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꽤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일단 친구들과 떨어져 있는 동네에 살아 늘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서 였다. 집에는 과학전집과 위인전집 말고는 딱히 놀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 형제라곤 모두 누나 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려 그렇게 내 독서 인생은 시작 되었다.
컴퓨터는 6학년 때 처음 생겼으니 그 전까진 친구들과 노는 것 외에 늘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읽은 책은 주로 우리나라 역사, 또는 세계사 책들 이었다. 이는 아무래도 위인전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집에 굴러다니는 약 100여 권에 달하는 국내외 위인들의 업적을 탐독하며 착실히 기초를 쌓은 덕분이다. '악성 베토벤', '뉴 프론티어의 기수(케네디)', '농부의 화가(밀레)', '세균의 아버지(파스퇴르)' 등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위인전 소개글이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는 본격 도서위원이 되어 교내외 도서실을 관장하게 되었다. 방과 후는 3년 내내 독서부였고 점심 시간에는 게임을 하든 친구들과 놀든 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담이지만 이때 도서반장으로서 책의 대출/반납을 관리했는데 나는 늘 연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든 빌려서 기간은 한정 짓지 않았다. 연체가 되면 그냥 지웠다. 지금에서 고백하자면 이렇게 해서 꼬불친 책이 아마 몇 십권은 된 것 같다(반성하겠습니다..).
어렸을 때 관심분야는 역사와 더불어 우주 분야였다. 과학자들의 전기를 읽으며 아인슈타인, 뉴튼(전기에는 '만뉴인력의 아버지'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뭐만 하면 죄다 xx의 아버지였네!) 같은 인물을 접할 수 있었고 그러다 '칼 세이건', '스티븐 호킹' 등도 알게 되었다. 저녁에 밤하늘을 올려다 보다 별자리가 보이면 늘 북극성을 찾는 등 우주에 관한 호기심이 극에 달한 적도 있었다. 이는 결국 스티븐 호킹의 걸작 '시간의 역사(당시 가격으로도 2만 5천원 정도 했었던 것 같다)'라는 책을 구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나는 사춘기가 오기도 전에 '빅뱅'이란 용어를 운운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지식자랑을 뽐냈다. 한 때 잠깐 꿈이 천문학자인적(또는 이론 물리학자)도 있었으나 그 외의 모든 과학상식에는 관심이 없어 결국 성적과 비례해 과학의 호기심은 그저 잠깐의 일탈로 끝을 맺었다.
1년에 몇 차례씩 가는 외갓댁에는 내가 본격 신문물을 탐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외갓댁은 서울이었고 나는 중학교 때 교보문고라는 곳을 접해보며 "세상에 이런 서점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가져봤다. 수 만권의 책이 진열된 그곳은 나의 시선을 압도 했으며 나는 서울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늘 1순위가 교보문고 였다. 가족과 롯데월드, 에버랜드는 가본 적이 없어도 교보문고 만큼은 서울에 올 때 마다 방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서울의 대형서점은 내가 미래에 최종 정착지를 서울로 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언어를 정말 못했다. 모의고사에서 나오는 '언어'영역은 내가 아는 그 언어가 아니었었나 보다. 그렇게 활자를 많이 봤어도 지문 해석에 어려움을 느꼈고 문장에서 추리, 증거를 뽑아내는 능력은 현저히 약했다. 최고가 3등급이었고 6등급까지도 찍어봤다. 책을 좋아하는 다른 아이는 별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1~2등급이 우습게 나왔지만 나는 공부를 했음에도 당최 점수가 오르질 않았다. 변명하자면 그 친구는 소설을, 나는 그냥 역사책을 좋아했던 것이 차이라면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