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by 선셋진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생각한다면 내가 아예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될 수도 있겠고, 옛 추억에는 남아있지만 지금은 찾아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된 것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겐 쳐다도 보기 싫은 비극을 가져다 주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


여러모로 어떻게 보면 참 모호한 의미이면서도 단연코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본 결과, 나에게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이란 것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으며 나의 추억으로 한 폭의 이야기 그림을 담아보고자 한다.


나의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의성의 비안성이라는 마을 안에서 소문 자자한 떡방앗간을 운영하셨다.

떡방앗간은 친할아버지의 녹색 기와가 늘어져 있는 집 옆에 흙 길을 열 발짝만 걸으면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이 되면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친가의 친척들 모두 옹기종기 모여서 친할아버지 집에서 덕담도 하고 뭐가 그리 좋은 지 지나가는 낙엽에도 꺄르륵 웃어 대던 나와 어린 동생들은 기와 덮인 집 옥상에 올라가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뛰어다녔다.


그러다 잠에 들고 아침에 분주한 소리에 깨서 비빈 눈을 살짝 떠보면 친할아버지는 조금 구겨진 모자를 쓰고 떡방앗간에 가서 하얀 빛깔 영롱한 가래떡을 뽑고 계셨고 친할머니는 콩고물을 기계에 넣어 곱게 빻고 있었다.


그러고는 파릇파릇한 잔디에 새 순이 돋는 것처럼 금방 뽑아 따끈따끈한 가래떡 5줄을 달콤한 꿀과 함께 우리 옆에 무심한 듯 탁 두고 나가신다. 나와 동생들은 아침부터 쫄깃쫄깃 가래떡을 먹고 금새 빈 접시를 완성한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흙먼지 묻어 있는 할머니 신발을 신고 흙 길 열 발자국 걸으면 어느새 떡방앗간 입구 앞에 서있는데 친할머니가 손짓하며 주름진 손가락으로 쑥 떡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어 주신다. 그렇게 명절때마다 찾아 뵈는 몇 년이 흘렀고 지금은 어엿한 숙녀가 되었으며 내가 이렇게 자라감에 따라 친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반겨 주시지 못하였고 어느 순간 내 이름을 기억하시지 못하였다.


떡 방앗간은 붐비는 사람들 없이 그 자리에 홀로 남아있으며 떡을 만드는 기계 소리, 친할아버지의 갓 뽑아낸 뽀얀 가래떡, 집 드나들 듯 걸어 다녔던 떡 방앗간의 온기 들은 이제 느낄 수 없었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손맛으로 빚어낸 비안성 마을의 떡 방앗간의 따뜻한 떡은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그리운 음식이 되었다. 다시 한 번만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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