 모욕적인 말을 해도 웃고만 있는 그저 바보로만 비친다. 바보로만 보이는 용구를 보며 관객들은 당연히 그에게 우려와 동정심만 느끼게 되고 절대로 그를 우리와 동등한 존재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느끼기로는 용구는 그저 클라이맥스의 신파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아이 엠 샘을 본 관객들이라면 지체 장애를 가진 분들을 보고 일반인과 같은 감정을 느낄 때 '7번 방의 선물'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그들을 보며 동정심을 느낄 것이다.
이렇듯 샘을 그저 스토리 전개와 신파의 수단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에 영화의 수준을 한층 더 높이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게 화도 내고 즐거움도 느끼면서 누구보다도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 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처럼 딸을 안고 입을 벌리며 뛰어다니는 순수한 모습이어도 딸을 부여잡은 두 손에는 사랑과 책임감만이 느껴진다.
괜찮아, 아빠 미안해하지 마 나는 운이 좋아 딴 아빠들은 공원에 같이 안 가
내가 이 영화를 14살 적에 처음으로 보았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 감명에 젖어있는 나에게 아버지가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아빠가 너희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겠지?"라며 장난 스래 물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도 보고 난 후에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모라는 존재는 누구보다도 나를 아껴준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느낀 나임에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를 그릇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속에는 언제나 모자란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모자란 부분을 사랑으로 채워주는 샘의 모습을 보며 진정한 부모의 의미를 느끼게 만든 영화 '아이 앰 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