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4편) 엄마의 부탁, 그리고 진짜 엄마의 우군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도서관에서 얼굴을 파묻고 토익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어느 날 이었다. 갑자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익아, 엄마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

"무슨 부탁인데?"

"응.. 그게 말이지.. 네 아빠랑 이혼 하려면 관련 증거 자료를 좀 모아야 하거든. 변호사하고 얘기해보니까.. 네 아빠의 폭력성을 인정하는 진술에 자식의 사인이 있으면 굉장히 신빙성이 높아진다고 하네.. 그냥 거기에 아들이 사인 하나만 해주면 돼. 해줄 수 있지?"

"그럼. 그게 사실인데 뭘. 내가 사인해 줄게"


엄마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준 첫 번째 사건이다. 사실 이 때 내가 기억하기로 엄마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혹시라도 이런 부탁에 자식들이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였을 것이다. 엄마는 누나들에게는 묻지 않고 나에게만 이런 부탁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단 한 명만 인정해도 충분한 이 확실한 증언에 명쾌하게 인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누나들과 달리 나는 이 결정에서 자유로웠다. 자식으로서 이 정도 책임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폭력성을 띠었다'는 엄마의 진술에 내 사인이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접하게 되었다. 분명 나에 대해 엄청난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한 밤 중에(당연히 술에 취한 상태로) 연락을 걸어와 다짜고짜 쌍욕을 박으며 서운한 기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러나 나는 이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울분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왜 였을까? 엄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음에도 나는 아버지의 약점을 굳이 파고 싶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더 화를 내면서 아버지를 몰아 세웠을 테지만.. 술에 취해 전화를 걸었다는 의미는 아버지에게도 감정배출 통로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아빠의 마음도 전혀 이해 못할 뜻은 아니었으니, 나는 그냥 하루 빨리 이런 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아버지가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할 때 마다 속으로 쿡쿡 찔리는 아픔을 느꼈다. 그럼에도 엄마의 부탁은 정당했기에 내 선택이 후회된다고 생각한 적은 들지 않았다.


이 사건이 있고 며칠 뒤 엄마는 첫째 누나와 대판 싸우고 서울로 거취를 옮겼다. 서로에게 잘못이 있다기 보다는 각자 삶의 방식에서 나온 불협화음이 문제였다. 첫째 누나 입장에서 엄마의 방문은 '반가움'에서 점차 '불편함'으로 바뀌었고 이는 다시 엄마에게 '서운함'으로 비췄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에서 마저 부딪히자 엄마의 자식에 대한 기대의지는 점점 희미해졌다. 훗날 엄마는 이 때를 회상하며 '가장 비참했던 시절'이라고 언급을 하는데 자식으로서 마땅히 마주할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엄마는 이 때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이기적일 정도로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했을 것 같다. 아마 '부모로서의 존재'가 아닌 '자식으로서의 존재'가 되기를 바랬던 건 아닐까? 엄마는 친정집인 외할머니 댁으로 가서 그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엄마를 '온전한 새끼'로 품어줄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계셨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빠와는 관계를 절연한 셋째 누나가 있었다.


엄마가 자식들에게 기대려는 의지가 사라져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오죽 답답함을 느꼈으면 나는 엄마에게 일기장으로 활용해보라고 블로그에다 글 쓰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나중에 셋째 누나는 몰래 엄마의 블로그를 보고서는 그 자리에서 울었다고 한다. 아마 짐작컨대 자식에 대한 원망 보다는 '강해져야 한다'는 독기가 가득 담긴 문장이 많았으리라 예상 된다.


당시의 내 일기장에서 이 시절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표현은 '엄마의 눈물을 보기 싫어서 위로의 말을 못해주겠다'는 문장이 나온다. 배경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비겁한 아들이었다. 단지 엄마의 눈물을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 말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엄마가 우리들에게 기대지 않으려 했던 결정이 100번 타당한 것 같다.

엄마는 그 때 우리 자식들보다 조금 더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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