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나에게서 기억되는 아버지의 모습은 속으면 속았지, 사는데 '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꾀를 부리는 재주가 없어서 알면서도 빚을 떼이는 경우는 봤어도 먼저 돈을 빌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유일한 대출 창구는 은행의 마통, 그거 하나 뿐 이었다.
가압류를 풀어달라는 아버지의 하소연에 어떤 의도가 있지는 않아 보였다. 어찌 보면 엄마의 행보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단순한' 의미의 대출 사고 였다. 재산 분배로 청구했던 돈을 갑작스럽게 마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고 아버지가 퇴직금으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아빠는 간이며 쓸개며 일단은 줄 거 다 주고 다시 무식하게 벌어서 갚아 나가려 하는 그 정도의 '성실함'은 가진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아버지가 아닌 엄마를 설득하기로 했다. 여기에 아빠가 얼마나 진지한 모습으로 엄마를 대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것도 포함되었다.
엄마를 설득하는 데 있어 나는 내가 가진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바로 '신용',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 때 내가 엄마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나를 믿고' 한 번만 아빠와 같이 만나 협상을 하자고 말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엄마는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개입했고 또 해결하고 싶어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정상 당신들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나에게 숨기더라도 단순 위로가 아닌 정말 뭔가에 대한 해결책을 같이 고민해보려는 아들이라는 것쯤은 엄마가 알아줄 것이라 여겼다.
"엄마!, 나를 믿고 한 번만 아빠를 만나서 이야기 해보자. 내가 중재자로서 엄마의 요구사항이 아빠에게도 현실적으로 들어줄 수 있는 건지 같이 판단해볼게. 그래서 합의가 되면 내가 자식 대표로서 엄마가 우리들의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보증해줄게. 엄마가 더 이상 우리들에게 미안한 감정 같은 거 느끼지 않게.. 엄마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내가 누나들에게 적극적으로 이야기할게.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순진한 아이였던 것 같지만 당시 나는 이런 어조로 엄마를 설득했다. 그리고 엄마는 내 적극적인 의지에 결국 아빠와 만나 담판을 짓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를 설득시킨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의 요구사항은 무조건 들어주라며 아빠를 몰아세웠다. 그 요구가 과한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거라며 아빠에게는 이 자리가 정말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계속 상기시켰다. 여기서 아빠가 약속을 어기면 그 땐 나조차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며 아빠에게 진중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나는 엄마를 데리고 아빠가 있는 금산 시내의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곧 이어 아버지가 오면서 우리는 모처럼 셋이서 오래 간만에 만나게 되었다. 한 겨울이라 차는 모두 따뜻한 음료로 주문했다. 곧 이어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고 자리는 오래 지속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나는 애써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운을 띄우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엄마의 요구사항을 들어보았다. 엄마는 이 자리에 오게 된 이유를 아빠에게 밝히며 매월 50만원의 생활비를 요구했다. 이는 재산분할 청구로 확정된 금액을 제외한 액수다. 엄마는 아빠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충분히 50만원씩 줄 수 있는 형편이 된다며 더 이상의 협상은 없다고 못 박았다. 아빠는 이에 대해 50만원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조금만 금액을 낮춰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최종 액수는 30만원으로 정해졌다. 합의가 끝난 후 엄마는 아빠가 가지고 온 가압류 해제 관련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나는 부모님의 합의된 자리에 증인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아빠에게 반드시 약속을 지켜달라고 거듭 말했다. 이로써 엄마와 아빠가 겪은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었다. 나는 자식으로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한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뿌듯함을 느꼈다.
아버지의 배신을 알기까지는 이후로 시간이 지난 며칠 뒤였다. 갑자기 엄마로부터 전화가 와서 '네 아빠로부터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세게, 마치 비웃기나 한 듯이 말이다. 아빠는 가압류가 해제 된 것을 바탕으로 은행에서 잽싸게 대출 신청을 완료 하였다. 당연히 은행은 선순위로 올라서게 되었으며 아빠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아빠의 친구와 공모하여 엄마가 아빠의 재산에 대해 또 다시 가압류를 걸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언제 그랬냐는 듯 힘들어서 돈을 못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 사실을 접하고 정말 얼마나 분노를 느꼈는지 모른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해 노발대발하며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데, 아빠는 그저 도장 한 번 찍어보겠다고 철저히 우리를 농락했다. 특히 자식에게까지 거짓말을 한 다는 것은 내가 아는 아빠가 아니었다. 밖에서 그렇게 솎은 양반이 그 꾀를 배워 와서 솎이려고 하는 대상이 '가족'일 줄은 정말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아빠에 대한 한 맺힌 분노를 가슴 한 구석에 묻어 두었다.
당장 엄마가 걱정 되었지만 그 보다는 사실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크게 앞섰다. 나 하나 믿고 해제를 결정한 건데 이런 사태를 맞이한다는 게 너무 가슴이 쓰라렸다. 그런데 엄마는 이 문제에 대해 나를 탃하기 보단 그냥 빨리 법적 다툼으로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변호사와 얘기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다음 바로 소송을 청구해버렸다.
결과는?...
판사는 아버지의 괘씸죄를 100% 반영하였다. 또한 아빠 뿐만 아니라 아빠의 친구 역시 공범으로 간주해 엄마에게 재산분할청구 금액을 강제로 부과하도록 명령했다. 뜻밖에도 엄마에게는 나중에 받게 될 재산분할금액을 조기에 상환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작용된 것이다. 아버지는 부리나케 친구들로부터 십시일반 돈을 모아 엄마에게 지급함으로써 상황은 마무리 되었다.
아빠는 결코 엄마를 이길 수 없다.
이후 원고는 계속해서 탈고 중에 있습니다. 일과 병행해서 글을 쓰는데 시간이 촉박했네요. 조만간 수정을 마무리하고 3편으로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