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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oana Nov 26. 2024

2학년 2학기 학과 생활

나름 성공적이었던 1학기 생활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나는 이번엔 토익을 정복해 보겠노라며 지금도 사실상 바이블 격인 해커스 책으로 첫 토익시험에 입문했다. 처음 본 시험 점수는 시발(아... 아니), 신발 사이즈에 가까운 400점대 언저리가 나와 나를 무척 당황케 했던 기억이 난다.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차근 차근 진도를 끌어 올렸지만 이상하게 점수는 늘 제자리였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600점대를 맞았을 뿐 방학 내내 목표로 했던 토익의 정복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버렸다. 


허무하게 날려버린 여름방학을 뒤로하고 2학년 2학기를 맞았다. 생계는 기존에 했던 청소 도우미 20만원과 남아있던 잔고로 힘겹게 생활을 이어 나갔다. 추가 알바를 하지 않은 이유는 교내 활동 때문이었다. 2학기부터 시작한 전공 동아리 생활은 내가 추가 알바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경험보다 값질 것이라 예상했기에 과감히 포기해 버렸다. 


다양한 학과에서 모인 전공(무역) 동아리인 일명 G-Tep 활동은 나에게 큰 삶의 활력소를 가져다 주었고 개인주의가 강했음에도 동아리 선후배들은 모두 정을 붙일만한 사람들이었다. 무려 '무역협회'에서 주관한다는 장점 때문에 이 동아리는 우리들에게 꽤나 끈끈한 소속감을 안겨주었다. 이를 통해 1년간 우리는 해외 국가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기회도 잡을 수 있었고 다양한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취업에 필요한 대외활동을 착실히 밞아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이 활동 덕분에 중국에도 처음 가보고 국내외 전시회에 참여도 해보면서 전공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바쁜 학과 일정과 달리 내 삶은 이 때 부터 어둠의 징조가 조금씩 드리워져 갔다. 엄마 아빠의 관계가 점차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목표로 했던 토익에서 자꾸 어긋나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기 때문이다. 특히 토익은 진짜 아구창이 있다면 몇 대는 갈기고 싶을 만큼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해도 해도 오르지 않는 점수 때문에 고작 700점 한 번을 넘기기가 두려워 자괴감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귓구멍을 파고 싶었고 문법은 모조리 씹어 먹고 싶었으며 지문은 몇 분이 주워지던 그냥 속 시원히 한 번 해석해 보고 싶었다. 늘 모자란 시간 때문에 아쉬워하고 강사의 촌철독설은 내 마음 구석을 쿡쿡 찌르며 자존감마저 여러 번 잃게 만들었다. 덕분에 이 시절의 일기장에는 당시의 우울한 심정이 표출되었고 썩은 감정 표현이 여기저기 남발되었다. 주변에 연애하고 사랑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을 참 많이 느꼈다(당시 썸을 타던 여자애와도 흐지부지 끝났다..). 영어공부, 금융·주식 공부(종잣돈 한 푼 없으면서..)를 하는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 다지만 스멀 스멀 온몸에서 풍기는 찌질향은 인생의 못남을 조롱하듯 보였다. 


그럼에도 웃긴 건 이런 와중에도 대학교에서 가요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무턱 대고 예선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진 모르겠다. 그냥 여기도 한 번 나가보면서 상처를 받고 싶었나 보다. 당시 MC THE MAX의 '그대는 눈물겹다'를 열창하며 세상의 울분을 쏟아냈는데 더 가관인 건, 거기서도 가사를 까먹어 머뭇 머뭇 거렸다는 점이다. 결국 1절도 소화하지 못해 탈락. 제목대로 참 눈물겨운 모습이었다. 


참..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나를 돌이켜 보니, 왜 이렇게 불쌍해 보이냐.. 잘했어 임마!! 오구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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