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기존 집이 철거된 상태에서 아버지의 새집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아버지는 어차피 농협에서 마련해준 거처가 있어서 그 곳에서 이미 몇 년 째 살고 있었다). 어차피 이사가 무마된 상황에서 아버지를 따로 통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나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고 나는 허탈감에 아버지와는 더 이상 집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같은 결정에 관해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는 내 처지에 대해 정당성을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가족들과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가 오갔으니 본인의 결정대로, 책임 하에 집을 지어버리면 그만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엄마, 아빠와의 문제는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은행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대출과 관련한 상담을 받던 중 가압류가 걸려 있어 다장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아빠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린 순간이었다.
집을 부셔버린 아버지에게 가용한 현금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퇴직금은 1년 뒤에나 나올 예정이었고 집을 지을 최소한의 착수금마저 지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런데 공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당장 발바닥에 불이 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동안 엄마에게 큰 소리 뻥뻥 치던 아버지의 기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처지 또한 당장 무릎을 꿇어서라도 엄마를 만나야 하는 애걸복걸한 상황에 놓여 버렸다.
당당하던 아버지는 그 때 부터 매일 나에게 전화를 해왔다. 당시에 나는 거의 유일하게 엄마와 아버지 사이를 연결시켜 줄 수 있는 통신병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하소연을 해가며 제발 엄마에게 가압류 좀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잘못된 경우에는 사기죄로 들어갈 수 있다는 말도 꼭 전해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딱한 사정은 잘 알았으나 엄마의 마음을 돌릴 재간은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아버지의 냉정한 말투와 쌀쌀한 냉대를 잊지 않았다.
"네 아빠보고 알아서 하라고 해!"
풀어 볼테면 풀어보라는 것이 엄마가 나를 통해 아버지에게 헤준 답장이었다. 그렇게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처한 현실에 적극적인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이 같은 상황으로 인해 꽤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문제에 관해 적극 중재하고 싶었지만 하면 할수록 권한만 약해졌고 서로의 약점들만 더 깊게 보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기계처럼 전달만 하면 되었으니까. 그러나 망가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충분히 그려졌고 울면서 전화하는 목소리에는 '분노'가 아닌 '자책'이 서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늘 잘 몰라서 당하는 아빠는 또 이렇게 '몰랐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마저도 당하고 있었다. 힘으로나 제압할 줄 알았지, 독립한 이후로는 엄마에게 한 번도 논리적인 공세를 펼쳐본 적이 없었다. 정말 아버지의 존재가 밉고 화나고 답답해 죽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도 드는 아이러니가 반복됐다.
그렇다고 이번에는 함부로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객관적으로 봐도 아버지가 나은 형편이었지 엄마는(말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그냥 바짓가랑이를 동아줄 삼아 버텨내는 심정이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첫째 누나에게 내쳐지고 할머니 집으로 피신 간 상황을 아버지가 알았을 리는 만무하다. 자식들이 겉으로는 이혼에 찬성해도 이면에는 엄마에게 지속적으로 결혼생활을 유지했으면 좋겠다는 압박을 가한 것을 아버지가 느끼기나 할까? 그건 그렇다 쳐도 가압류는 엄마에게도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무기나 다름없었다. 이걸 풀어 달라는 의미는 대출을 자유롭게 해주는 대신 본인의 재산 분배로 받게 되는 금액은 완전히 뒤로 밀려나 버리는 꼴이 돼 버린다. 이런 전개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가압류룰 풀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자식인 나는 도대체 무슨 염치로 엄마에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한 쪽의 요청을 들어주는 순간 누군가는 피를 흘리는 게임으로 바뀌었다. 아버지 편을 들면 엄마는 받을 것이라고 확실시 되는 재산분배를(이미 집을 부셔놨기에) '받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엄마 편을 들면 아버지는 대금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자칫 사기죄로 고소될 수도 있다. 가장 최악은 가족 간 우애마저 모두 나락으로 가버리는 경우다.
내 삶을 그냥 살기에도 벅찬 시기였다. 알바도 포기하고 한 학기 내내 붙잡던 토익에서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아 하루하루 울적했던 나날이었다. 썸을 타던 A하고의 관계는 끝나버렸고 격렬한 외로움에도 이런 문제들로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방은 없었다. 그러나, 이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여야 했고 앞을 바라봐야 했다. 죽기보다 싫었던 것은 삶에 온갖 핑계를 대며 사는 인생이었다. 후회가 가득차고 자책만 남아있는 삶을 가장 경멸했다. 다시 한 번 나에게로 닥친 실타래를 하나씩 풀기위해 마음을 추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