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여섯 살 아래 여동생은 새엄마의 졸작이었다. 그녀는 당신의 딸이니만큼 유구한 명작의 탄생을 바랐겠지만 애석하게도 시댁식구들의 환대를 받진 못했다. “이미 전처의 딸이 떡하니 있는 데 또 딸을 낳을게 뭐람.” 육 남매 중 막내딸로 조실부모한 가엾은 아내를 위해 아빠는 어렵사리 제 식구를 섭외했다. 덕분에 그녀는 자신의 해산 수발을 들기 위해 방문한 할머니와 큰고모가 나누는 대화를 곰솥 가득 끓여진 미역국을 비우는 내내 들어야 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이는 징글맞게 입이 짧았다. 새엄마는 전에 없던 살가운 말투로 숟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비행기 들어갑니다. 슈웅~” 아이는 잠시 놀이에 흥미를 가지는가 싶더니 이륙직전에 입을 꾹 닫아버렸다.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새엄마는 숟가락을 강제 입소 시켜 보지만, 공조할 생각이 없는 동생은 밥을 씹지 않고 물고만 있었다. 나는 밥알이 입속에서 불어나 마침내 양 볼을 부풀린 다람쥐가 되어가는 진귀한 장면을 날마다 목도했다. 피식. 밥때마다 지 어미 속을 태우는 그녀가 내게 있어 묘한 위안을 주는 작은 악마인 셈이었다.
상업광고의 다른 이름이 ‘선전’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언젠가 이 작은 아이가 검은 텔레비전 화면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동생은 말도 없고, 소리도 잘내지 않았다. 다만 잘 놀다가도 선전이 끝나고 본방송이 시작되면 빼앵빼앵 울어버렸다. 아빠는 거금을 들여 비디오를 들이고 광고를 기다렸다가 테이프로 녹화를 뜨는 정성을 보였다. 샤샤샤 빠르게 바뀌는 화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동생이 어딘가 조금 다르다고 여겨진 건 그 무렵이다. 되도록 텔레비전에서 멀찍이 앉혀주고 돌아서면 어느 틈엔가 화면 앞으로 바싹 다가간 아이는 고개가 미세하게 왼쪽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단순 시력에 문제겠거니. 그러나 한번 돌아간 고개는 두꺼운 안경을 쓰고도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하늘이 삼킨 회색구름으로 검은 대낮이었다.
큰 병원을 다녀온 새엄마는 잠든 여동생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아빠는 동생이 선천적으로 한쪽 귀에 청력이 아예 없다는 사실을 내게 전했다.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는 아이는 자연스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고, 녀석이 말도 늦고 사회성도 현저히 떨어진 것의 모든 이유가 맞춰지는 순간이었다.
새엄마는 아빠를 향한 원망으로 매일을 살았다.
모든 사건의 시발점을 안 그래도 입지가 점점 위태로운 남편에게로 돌리는 듯했으니까. 애 딸린 홀아비한테 시집와서 열심히 살아준 대가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저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차별을 당했다, 당신이 전적으로 내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 회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해도 아빠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침묵으로 항변하는 것이야 말로 상황을 가장 깔끔하게 종결시키는 해답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피해보상을 받으려는 듯 아빠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가, 대답 없는 메아리를 허공에 외친 꼴이 되어버렸다.
이따금 한쪽 귀의 참담한 운명이 결정 난 동생보다 한 번도 신앙을 가져본 적 없는 새엄마가 누군가를 향해 기도하는 모습에서 미움과 연민을 동시에 느꼈다.
맏이로서의 책무 안에 여동생의 보디가드 역할이 추가되었다. 하교 후 걸핏하면 내 앞에서 알짱대는 동생의 귀가 되어야 했고, 텔레비전만이 유일한 아이의 친구가 되어야 했다. 그때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여중생이었고 하루에도 열두 번 맑았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귀찮고 성가시게 느껴졌다. 이 집에 사는 이상 쉽사리 외면하지 못해 순순히 받아들이다가도 동생이 내 물건에 손을 대면 눈이 뒤집어졌다. 나이차가 커서 각자 소유물이 극명하게 갈림에도 여동생은 언니의 서랍 속을 호기탐탐 노렸다. 난데없이 열쇠 달린 서랍을 열어달라고 보채는 아이가 너무 미워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엄마아 언니가 때렸어."
갑작스러운 스토리 전개에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난감했다.
"저지레를 해 놓으면 네가 치우면 그만이고,
애들이 다 그런 것을 맏이라는 게 동생들을 품지는 못하고 걸핏하면 몰래 뒤에서 쥐어박은 거 모르는 줄 알지?
열쇠 가져와"
손거울과 작은 빗, 수첩과 예뻐서 쓰지 못하는 샤프, 캐릭터 공책 사이로 숨겨뒀던 자물쇠 달린 일기장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