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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말 많다 Jul 31. 2021

더 헌트: 나약함은 때론 진실을 왜곡한다

영화 '더 헌트' 리뷰

친구의 추천으로 더 헌트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번 영화 리뷰는 특히 내 경험이나 후일담이 많을 계획이다.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이고 시원하게 털어내고 싶어서이다.


더 헌트

개봉 날짜: 2013.01.24

장르: 드라마

국가: 덴마크

감독: 토마스 빈터 배 르그

주연: 매즈 미켈슨


​​


줄거리

이혼 후 고향에서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 루카스는 어느 날 자신의 원생인 클라라라는 아이의 보장되지 않은 거짓말을 통해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상처 받는 마녀사냥의 이야기이다.

​​​


#나약함은 때론 진실을 왜곡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평은 한마디로 설명될 것이다. 미치고 팔짝 뛰겠다는 표현 말이다. 정말 영화를 보고 있자면 모니터를 부숴버리고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암울하다.


클라라라는 여자 아이는 집안의 불화로 인해 약간의 편집증적인 증세를 보이는 사회적 약자이다. 하지만 이런 약자의 말이 물증이 없어도 심증으로 무시무시한 후폭풍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화가 났다. 순수한 소녀의 말에 검은색 물감 같은 거짓이 첨가되니 그 말은 검은색으로 물들어 진실을 가려버렸다.

영화 속 루카스의 억울하고 결백한 말들은 이미 일반화되어버린 군중들의 시선에 모든 것이 차단되어버린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세상의 악마를 만들어버린 채 그에게 돌을 던진다.

관객들은 루카스의 시선에서 영화를 시작하고 전개되니 우리는 이미 루카스의 결백을 알고 있지만 영화 속 루카스는 아동 성폭행자가 되어 있었다.

루카스의 힘 빠진 어깨와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분노와 답답함을 느끼며 주인공에 동화되어 응원하게 된다. ​


그러나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루카스에게 돌을 던지는 군중들을 가리키고 있다. 그 시발점은 손바닥보다도 작은 한 소녀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지만 거짓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불러오고 주변의 인물들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악마는 악마를 만든다

사람의 심리 속에는 은연중에 악마가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악마를 때리고 욕하며 상처를 주는 행위를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자신이 선인이 되었다는 착각에 황홀해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술렁이면 정확한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따라 움직이는 군중심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색안경을 끼운 채 더 많은 돌들이 날아온다. 그렇게 마녀사냥이란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최근 여러 매체를 접하고 소식을 듣게 되면 가끔 사람들이 프레임과 여론에 대한 인식의 무서움을 잊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 많은 비제이들이나 유튜버 또는 연예인들의 사건사고들로 인한 주변의 반응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 비제이가 모 유흥업소에서 성매매를 했고, 사기를 쳤고 이런 일들이 많은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고 입에 오르내린다.

이에 사람들은 당사자에게 별명을 지어주거나 욕을 하며 검은색 여론이 형성되고 진실은 상관없이 악플이 달린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 속에서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같은 선전지들과 루머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공유하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린 검은색 물결은 모든 사람들의 눈을 가려버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그 사람은 악마다.라는 사실이 기정사실이 된다.


이런 현상은 영악한 사람들이 무서우면서도 그 사실에 흥분하는 나 자신에게도 놀랐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다. 학창 시절 나는 타 학교와 조금은 다른 기숙사 생활을 했었다. 기숙사 생활이 처음이던 나는 그런 학교에 만족하며 지냈지만 나는 양심의 가책이 담긴 독배를 마신 사건이 있었다. ​


내 실수도 아니었고 내가 저지른 악행이었다. 과제를 하던 중, 컴퓨터의 고장으로 20페이지가 넘는 과제가 날아가버렸다.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고 내 머릿속엔 좋지 못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친구의 과제를 복사해 내가 한 것처럼 제출했다. 그에게 말도 없이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여전히 수치스러운 치부와 같다. 같은 동기들의 상처도 씻을 수 없듯이 몇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죄책감은 지울 수 없다.​


이 사건으로 많은 친구들이 내게 실망하게 되었고, 등을 돌렸다. 내 잘못에 자책하며 몇 주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어느 순간 아니 그 순간부터 내 주변엔 누구도 없었다. 그러나 점차 사그라들 줄 알았던 불길은 어느새 걷잡을 수 없이 커져있었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인과관계나 진실 여부 상관없이 나의 안 좋은 소문만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소문과 루머는 기숙사의 모든 아이들에게서 떠돌게 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하지 않은 일들도 내가 한 것이 되었고, 말도 안 되는 찌라시들조차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기숙사에서 나는 악마가 되었다. 누구도 내게 다가오려 하지 않았고, 친구들은 자기 옆에 앉는 것도 말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꺼려했다.

어느 날은 한 친구가 진지한 얼굴로 조용히 내게 내뱉었다. 더 이상은 내게 말 걸지 말고 다가오지도 마라고 말이다. 그 날밤 모든 것이 무너졌고 베개에 얼굴을 묻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으로 내겐 심한 우울증과 약간의 공황장애를 겪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내 위축된 모든 행동에 신중을 가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의 본모습을 알아주는 친구들이 생겼고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모든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내게 손을 내밀어주었고 말을 걸고 장난까지 쳤다.

암흑의 길을 걷고 있던 나에겐 한줄기의 빛과 같은 존재였고, 그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우울증은 점차 사라지고 살아가면서 일주일에 웃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


그 친구들은 내게 SSAB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고 그게 현재 내 영화 블로그의 주소가 되었다. 내게 색안경을 벗고 다가와주는 친구들이 생겨나니 내 본모습과 실제 사건들을 대변해주는 친구들이 생겼고,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감사하게도 내게 좋은 여론이 생기게 되었다.

나를 피했던 모든 아이들은 색안경을 벗고 내게 다가와주었다. 나는 이런 친구들을 잊지 않기 위해 일기를 썼고, 그 속에는 내가 그날 감사했던 일들을 적으며 친구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고맙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고 마녀사냥만 당했다는 것이 아니다. 내겐 분명한 잘못이 있었고 그 잘못은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소문과 루머에 써진 프레임은 날카로운 칼날보다도 위험하다는 것이다.

프레임에 묻힌 친구들도 사실 여론의 형성에 휩쓸린 경우가 많다. 그 파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위험하고 이를 알기에 타인에게 함부로 잣대를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난 이야기할 때 타인의 이야기는 굳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 무서움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


요즘에 유튜브에 사건사고를 일으킨 공인들을 소개하는 채널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유튜버 비제이 연예인이 주 콘텐츠를 이루는 이런 채널들은 그들의 악행과 안 좋은 사건들만을 조명시키며 과녁을 조준시키고 있다.


사람들에게 프레임을 씌우기 딱 좋은 이런 채널들은 반대로 그들의 실수나 악행들만 조명시켜 동영상을 업로드를 해봐야 안다. 자신들이 씌운 프레임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말이다.


여론에 휩쓸려 가는 이들을 더욱 부추기는 행위는 여론의 역할을 변색시키기만 한다.

나도 어쩌면 또 다른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을 되돌아보며 여론과 프레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영화도 그런 군중들과 여론에 집중하며 마지막 결말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루카스에게 총을 쏘며 마무리된다. 누구도 그에게 직접적으로 총을 쏘진 않지만 총알은 날아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다시 한번 여론과 프레임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더 헌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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