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아빠, 엄마의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서 집 문제 해결은 필수였다. 4남매 중 실질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할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나는 적극적으로 아버지의 새 집에 대한 바램을 해결해보고자 노력했다.
한 번은 주말에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일하는 곳(그곳에는 주유소와 함께 우리의 거처가 마련된 숙소 같은 집이 있다)에 갔다. 엄마는 내 허락 없이 일으키는 대출은 절대 없어야 하며 집을 짓는 조건 역시 자신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아버지는 무조건 기존 집은 싫다고 하시며 어떻게든 현재의 집을 부수고 싶어했다. 그러나 새 집에 관한 공사비는 1억이었고 이것은 도저히 서로가 협상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엄마와 얘기해서 리모델링까지는 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신 적정금액은 3,000만원이었고 5,000만원까지가 최대라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리모델링을 할 바에야 안하고 만다며 완강히 저항했다. 아빠는 엄마와 같이 살 생각이라도 있다면 말이라도 좋게 했어야 했을텐데 틈만 나면 "내 돈으로 내가 하겠다는데 왜 자꾸 네 엄마가 참견하냐"는 식으로 성화를 부렸다. 그러자 엄마는 "그 퇴직금이 왜 네 돈이냐! 당장 나눠야지" 같은 말을 하며 강하게 맞받아쳤다.
나는 그러지 말고 차라리 이사를 제안했다. 어차피 이렇게 협상이 안 될 거면 기존 집을 일단 지키면서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한 것이다. 3,000만원이면 이 동네에서 전세로 충분히 비슷한 평수로 갈 수 있다며 아빠를 설득했다. 나는 아버지가 기존에 있는 터를 처분하는 것은 원치 않는 것을 알기에 부순다 하더라도 당장은 이사를 가서 훗날을 도모하자고 말했다. 기존 집을 전세나 월세를 주고도 퇴직하고 나서(기존 집 옆에는 아버지의 카센터가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내에 있는 집을 구해서 출퇴근하면 편의시설 이용도 가능하고 그러면 엄마에게도 좋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어떻게든 서로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논리를 펼쳤다. 좋은 집에 보증금을 좀 더 얹은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아버지의 퇴직금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아버지가 막무가내로 싫다는 의사를 전하자 나는 직접 보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며 이참에 한 번 부동산에 가서 집을 보고 오자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해서 엄마와 나, 아빠는 시내에 나가 갑작스럽게 부동산을 보게 되었다. 다행히 엄마는 여기에 별다른 저항감이 없었다. 우리는 3,000만원에서 5,000만원 사이의 단독주택과 아파트 물건을 3~4개 살펴보며 대략적인 시세를 파악했다. 꼭 바로 선택을 내리라고 요구하진 않았다. 나는 좀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 아버지의 조급함을 덜어내려 애썼다. 현장에서 별 말이 없었던 아버지는 집에 와서 "네 주장은 말이 안 된다"는 식으로 나를 무시하며 무조건 본인의 이야기만 관철시켰다. 엄마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냥 당신하고 이혼하면 되지. 너보고 빚 갚으라고 안 해. 집에나 가"라는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으며 우리의 상황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한 숨이 절로 나오는 아버지의 주장은 늘 이런 식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말에 할 말을 잃었고 엄마는 마음의 문만 더 굳게 잠글 뿐이었다. 도와주고 싶어도 저런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선한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어떻게든 엄마와 아빠가 합의된 의견 속에서 집 문제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이런 힘 빠지는 상황에서 나 또한 무기력이 번졌다.
PS.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는 이미 기존 집을 부셔 놓은 상태였다. 정확히 언제 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시점 언저리에서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집을 기어이 부셔 놓고야 말았다. 어쩌면 아버지는 나와 엄마가 그 날 그곳에 가기 전부터 이미 집을 부셔 놓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부셨다는 말을 나한테 차마 하진 못하겠고 그랬으니 이사에 대한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막무가내인 아버지의 결정에 농락을 당했음에도 어떻게든 아버지를 돕고자 했다. 이미 저질러진 상황에서 아버지를 탓하기 보단 어떻게든 수습해보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