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수밖에 없었던 원조 조커

아메리칸 사이코 리뷰

by 정말 많다




2000년에 개봉해 메리 해론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크리스천 베일, 자레드 레토, 윌렘 대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입니다.

개봉날짜: 2000.11.25

장르: 범죄

국가: 미국, 캐나다

감독:메리 헤론

주연: 크리스찬 베일




줄거리

영화의 내용은 미국의 금융가의 CEO 패트릭 베이트만의 사이코적인 면을 감추고 살지만 자신보다 고급진 명함을 가진 동료 폴을 살인한 것으로 시작해서 그의 사이코적인 면이 하나둘씩 드러나는 내용이다.


연출

이 영화는 처음 보았을 때 2000년대라고는 믿기지 않는 1970년, 80년대 같은 배경음악과 분위기로 영화를 감싸 무거운 듯 가벼운 분위기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를 따라한 흥미로운 연출로 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살인 장면이나 어두운 집을 들어가는 장면 등등 사이코가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주인공 베이트만역은 영화'사이코'에서의 살인마 역할의 '노먼 베이츠'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화 중반 그의 살인 장면에서 베이트만이 폴을 죽일 때 피가 튀면서 그의 얼굴 반쪽을 가려버린다. 이후 다음 장면에는 피가 묻지 않은 얼굴을 보여주며 후련한 표정의 주인공을 비추는데 이는 사실, 영화에서 얼굴의 반 쪽만 보여주는 연출 요소는 이중인격자, 또는 평소 보지 못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자 할 때 많이 사용한다.

이와 유사하게 봉준호의 영화 '마더'에서 원빈이 엄마에게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대사를 했을 당시 원빈은 옆모습만 보여주고 있다가 화면의 정면을 바라보고 손으로 얼굴을 반쪽 가리는 행위를 한다. 이 당시 봉준호 감독도 주인공 원빈의 모습에서 다른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렇게 연출한 것이다.


베이트만에게 피가 튀겨 얼굴의 반을 가린 후 화면에서 보여주는 깨끗한 옆모습 뒤엔 그의 어두운 피칠갑이 된 얼굴은 아수라 백작이 떠오르기도 한다. 베이트만은 물론 이중인격자는 아니다. 정상인의 마스크를 쓰고 그저 자신의 어두운 모습을 숨기려고만 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이코패스이죠.


이런 완벽주의 사이코패스 역을 맡은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크리스천 베일의 원맨쇼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습니다. 평단은 베일의 연기를 보고 '연기하는 기계'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크리스천 베일에게 아메리칸 사이코로 할리우드에서 그의 연기를 인정받게 된 첫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이 영화는 처음에 보면 내재된 살인자를 꺼내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사이코 영화인 듯하지만 영화를 유심히 보니 이 영화는 그저 이중적인 모습의 사람이 살인을 벌이는 스릴러 영화가 아닙니다. 베이트만을 통해 인간의 본 모를 보여주려는 다크 코미디 영화입니다.


미국의 전형적인 상류층 젊은이의 모습을 지닌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외형적인 모습만을 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베이트만은 남들과 같은 올백머리와 동료들과 사소한 명함 하나하나까지도 신경을 쓰며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죠. 하지만, 사실 그들만의 경쟁일 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 베이트만은 겉으로는 육체, 피부, 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그의 내면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었죠. 그의 친구들과 말하는 것도 깊은 얘기가 아닌 해봤자 시답지 않은 얘기, 옷 얘기 , 그리고 명함 얘기 등등 외적인 부분에서만 이야기가 겉돕니다.


영화 속 인물들과 우리들의 모습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과정이 아닌 성과를 먼저 보려 하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다 비싼 명품 더 근사한 사진을 뽐내고 관심을 갈구합니다. 하지만 외면의 갈증해소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은 감추고 멀어져야만 합니다.


그런 그도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게 갈구해왔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외면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 관심을 받고 싶은 베이트만은 살인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그들에게 관심을 갈구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면의 끔찍한 살인마를 만들었습니다.


베이트만은 내재된 자아를 감추려 스트레스를 받고, 살인 욕구가 그를 감쌉니다.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던 자신의 내면 즉 살인마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타인이 관심이 있는 것은 그저, 그의 여행가방 같은 외면적인 모습일 뿐, 그가 무엇을 하든, 어떤 짓을 저지르던 상관없습니다.

전기톱을 들은 벌거벗은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달리는데도, 말이죠.


영화의 결말은 어떤 해석

이 영화의 결말은 우선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먼저 첫 번째로는 베이트만이 보여준 모든 살인 행각들이 그의 엽기적인 상상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지만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처리하는 과정(시체 가방을 끌고 가는데 피가 새고 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경비원, 살인을 하고서 택시에 실는 과정에서 그의 친구에게 들켰지만 안의 내용물은 보려 하지 않고 그저 밖의 여행가방이나 궁금해하는 장면, 노숙자를 죽였는데도 경찰차는 멈추었지만 그냥 가는 장면, 변호사에게 말해보았지만 그의 고백을 믿지 않는 그의 변호사 등등)이나, 아님 자신의 살인 행각을 고백하는 데도 믿지도 않고 평소처럼 대화하는 이상한 사람들 그를 훈계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사이코패스가 아닌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사이코패스인 것처럼 말이죠.


두 번째는 베이츠만이 보여준 살인행각은 모두 사실이고 그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그의 외적인 지위, 부, 명예 등만을 보고 설마 그랬겠어 라며 그의 말을 안 믿는다는 해석이죠.


베이트만이 노숙자를 찌르고 거리를 벗어나는 장면에서 경찰차가 중간에 멈춰 섰다가 그냥 가버립니다. 누가 봐도 수상한 걸음걸이와 눈빛의 베이트만을 그냥 보내는 것으로 그 당시의 도덕성에 해이해진 시대와 그의 외형적인 모습들로 판단해버리는 사회를 풍자하고 잇죠. 하지만 그의 내면을 보려 하지 않고 그의 외면만에 포커스가 맞춰진 그의 친구들과 동료, 비서들에 비유하며 깊이 있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장면들과 개연성이 부족해지는 이유로 가능성이 조금 낮은 해석입니다.


정리

이 영화에선 남의 외적인 부분만 신경 쓰는 그들, 명함조차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는 그들, 월급은 받으면서 낱말 풀이나 여비서의 옷 추천해주는 시답지 않은 말을 하는 한심한 모습의 그들을 보여주며 그 당시 1980년대 미국 상류층의 젊은이들 소위 말해 여피족들을 신랄하게 풍자합니다.


그렇게 그들 사이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베이트만이죠. 아메리카, 즉 미국에서 탄생한 사이코란 뜻인 겁니다. 이런 악의 굴레에 빠진 현실에 사이코들은 음지가 아닌 우리의 곁에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영화는 베이트만뿐 아니라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에 빠져있던 모든 사람들이 사이코라고 말합니다.

예전엔 큼지막한 사랑 우정 같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좋아했다면, 정말 작은 것 하나에도 판단되는 시대에 작은 것 하나하나 신경을 쓰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이 살인을 저지르던 뭘 하던 신경 쓰지 않는 모습들을 과장되게 표현하며 요즘 세상의 개인주의자들도 풍자합니다.

우리에게 그 당시 여피족들을 통해 현재 우리들에게 경각심과 동시에 우스움을 주는 블랙코미디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평점은 3.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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