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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디오소년 Nov 29. 2022

할배와 수루메


‘언니가 그렇게 보고 싶다는 할배 사진 찍어 보낸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는 낯설었다. 진회색 신사복에 갈색 땡땡이 넥타이가 유난히 정갈했다. 할아버지가 즐겨 입던 옷은 기억 못하지만 어쩐지 정장은 영 신선하다.








3학년 때까지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나는 방학이면 맞벌이 부모님의 손을 덜기위해 시골로 보내졌다.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지지는 훗날 사춘기를 버텨낸 자양분 이기도 했다. 그때 할아버지는 지금 떠올려도 꽤 영리하셨다. 국민학교도 졸업 못한 양반이 손녀의 ‘산수공부’에 사력을 다하신 것 같다.

당시 그의 아침 루틴은 글라스 가득 따라 부은 정체모를 액체와 함께 시작되었다. 제삿집에 다녀온 어느 날엔 찬장에서 꺼내든 마른오징어포가 안줏거리가 되었다.


“칠 칠에?” 애증의 7단, 만날 7단만 묻는데도 49가 바로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오징어 다리 한 짝이 그의 입속으로 구겨졌다. 








내 오늘은 기필코 저 오징어 먹고 만다. 재수 좋은 날은 쉬이 오지 않았다. 구구단을 외는 것 보다 문중에 다섯집 제삿날을 기다리는게 빨랐다. 떡과 고기는 주로 어른들 차지, 종합제리와 어포는 아이들에게 내려지는 호화스러운 날이었다. 그가 나를 가만히 불렀다. 손녀랍시고 당신이 좋아하는 마른오징어를 통째 건넸다.


“니 혼자 다 먹어래이.” 호기롭게 받아 들었지만, 시작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다리는 비교적 뜯기 쉬웠다.

첫맛이 너무 짰다. 할배는 이 짜고 질긴 걸 왜 날마다 먹을꼬? 

잇몸과 치조골이 탄탄했던 건지 아니면 그에게 맏손녀로서 인정받고 싶었던 건지 나는 저작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징어다리를 반쯤 뜯다보니, 중간에 눈알 같은 게 보였다. 이렇다 할 친절한 설명이 없었던지라 일단 털어 넣었다. 가시가 사방을 찔렀다. 씹다 씹다 뱉어버렸다. 

그 질깃함을 못 이긴 어린동생들은 진작 제리로 갈아탔다.




이제 몸통만 남았다. 찢기는 방향이 가로인지 알 턱이 있나. 먹고자 하는 집념은 그때 생겨났을지 모른다. 

오징어는 몸통이 제일 맛있구나. 나는 밤12시에 오징어 한 마리를 해치우며 깊이 깨달았다. 

확실히 핏줄이다. 그 꼬릿한 냄새도 고무줄 마냥 단단하고 질긴 식감마저도 좋았다. 질겅질겅 육즙이 입안 가득 차올라 타액과 한데 어우러졌다. 구수하고 담백한데 뒷맛은 달큰했다. 그리고 다음날, 턱이 꽤나 아팠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제사상에서 마른오징어는 내 차지가 되었다. 정복감 같은 충만함이 차올랐다.








엄마는 할아버지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마른오징어를 올렸다. 제사가 끝나면 투명비닐에 오징어를 넣고 냉동고에 보관했다. 아버지가 약주를 찾는 날이 내가 오징어를 굽는 날이 되었다. 오징어는 천천히 가스불에 구워야 불향이 배 풍미를 끌어올린다. 몸통과 다리사이 등록번호 막대를 떼어내고 물에 살짝 헹군다. 오랜 노하우 덕분에 알게 된 팁이랄까. 너무 짜지 않고, 좀 더 촉촉하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에 너무 오래두면 한 쪽으로 말려 들어가 반대쪽이 굽히지 않으니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한다. 쪽쪽 얇게 찢어서 촉촉한 마요네즈를 듬뿍 찍는다. 이때 적당히 씹어 삼키면 안된다. 입에 넣고 천천히 불리듯 씹어야 짠맛 속 그 진한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할아버지도 오징어를 마요네즈에 찍어서 드셔보셨을까. 이 고소하고 부드러움을 그도 알았어야 했다. 안타까움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손녀가 구워주는 오징어 맛도 못보고 떠난 그가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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