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은 내 생애 '돈'대익이라는 별명이 붙였던 시절이다. 학교에서 타갈 수 있는 장학금을 모조리 지원해 꽤 좋은 실적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돈에 관한 내 근성을 잘 나타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작은 1학기 때 룸메이트 형을 따라 교회에 다닐 때 부터였다. 우리 학과 교수님의 조카인 A형님이 같은 학과1학년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운이 좋게 나랑 같은 방을 쓰게 된 것이다. 형님과 자주 술을 마시고 어울리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교수님의 총애(?)를 받는 존재가 되었다. 아무래도 조카와 같은 방에 지낸다고 하니 눈에 띄긴 했을 것 같다. 마침 또 교수님의 과목을 수강하기도 했고 꽤 적극적인 수업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여기에 형님의 제안으로 교수님이 다니시는 교회에 나가 인사고 나누고 성경도 선물 받는 등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로 교수님의 말씀을 새겨 들었다. 그랬더니 정말 학기가 끝나고 50만원에 달하는 교수 장학금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아부가 아닌 신의 거룩한 계시 였음에 틀림이 없었다.
적은 돈이었지만 1학년을 대상으로 멘토 역할을 해주는 멘토링 서비스에도 참여해 12만원을 획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박인 것은 교수님의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외국인 유학생 정착 프로그램 활동이었다. 대전에 있는 몇 몇 유학생들의 각종 고충을 들어주고 이에 따른 적절한 도움을 제시하는 것이 이 활동의 주된 내용이었다. 4~5개월 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다행히 내가 만난 유학생들은 모두 한국어를 나보다 훨씬 잘했으며 딱히 내 도움이 필요치 않는 훌륭한 인재들이었다. 그러나 보고서는 써야 했기에 나는 봉사를 가장한 친목모임을 만들어 여러 가지 상활들을 기가 막하게 연출했다. 이 활동으로 총 70만원이라는 꽤 훌륭한 타이틀인 '튜터 장학금'을 수령하게 되었다.
이 외에도 학과에서 특정 자격증을 따면 돈을 준다길래 자세히 살펴 보았더니 그 안에 금융 3종 자격증이 포함 되었었다. 그렇게 20만원을 냉큼 뽑아 먹고 토익 600점 이상이면 점수 허들에 따라 장학금을 수령할 수 있어 그렇게 또 16만원을 획득하기도 했다.
알바 3종(학교도우미, 기숙사 식권 발급 알바, 교내 편의점)은 학교 정문을 벗어나지 않았고 봉사활동 시간은 한국어 학당 프로그램(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활동, 나보다 한국어를 잘한다)을 통해 학점과 시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가장 바빴고 또 가장 억척스러웠던 시기였다. 이 모든 활동의 최종 목표는 오직 단 하나, 220만원에 달하는 CFA 자격증 비용 마련이었다. 고작(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200만원을 얻어 보겠다고... 나는 그렇게 학기 내내 뛰어다녔었다.
자격증으로 넘어와서 위 내용을 보면 내가 투자자산 운용사 시험을 어떻게 준비 했을지 예상이 될 것 같다. 사실 이 시험은 기존 금융 3종을 배우고 거기에 금융투자분석사까지 공부한 사람이라면 무난히 합격이 가능한 시험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당시의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교재는 분량만 많을 뿐, 적어도 한 번씩은 다뤄본 내용들이었고 따라서 나는 개념 보다는 문제 풀이에 집중하며 고효율만을 지향했다. 그래서 결과는.. 65점 탈락. 이번에도 실패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사실 이 시험 마저 불합격 했을 때 나는 그야말로 비참한 감정을 느꼈다. 비록 CFA시험을 위한 사전준비 였다 하나, 손에 쥐는 것이 한 푼도 느껴지지 않는 이 무력감은 나를 되려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알바로 인해 피곤한 눈꺼풀만이 나를 무기력하게 방으로 안내할 따름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화를 내고 싶어도 낼 힘 조차 없었다. 스스로에게 수고했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을 만큼 지쳐있는 상태였고 여러모로 아쉬움만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