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남학생은 태권도, 여학생은 피아노학원이 유일한 사교육이던 시절이었다. 살림집을 겸했던 슈퍼마켓과, 비디오가게가 전부였던 작은 동네에도 교습소 간판이 내걸렸다. 아이는 벌써 며칠째 피아노 학원에서 새어 나오는 경쾌한 선율에 발길을 멈춰 섰다. 게다가 오늘은 작정을 하고 덕지덕지 붙어진 시트지 사이로 희미하게보이는 내부를 염탐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니?”
긴 생머리에 끝이 도르르 말린 원장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이 안에서 계속 지켜봤지. 너 피아노 배우고 싶구나 그렇지?”
원장님의 고운 말씨에 매료되어 아이는 순순히 집 전화번호를 불고 말았다.
부러 동네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알려달라고 하니 알려는 줬다만 어쩐지 불안했다. 10살 아이의 깊은 한숨이 더해 하늘마저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야단맞으면 어떡하지. 아니면… 선생님과의 이야기가 무사히 성사되어 피아노학원에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것도 같다.
평소와 달리 늦게 귀가한 나를 친히 문 앞에서 기다리는 새엄마를 보고 덜컥 겁이 났다. 그녀의 오른손에 본래의 용도를 잃은 짧은 나무 빗자루가 거꾸로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전화번호를 발설한 이유로 새엄마 앞에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빌어야 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사실 고백을 한다고 해서 매의 강도가 옅어지거나 마음이 누그러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고 또 빌었다. 아이는 매질보다 회초리로 내리치기 전까지 여자의 혀에서 쏟아지는 욕설과 폭언 속 광기가 더 끔찍했다. 이가 닥닥닥 부딪힐 정도로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빨리 맞고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 새끼만도 둘이나 키우는 여자는 요목조목 따져 묻는 것에 반해 매질은 효과 빠른 해결책이라 여겼겠지만, 돌이켜보니 그때의 나는 결코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하지 않았다. 외려 마음속 여기저기 멍이 들고 응어리만 졌다.
새엄마는 우리가 가난한 것이 모두 네 아빠 탓이라고 말했다. 준비물을 재깍재깍 사주지 않아 특히나 미술시간은 뒤에서 손들고 청강하는 날이 잦았다. 그림의 씨앗을 싹 틔우기에 5색 물감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기말고사를 망친 것도 순전히 나만 전과가 없어서 인 것 같았다.
아빠는 다니던 입시학원을 그만뒀다. 그리고 10년이 넘도록 입으로만 하던 공무원 준비를 반 자발적으로 때려치웠다. 삼 남매를 줄줄이 달고 있는 그에게 어쩌면 정 직원에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는 은행 청경은 시간대비급여가 높지 않았다. 당시 해가 뜨면 허리춤에 가스총을 차고 근엄한 표정으로 은행을 지키다 해가 지면 담배연기 그윽한 밀실에서 그림공부로 시간을 때우다 귀가했다. 엄마를 잃고 한동안 잠잠했던 그가 다시 담배와 화투, 소주를 찾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은 열에 아홉이 갱시기죽이었다.
안성탕면이 300원도 채 하지 않았다. 주말의 별식이었고, 내가 제일 싫어했던 새엄마표 음식 중 하나다. 십원 하나 허투루 하지 않던 그녀는 텔레비전 위에 빌딩처럼 세운 동전을 헤아려 에누리 없는 라면값을 건넸다. 아이는 한창 식욕이 왕성했지만, 시골에서 보내주시는 삐쩍 마른 풀떼기와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콩반찬이 성에 차질 않았다. 무렵서울 사는 고모가 어린이날에 사 보낸 과자선물세트가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얼마예요?”
라면 3 봉지를 손에 들고 재차 가격을 물었다. 갑자기 가격이 떨어져서 50 원하는 사탕이라도 사 먹을 수 있다면.
“어 잠깐만 기다려라.”
슈퍼주인은 방 안에서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힐끔 단골을 확인한 후 다시 통화에 집중했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형형 색깔의 과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주머니의 통화가 길어질수록 애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