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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진 Mar 28. 2023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매일 새로운 사랑을 쌓는다면?


아는 동생이 이사한다고 짐을 뺀다고 책 무료 나눔 배포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렸다.

안 그래도 트렌드코리아 2023 책을 다 읽어가던 참이어서 어떤 책을 사서 읽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바로 연락을 했다.

책 종류는 인문, 철학, 과학, 에세이 등 여러 가지 종류가 많았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청춘소설이었다.


일단, 그동안 뇌에 지식을 집어넣는 무거운 책을 읽었던 지라 가볍게 후루룩 읽을 수 있는 것이 필요했고 영화로 만들어 진적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생각으로 스쳐 지나갔다.

원작인 책을 보고 영화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라고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었던 것 같다.


청춘소설은 내게 처음이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라는 책 제목만 봤을 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고?라고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당장 오늘 밤,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내가 하고 있던 사랑이 사라진다는 것은 슬픔을 더불어 고통스러움과 씁쓸함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사랑이 사라진다는 걸까 아니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인지 보는 이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나는 그저 빛을 잃었던 것뿐이다.
히노에게 빛을 받은 지금의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내 인생은 무미건조했다. 히노 마오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날 모르겠지만,  사귀어줄래...?"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하게 된 고백.
그런데 예쁘고 웃음 많은 그 아이.
히노는 조건을 내걸고 이 고백을 받아들인다.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가짜 연애.
히노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 더는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병이 있어.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데,
밤에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려.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날마다 기억을 잃는 그 애와 매일 새로운 사랑을 쌓아가는 날들,
나는 과연 그 아이의 내일을 지켜줄 수 있을까?

-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_책 후면 참고


선행성 기억상실증의 소재 사용

이 책에서 여자주인공인 '히노 마오리'는 선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결말을 갖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기까지 하는 비극적인 과정까지 몰아가기도 한다. 자칫하면 흔하고 진부할 수 있는 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주인공이 앓고 있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새로운 기억을 축적하지 못하는 것이다. 히노 마오리가 사고로 뇌에 충격을 받은 결과 뇌에 기억을 축적하는 시스템이 다운되어 기능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을 잘 때까지는 기억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잠이 들어 뇌가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하면 그날 하루치의 기억이 다 삭제된다.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고 하루 전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히노 마오리는 매일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 위하여 수첩이나 일기에 모든 일을 적어둔다. 과거의 히노가 쓴 수첩과 일기를 읽어보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히노 마오리는 가미야 도루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수첩과 일기에 그와의 이야기들이 하나씩 차곡차곡 쌓여간다. 일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일을 잊어버리는 히노 마오리지만 가미야 도루와 함께 한 추억과 생생한 감정을 맞닥뜨릴수록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고 가미야 도루라는 사람에 대하여 궁금해진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내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그와의 기록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일까? 라며..


평범한 소년 가미야 도루와의 특별한 만남

히노 마오리와 가미야 도루와의 만남은 조금 특별하다. 평생 자신을 놀라게 하는 일 없이 살아왔던 지극히 자신은 평범하다고 느껴온 가미야 도루는 자신의 반 앞자리 남학생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보게 되고 도와주다가 괴롭히던 녀석들은 1반 히노 마오리에게 오늘 중으로 고백하면 괴롭힘을 그만두겠다고 제안을 한다.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하게 된 고백이었는데, 어찌 되었는지 히노 마오리는 고백을 받아들이게 된다.

단 조건 세 가지를 걸고. 첫째,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둘째, 연락은 짧게 할 것. 마지막으로 셋째,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렇게 그들은 유사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처음에 진심으로 시작한 연애가 아니었지만 밝게 웃으며 '내 남자친구님'이라고 부르는 히노 마오리에게 스며들어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미야 도루는 히노 마오리의 일기를 우연하게 보게 되었고 기억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게 된다. 종종 스마트폰으로 메모했던 것, 사진을 찍었던 것, 처음 만나면 관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것 등 사소한 것 모두가 히노 마오리에겐 특별한 것이다.

바람이 불어 머리가 날렸 가미야 도루는 히노 마오리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널 좋아해도 될까"


서툴지만 따뜻한 청춘을 담다

살아온 누구에게나 기억하고 싶은 과거가 있고 추억의 옛 시절이 있으며, 어쩌면 잊지 못할 첫사랑의 절절함까지 아직 생생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순간의 감정, 향기, 따뜻한 가슴의 울림이 요동친다. 히노 마오리와 가미야 도루의 청춘을 읽다 보면 마치 자신이 그 장면 속에 발을 딛고 있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봄에 흩날리는 벚꽃과 함께한 피크닉, 통학로에서 떨어진 논두렁길에서 달리는 초여름의 자전거, 유카타를 입고 즐기는 축제에서의 불꽃놀이와 같은 소중한 청춘 한 폭을 이 책에서 담고 있다.

녹색 양탄자가 깔린 잔디 광장의 나무 밑에서 가미야 도루가 손수 싸 온 도시락을 먹으며 서로 따뜻하게 나누는 감정들, 히노 마오리가 바라는 일이면 뭐든 하겠다며 어제 탔던 자전거를 또 타며 따뜻하게 바라보는 가미야 도루의 시선, 축제에서 많이 웃으며 여름의 추억을 하루에 다 담는 둘만의 이야기.

이러한 사소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히노 마오리는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 히노 마오리는 손에 힘을 주며 기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되도록 친절하게 대하겠다고, 고집도 부리지 않겠다고, 부모님께 매일 감사하며 살겠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 애 옆에 있게 해달라고. 가미야 도루는 히노 마오리 옆을 지키며 말했다. "괜찮아. 난 앞으로도 네 옆에 있을 테니까."


수첩과 일기 그리고 크로키북

히노 마오리의 수첩과 일기에는 하루의 모든 일들이 다 기록되고 남겨진다. 사고로 기억장애를 가지고 있어 항상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수첩과 일기를 읽어보세요'라는 종이를 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매일 아침 그것들을 읽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5월 27일 이후 남자친구님이 생긴 페이지를 마주며 가미야 도루의 특징과 함께 보낸 하루들과 느낀 감정들에 대하여 읽어나간다.

히노 마오리의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장기 기억을 새로 정착시키지 못하는 증상이다. 하지만 서술할 수 없는 타입의 기억인 절차 기억인 그림 그리기로 자신의 크로키북을 점차 채워나가게 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에 대하여 깊은 크기를 그려갈 때쯤 가미야 도루는 이렇게 말한다. "혹시 내가 죽으면 히노 일기에서 날 지워주면 좋겠어."

심장 돌연사로 죽음을 맞이하는 가미야 도루. 그렇게 수첩과 일기에서 가미야 도루의 이름과 기억은 모두 히노 마오리의 친구인 와타야의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히노 마오리는 점차 기억장애에서 회복되게 되고 우연하게 가미야 도루의 얼굴이 잔뜩 그려진 크로키북을 발견하게 된다. 히노 마오리의 남자친구라는 사람.

바람이 불었고 벚꽃 꽃잎이 날아오른다. 멍하니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가미야 도루가 많이 있었다. 가미야 도루가 마치 이곳에 있는 것처럼 정교한 스케치였다.

히노 마오리 안에서 가미야 도루는 계속 살아가고 있다. 히노 마오리가 그린 가미야 도루는 다정한 얼굴로 히노 마오리를 지켜보던 그날 그대로 지금도 거기서 웃고 있었다.

수첩과 일기는 히노 마오리의 삶을 읽어 나갈 수 있기도 했지만 수정할 수도 있고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는 불안정한 것이었다면 크로키북은 이 책에서 히노 마오리의 작은 삶의 희망이자 잊힌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이다.

히노 마오리가 가미야 도루를 잊을 수 없는 것처럼 독자들도 읽으면 읽을수록 더해지는 잔잔한 여운과 아쉬움, 커지는 사랑에 비례하는 만큼 크게 다가오는 슬픔이 오래 기억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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