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3편) 자리를 박차고 나간 엄마의 진심

by Aroana

가족 x편’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우리 가족이 어쩌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잔인한 가정사다. 내가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브런치를 지인에게 오픈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20대의 멘탈을 뒤흔들었던 가정사를 단지 팩트 중심으로 건조하게만 나열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에세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느꼈던 감정을 최대한 주관적 입장에서 말해보려 한다.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글이라는 것을 미리 양해 구한다.



엄마가 큰 누나 집으로 피신을 한 후 우리 가족은 한 동안 뒤숭숭한 시절을 보냈다. K-장녀의 인생을 살고 있는 첫째 누나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졌고 둘째 누나의 각박한 결혼 생활은 삶에 여유를 가질 시간이 없었다. 셋째 누나는 엄마의 소식을 접하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2학년을 보내며 투 잡과 함께 대외활동을 시작하는 등 바쁜 학과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그렇게 우리들에게 전화를 해대며 '니네 엄마 어딨냐!', ;당장 연락해서 데려놔라!' 등의 개, 아니 멍멍이 같은 소리만 늘어놓았다. 지금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저 또 며칠 버티다 보면 제 풀에 못 이기는 척 어물쩡 거리는 고전적 레퍼토리 정도로 느끼는 듯 했다.


엄마, 아빠의 갈라짐이 이제는 정말 현실화 될 것 같은 분위기로 조성 되자 우리들은 크게 동요 되었다. 모두 다 성인이 되었고 엄마의 고생을 뻔히 봐왔는데도 '이혼'이 주는 무게감은 또 남달랐던 것이다. 아무리 황혼이혼이 대수라 해도 먼저 가족을 꾸린 둘째 누나의 입장에서는 가정환경에 좋을 리가 없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첫째 누나 역시 부모의 헤어짐을 맞이하는 것은 앞으로의 배우자에게 부담으로 느껴졌을 터였다. 나 역시 편할 날이 없었다. 엄마의 결정은 물론 적극 지지하나 '부'와 '모' 중 한 쪽에게만 연락을 취하는 노선은 택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를 너무 미워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존재마저 잃기는 싫었다. 어떤 식으로든 아빠는 아버지로서의 존재로 남아 우리 가족에게 기둥이 되길 바랬다. 그리고 그건 분명 누나들도 바라는 바였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마음은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잘 나타났다. 술 김에 취해 전화가 온 통화에서 큰 누나와 나는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대며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엄마에 대한 안 좋은 소리가 나올려 하면 더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잘못을 지적하는 등 아버지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 당시 우리의 행위는 아빠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못해준 것에 대한 서운함을 화로서 대신 표출한 일종의 감정표현이었다. 반면 둘째 누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둘어주는 편을 택하며 아빠의 심정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음에도 둘째 누나는 엄마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아빠의 사정을 또 그대로 들어가며 누구에게도 서로를 비난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 아빠가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만을 바라는, 어떤 면에서는 순진무구한 바램을 가졌다.


우리 모두는 아빠를 누구보다 미워했음에도 엄마에게는 은연중에 가족끼리 다 같은 외식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등 서로간의 만남을 주선해보기도 했다. 동네 식당에 가서 밥만 먹다 나온 적이 있었고 짜장면을 먹으러 1시간 넘게 걸린 맛 집에 가서도 대화를 유도하다 실패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아버지를 제외하고 엄마와 함께 다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엄마, 아빠의 거취 문제로 이어졌고 우리는 계속 엄마에게 아버지와 화해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식으로 부추겼다. 분명 엄마로서는 불편했을 자리였을 것이다. 단순히 밥만 먹다 나온 것이 아닌 가족끼리 이번엔 여행을 가보자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에게도 아빠와의 관계가 유지 되어야 우리 자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등 회유와 설득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건 분명 위로가 아닌 강요 섞인 거듭된 종용이었다. 결국 엄마는 서운함을 참지 못하고 우리들에게 감정 섞인 화를 내비친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그 때 우리는 참 많은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 성격을 두고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둥 감정적이라며 어떤 면에서는 엄마의 성격을 탓하기도 했다. 우리의 기대 섞인 바램 안에 엄마의 상황을 구겨 넣으려 애썼던 것이다. 무엇이 자극을 주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은 채 화만 나면 그저 풀어주는 것만 반복했다. 자식인 입장에서 누구에게도 절대적인 편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은 무척이나 어리 섞고 순진한 발상이었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엄마에게는 언어 폭력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아직 엄마의 마음을 품어줄 만큼 그릇이 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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