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까스에 대하여 눈을 감고 떠오르는 대로 말해보자.
겉은 기름기를 머금고 갓 튀겨 바삭하고 까슬까슬한 빵가루에 입천장이 까지기도 하지만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바다 빛깔처럼 고운 육즙이 입 안에 사르르 스며들어 오감을 자극한다. 겉바속촉,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다.
서로 반대의 성향이지만 두 개의 감각이 어우러져야 느끼함 속에서 입 안 가득차는 고기의 풍만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똘망똘망 한 눈빛으로 대학교 입학한지 얼마 안됐을 때 신입생들끼리 별관에서 한 자리에 모인 적이 있었다.
그 중, 성은이라고 하는 아이는 마치 자를 댄 듯이 정갈하게 자른 단발머리, 머리카락을 오른쪽 귀 뒤로 넘겨 보이는 실버 링 귀걸이가 빛났으며 가운데 소파에 두 팔을 자유분방하게 올려놓은 채 호탕하게 웃는데 한 눈에 봐도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저 아우라는 나의 결은 아니라 생각했고 나는 과연 어떤 결의 사람일까 희미하게 떠올렸던 것 같다.
그렇게 이따금씩 생각하던 즈음, 언젠가부터 그 친구와 수업도 같이 듣는 횟수가 잦아지고 자연스럽게 점심도 같이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을 때에는 서로 먹고 싶은 코너에 가서 식사를 고른 뒤, 거의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고 함께 밥을 먹었다.
밥풀과 침을 튀겨가며 인생에 대한 열띤 토론도 하지 않았고, 요즘 재밌는 것들에 대하여 왁자지껄하게 식당 떠나가듯이 떠들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게 너무 이상 하다 거나 맞지 않는 퍼즐처럼 어색하지도 않았다. 우린 단지 그 자체가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무언가 먹을 때는 일차원적으로 먹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다.
12시 수업을 마친 후 어느 날, 한번은 학식으로 내가 돈까스를 먹자고 했다.
한 번 먹고는 돈까스에 꽂혀서 그 주에 3번은 먹으러 가자고 한 것 같다.
그 주의 끝자락인 3번째 먹을 때쯤, 나에게 질리지 않냐고 물었는데 다음주에 또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 난대로 얘기했다.
그 다음주에도 어김없이 돈까스를 두 번이나 먹으러 갔고, 이후에도 습관처럼 돈까스를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항상 성은이가 있었다.
그렇게 4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돈까스 킬러라는 별명이 붙은 채 학사모를 쓰고 졸업했다.
성은이라는 친구와 현재는 10년지기다. 예전처럼 학식으로 3800원짜리 돈까스를 마주보며 먹진 못하지만 지금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돈까스 얘기만 나오면 어린아이처럼 헤벌쭉 웃는다. 돈까스는 가장 애정 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 때 그 시절의 나를 추억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애정한다. 그리고 마치 돈까스의 겉바속촉은 나와 성은이를 닮은 것 같다.
말 안 해도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안정감을 가진 관계는 따끈한 기름옷을 입은 튀김 옷과 부드럽게 겹겹이 쌓아 올린 돼지고기 등심 살이라고나 할까. 서로 다른 부류이지만 기름만으로, 또 돼지고기 살 덩어리만으로 돈까스를 완성시킬 수 없다.
뜨거운 용광로 속 타오르는 불길 속에 얼굴이 시큰시큰 해질 것만 같은 기름 안으로 한 점 한점 스며드는 돼지고기의 향연을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조합인가!
가끔 나는 혼자서 고단한 몸을 이끌고 하루가 힘들 때, 아무 생각없이 행복한 하루로 마무리 하고 싶을 때, 기분 좋은 금요일 밤 퇴근 후 6시라는 시각을 가리킬 때 나의 발걸음은 칠곡에서 가장 맛있는 돈까스 가게로 향한다.
돈까스 먹기 전 설렘과 기대치가 벅차오름을 느끼며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실천하는데 이만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나란 사람.
갓 튀겨낸 돈까스의 풍미를 느낄 때면 맛 자체의 포근함, 아른아른 거리는 추억의 푸근함 둘 다 느낄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은 돈까스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지만 따뜻함을 품은 속살 같이 그 안의 또 다른 나의 공간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